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엔 약간의 의아함이 드는 읽기였다. 여행을 다룬 글만이 갖는 특유의 매혹적인 장면들, 그러니까 멋진 풍경 사진들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반갑게 손을 흔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소설 같은 전개방식에 오히려 당황하던 여행 記였다.
 
 하지만, 결국 어떤 여행이든지 자신이 속한 곳과 떠나가본 곳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이야기와 그 속에서 건져 올린 낯선 만남이 전해주는 재미있고 맛깔스런 풍광들이 있는 법,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야기 속 여러 인물의 개인 史가 빚어내는 일상의 괴로움과 어지러움이 게스트하우스 OJ에서 모여 얽혔다가 풀어지며 우리는 여행만이 가져다주는 '찾거나 버리' 게되는 삶의 진실을 충분히 만난다. 그래, 어디를 가든 시작과 끝이 있고, 어디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있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 않는다면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책 속의 나작가, OK김, 김프로, 그리고 박벤처까지 이들이 드러내는 각자의 상처는 그때의 개인에게 중요하고 큰 상처일 뿐, 이 역시 어떤 형태로든 아물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기대할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다시 시작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그럴만한 낙관적인 전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시작이라는 것. (207)
 
 눈에 보이는 '낙관적인 전망'이 없어도 여행을 떠나본 사람들은 안다. 가서 버릴 수만 있다면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을 찾아간다. 처음엔 뭐, 역시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잠깐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지 않으면 또 삶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일어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야할 이 삶은, 살아내는 이 삶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겠는가. 그러니 주인공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일어나 지신의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벤처의 운동권 출신 아내의 변모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잠깐의 회상처럼 등장하였다가 나중에 박벤처를 찾아 게스트하우스까지 오지만 열렬한 운동권이었다가 변신? 하여 악다구니를 부리는 중상층 아줌마가 된 모습은 착잡하다 못해 참담하다. 완전한 꾸밈이 아닌 그네의 변신은 우리네 삶의 허망함을 단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히여 그런 이도 있는 것이 우리 삶의 참모습이다. 그렇지 않은가? 젊은 날 자신이 뜻하고자 하던 길을 모든 사람이, 딱 그대로 걸어간다면 그 사회는, 우리 삶은 또 얼마나 희한한 것인가? 아쉽지만 그런 사람도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삶이다. 이 책은 곧 영화화가 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삶에 대한 꾸미지 않은 진실성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고 믿은 까닭이리라.
 
 "사금을 찾을 때는 말이지. 체에 거르고 다시 거르고 또 걸러야 아주 조금 건져낼 수 있어. 좋은 인연도 마찬가지야. 평생에 걸쳐 서로에 대해서 아주 작은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지. 좋은 인연은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지는 거야." (247)
 
 그러니 게스트하우스OJ의 OJ여사님 말씀처럼 우리는 조금씩 변해가며 맞춰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너무 똑똑하면 불행' 하다니... 쉬는 것도 노는 것도 열심히, 부에노스아이레스 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잊지 말지어다. 비록 평범하고 또 당연한 말씀일지라도….
 
 
2009. 10. 18. 늦은 밤, 오랜만에 글을 쓰다. 이게 다 가을 때문이다.
 
들풀처럼
*2009-230-10-06
 
 
*책에서 옮겨 둡니다.
 "당신 때문에 하루 종일 엉망이었어" 머피가 대답했다.
 "당신이 만든 하루였잖아." (26)
 
 잡것이 섞이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공기 (38)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뜻이다. (40)
 "똑똑한 사람이네. 근데 너무 똑똑하면 불행해. 적당히 릴렉스~ 여긴 아르헨티나야!" (64)
 
 버티는 것조차 힘들어
 끝내 돌아서 보지만
 문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도앙치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뿐이다.
 오히려 도움을 구할 때
 문은 쉽게 열린다. (73)
 
 "그 애는 그 애 인생, 나는 내 인생이야. 그 룰을 깨는 순간 삶이 힘들어져." (118)
 
 스스로 잊을 수 없다면 모두에게서 잊히는 쪽이 낫다. (130)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성실한 자세로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육체가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프로의 길로 가는 가이드.
 그러나 이런 가이드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다.
 전형적인룰 위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다. (154)
 
 나를 억누르는 모든 것들아 사라져라!
 미지의 신세계여, 나에게로 오라!
 거기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그것으로 족하다.
 다시 그것들과 헤어져 여행을 떠나라!
 영원한 것은 없고, 머무르는 자는 퇴보한다, 
 새로운 미래여, 나와 만나다오! (202)
 
 기억은 사랑을 확인하는 인증서와 같다. 기억을 통해서 사람들은 '아, 내가 사랑하고 있었구나'하고 인정한다. 사랑의 기억은 추억이라는 창고 속으로 깊숙이 저장된 채 언제든 필요할 때 현실 속으로 호출된다. (226)
 
 수퍼맨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없다. (235)
 
 아무런 고생없이 갑자기 이뤄지는 건 없다. 기회라는 건 충분한 고생을 한 후에야 찾아오는 것이고, 그 후에도 쉽게 성공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 무언가를 이루기도 어렵지만, 이룬 걸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239)
 
 사람들은 두가지 목적으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는 잊기 위해서다. ~ 두 번째는 자신 안에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기 위해서다.  (265) 
 
 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챙겨야 할 것.
 복잡하게 널브러져 있는 현실의 생각들을 지우개로 밀어버리기!
 사랑, 미움, 증오, 그리고 관계.  남김없이 모두 지워야 한다.
 
 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것.
 비워진 공간에 꽉꽉 담을 무언가를 찾기!
 자연, 문화, 정서, 그리고 사람. 조금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여행 후에 반드시 남겨야 할 것.
 담아온 추억들을 삶의 현장에 투영시키기!
 찾아온 무언가가 현실에서 느껴질 때 우리는 이미 또 다른 여행지에 서 있다. (268)
 
 '끝이라면, 정말 끝이라면, 그건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279)
 
 "그런데 가장 먼 곳으로 도망을 와도 그곳 역시 또 하나의 일상일 뿐이야. 거기 사는 사람들에겐 신기할 게 하나도 없는 지루한 일상……." (290)
 
 세상의 끝에서
 누군가에게 못 다한 말을 보낸다.
 그러면 그것은 지구의 반대편에 전달되고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메아리에 반응하는 순간,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으로 다시 시작된다. (292)
 
 누가 감히 탓할 수 있으랴?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도 돌아보면 벌써 지나 있다.
 
 찰나의 소중함을 받아들이는 사람 앞에서만 세월은 겸허해진다.  (298)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때론 남에게 상처를 주고, 그 자신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그 아픔을 걸머지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때문에 그 상처를 보듬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 이것 또한 세상의 섭리다. (314)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
 '가족'  (322)
 
 좋은 일이 있으면 거기엔 그만큼 나쁜 일이 붙어서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거야. (326)
 
 사랑은 끊임없이 극복하는 것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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