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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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고 또 놀라운 책이다. 듣도 보도 못한 지은이의 가정史를 만나보려한 까닭은 단지 독일에서 살아가며 보여주는 어떤 다른 모습 - 일종의 여행기 같은 모습 정도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 그 이상이다. 그저 한 가족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생각할 거리도 많고 배울 점도 넘쳐난다. 어쩌면 강박적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철저한 자신의 신념을 준수하는 지은이의 삶에 우선 경의를 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 밖에 없다. ~ 그 대가로 우리 부부는 학력에 비해서 적은 보수와 실력에 비해서 낮은 사회적 위상을 떳떳하게 감수한다. 또한 무섭게 절약한다. (23)
 
 돈보다는 시간을 선택한 지은이 부부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케한다. 세상에나, 하루 세끼를 집에서 온가족이 먹을 수 있는 생활이라니..절로 행복한 생활이 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다. 서로의 의견을 다 들어주고 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가정이라니….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런 소소한 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리라.
 
 환경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실천에서 먼저 놀라며 들어가는데 '최저 생활비', '물주머니' 이야기만으로도 놀라며 따라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입과일 쇼핑'의 선택에까지…. 이 이야기들의 힘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은이의 일상에 있다. 과일 하난 사면서까지 제 3세계 인민들을 생각하는 그 치밀함이라니….   
 
 전쟁이니 자살이니 하는 흉흉한 소식들을 접할 때면 따듯하고 편안한 집 안에 앉아 세끼 밥 먹는 일이 문득 부끄럽게 느껴진다.  이라크로 아프리카로 달려가는 의사들이나 보다 나은 세상을 바라며 현장에서 온몸을 던지는 투사들을 보고 있자면, 아무 생각 없는 밥벌레처럼 내 앞가림에만 급급한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65)
 
 이 책에는 이러한 앞서가는 지은이 가족의 생활에 더하여 독일 근세사와 일본과 우리와의 관계에 관한 꽤나 많은 이야기도 차근차근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의와 배려'에 기반하여 살갑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 부분이 더욱 맘에 든다. 책의 내용이나 바라보는 관점도 좋지만 그보다는 실제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공유해가는 방식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고마운 책이다.
 
 그리고 13살 딸을 둔 아빠로서 이 책에서 만난 성교육 이야기는 놀랍고도 반드시 배워둬야 할  부분이다. "한두 번 실수로 망가지는 인생은 없어" (106~119)에서 우리는 조금은 과하다 생각할 수 있는 '콘돔' 이야기보다 <성교육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지은이의 믿음과 교육방법이다. 하여 이 이야기는 반드시 아내랑 딸아이랑 공유할 것이다.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독일 남자를 만나 두 아이를 낳고 살아가며 이제는 거의 독일인이 된 지은이는 이야기 갈래마다에 우리네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물론 드러내놓고는 아니지만…. 그러니 지은이는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되새김질하면서 독일국민으로 착실히 살아가는 셈이다. 아직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현명함!을 유지하는한 지은이는 계속 행복하리하. 그리고 이런 글을 읽고 배우는 나 또한 행복하리라.
 
 
2009. 11. 1. 밤, 여태 가을 속에서 헤매입니다. 
 
들풀처럼
*2009-232-11-01
 
 
 
 
*책에서 옮겨 둡니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일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일기와 같은 글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돈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나를 잘 모르면서도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
 
 내 인생이 편안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21)
 
 다달이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사람은 생존이 부담스럽고,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고, 물질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라 믿고 있다. 그 덕에 항상 돈이 남는다. 돈 쓸 일이 생기면 편안하게 쓸 여유가 있어서 오히려 남보다 부자라는 기준으로 살고 있다. (23)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돈 대신 시간을 선택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우리 부부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꼭 필요한 일만 하는 데 불편함을 못 느낄뿐더러 부끄러움도 없다. (27)
 
 왜 남이 졸업하는데 자기가 새 옷을 사는지 우리 식구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31)
 
 세상은 앞에서 활약하는 주연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배경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연이 아님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이 '배경'의 위력을 항상 생각하며 '좋은 배경'이 되겠다는 뜻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씨를 뿌리며 사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다. 티끌인 나에게 태산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71)
 
 당장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는 일이 바로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쁨 아니겠는가? 사회가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변치않는 나의 가치를 확인한 것. 이것이 인생의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77)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돈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평생에 걸쳐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걸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85)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86)
 
 "너에 관해서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엄마 아빠도 네 일에 관해서 더 잘 알 수는 없어."  (103)
 
 "이 세상에서 네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건 없어." ~
 "임신해도 인생 망치는 거 아니야. 불편하긴 하지만 괜찮아.~ " (135)
 
 세속적인 경쟁력도 열정이 좌우하지 학력이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체험하지 않는가? (139)
 
 평범한 재능을 특별한 실력으로 승화하는 토양이야말로 독일의 경쟁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비결은 아마도 구성원들 사이의 인간적인 예의와 배려일 것이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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