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민음의 시 157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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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특이한 詩 읽기이다. '우주'라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다니…. 우리가 우주 속 한 개의 점보다 작은 존재임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詩語로 쓰이니 그 느낌이 너무도 다르게 다가온다. 
 
 '아아, 이 우주가, 이 시시한 실패가 나였으며…..'  ( '비광 또는 이하의 마지막 날들'에서 ) (13) 라는 감탄이나 '세계가 저무는 그의 눈동자'  ( '과오의 본질'에서 )  (90) 라는 표현에서 만나는 크낙한 범위와  '삶은 나만 잘못하고' ( ' 잃어버린 중국집'에서 ) (105) 라고 읊조리는 섬세함에 놀라게 되는 詩라니….
 
 어떻게 보면 각각의 시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한목소리를 내는 한 사람의 시집 같지 않다. 들쑥날쑥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아래에 詩, 두 편을 차례로 만나보자.
 
 시계를 보려고 손목을 들었는데
 시계 유리에 동그랗게 떠 있는 하늘
 범선의 돛대처럼 초침은
 저녁 구름 위를 천천히 떠가고
 시계를 보려고 손목을 들었는데
 시계는 간데없고
 저무는 하늘의 풍경 주위로
 반짝거리며 나타나
 회전하는 수억 개의 톱니바퀴
 
 ~ ~ 
 
 언젠가 멈출 시계 같은
 다른 보행자들의 슬픔을 반짝이는 초침으로 밀고 가며 계속
 우주는 째깍거리고
 우주는 째깍거리고
 시계들은 애통해 울고
 별들은 톱니를 맞춘다
 - '우주는 째깍거리고 별들은 톱니를 맞춘다'에서  (80)
 
 범선, 별, 우주, 시계, 톱니바퀴의 묘한 어울림이 '째깍꺼리며'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시간은, 우주는 흘러가는데….
 
 주점의 문을 밀며
 동전 한 닢처럼 떨어져 있을지 모를 
 행복한 한 조각을 기대한다
 ~ ~
 죽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히는
 참을 수 없는 저녁이 찾아오면
 시끄러운 소리 반가운 
 주점의 문을 밀며  - '주점의 문을 밀며'에서 (96)
 
 그러다 불쑥 들어선 '주점'에서 '행복' '한 조각을 기대하'는 모습에서 이 땅에 발 딛고, 자잘한 나날 속에 뒤척이며 살아가면서도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는 시인을 만난다. 삶이란 이런 게 아니던가. 꿈과 현실 속에서 버둥거리는 그런 거 말이다. 
 
 시집을 관통하는 느낌은 시인이 표현하는 큰 범주의 크기와 반비례하게 섬세하게 잡아낸 구절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느낌이다. 마치 '우주' 속에서 저 멀리 빛나는 별 몇 개를 발견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쩝... 겨우 이 정도로 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 서평 작성 전 시집 뒤의 해설은 읽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도움을 받지 않고 읽다 보니 군데군데 맘에 드는 구절들은 넘쳐나는데 그 생각과 표현들을 하나로 이어줄 실과 바늘을 찾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나의 詩 읽기인 것을...
 
 그래서 이런 시집을 만나면 당황하면서도 결국엔 입맛에 맞는 詩를 찾아보게 된다. 처음 만난 시인의, 쉰여 편가량의 詩에서 마음에 드는 詩를 두어 편 건질 수 있다면 이런 詩 읽기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리라. 
 
 배우가 죽던 날
 경야(經夜)하는 수녀들처럼
 노량진의 학원들 앞에선 오래도록 담뱃불들이 깜박였을 것이고
 조문객을 내려놓고 또 태우고 가는 긴 시내버스의 행렬이
 밤늦게까지 도로를 막아섰을 것이고
 취한 재수생들은 술집 문을 잡고 통곡했으리라 - '장국영'에서 (28)
 
 장국영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를 보내는 청춘 송가로서 이만한 절창(絶唱)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리라.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詩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아래에 소개해 드리는 詩는 잘 빠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꽃잎의 낙화를 색다른 시각으로 포착해낸 시인의 눈을 통하여 우리는 또 다른 詩 맛을 즐길 수 있다. 이 작품을 소개하며 이 시집에 대한 모자란 글을 줄이련다. 여러분도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의 결말이 궁금하시면 놀러 와 보시라
 
 
 모든 것이 깨어날 때
 의자의 위치를 확인한 후
 꽃잎은
 어디가 자신의 가장 올바른 자리인지
 작은 마당을 수없이 둘러보며
 수천 번 골똘이 생각했다가 지우며
 정성과 시간을 들여
 한 번뿐인 공기 중의 나선형 계단을
 어느 날의 시상식처럼 
 걸어 내려온다
 - '새벽의 여배우' 全文
 
 
2009. 12. 6.  가을에서 겨울로 달려가는 밤입니다. ^^;
 
들풀처럼
*2009-247-12-05
 
 
*책에서 옮겨 둡니다.
 이보게 친구,
 지구인들에게 해코지 좀 그만하게
 꿈을 잃어버리는 법을 배우게 -  '슈퍼맨의 비애'에서 (20)
 
 빨간 신호등 앞에서 무한정 짜증 내며 공전의 리듬이 깨어진 별들
 우주의 퇴근 시간입니다. - '나의 미용사'에서 (32)
 
 희망은 이렇게 집요하게 자신을 지킨다 - '새우소년'에서 (37)
 
 고아가 된 나는 조용히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태양계 최후의 별처럼 포장마차는 은은한 빛으로 밤을 밝히고, 그런데 포장마차 장막을 걷으며 꿈만같이 고교 시절의 그녀가 들어서는 것이다. -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에서 (51)
 
 파도 위에 뜬 노을을 바라보고 싶어요? 노랫소리 들리는 술집에 밤이 깊도록 앉아 있는 일은 어때요? 비 오는 창가는? ……이제 노을 지는 바닷가도, 비 오는 창가도 우주에는 없어요, 그런 별이 많을 줄 알았더니……  - '후일담'에서 (69)
 
 그녀들 어깨의 모피 코트처럼 보드라운 우리의 꿈은
 낡은 화차처럼 밭은 기침을 하면서
 쉬지 않고 어디론가 달려가며 무엇인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 희망과 욕정의 기적 소리
 꿀꿀 울리며 무엇인가 한번
 제대로  
 
 ~ ~
 지구가 시간이 다 된 목마처럼 회전을 멈추고 
 - '마음도 영혼도 없이, 때로 예쁜 인형같이'에서 (72)
 
 전문적인 술꾼처럼, 정말이지 맹세코 남김없이 마셔 버렸고, 더 이상
 절망하는 자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술병을 내던졌다. - 카프카 (79)
 
 나뭇잎 그림자라도
 잠시 닿았다
 바람에 밀려 사라지면 
 그리워 참지 못하고
 바람 지나간 자리 주름을 만들며
 부르르르 떠는 고인 물  - '고인 물'에서  (85)
 
 자신을 용서할 기회를
 모르는 척 슬쩍
 버렸다  
 
 꿈은 핥아먹기도 전에 얄미우리만치 빨리 증발해 버리고, 몇 번 입지도 않은 옛날 옷들은 무섭게 작아졌는데  - '괴로왕'에서  (93)
 
 아무리 안달해도 뺨은 처지고 허리는 굵어져요. 세상을 다 가진들 뭘 하겠어요? 젊은애 하나 뜻대로 못 하는 것을….  - '캔디'에서 (98)
 
 여관 창문으로
 먼지를 잔뜩 묻히고
 비듬처럼 날아 들어오는 한낮의 햇살
 - '시장길 여관 또는 존재의 저편'에서 (100)
 
 완전한 형식에 비하면
 살고 웃고 연애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 - '라헬의 언니 또는 야곱의 아내, 그리고 연애의 끝'에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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