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미스터리 야! 5
야나기 코지 지음, 안소현 옮김 / 들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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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던 내가 그 이름이나마 알게 된 것은 어느 작가의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이라는 운치 있는 이름의 산문집 제목에서였다. 그리고 집안을 뒤적거리니 소세키의 [도련님]이라는 책이 있는데 아마도 아내가 보던 책인 듯 낯설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대단히 유명한 작품인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린다니…. 
 
  그 유명한 소세키 선생과 그의 이야기를, 마치 요즘 음악의 '샘플링'? 처럼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몇 편이 바로 오늘 본 이 책 [소세키 선생의 사건 일지]이다. 그러니까 소세키 선생은 이 책에서는 아주 괴팍하고 특이한 영어 선생이 되어 희한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의 중심에 선다. 상당히 무게감 있는 국민작가를 통째로 소설의 주인공으로 데려와 희롱하듯 주무르는 지은이의 뱃심에 먼저 놀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용납되는 풍토가 부러워진다. 열려 있는 생각과 글들이다.
 
 소세키 선생의 문하생도 아니고 일개 서생에 불과한 주인공 '나'가 들려주는 여섯 편의 이야기는 참으로 시시콜콜한 것들이다. 고양이가 가출했다거나 야구공이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온다거나 하는 일상의 자잘한 일들이다. 그런데 그 일들이 소세키 선생의 유별남에 의하여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확대되었다가 서생인 '나'의 추리에 의하여 조용히 일상 속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물론 각각 따져보면 대수롭지도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바보스럽게 여겨지는 사실들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들 사실이 만일 전부 하나의 실로 이어져 있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관련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장기짝처럼 사용되었다고 하면요?  (172)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던 일들이 결국엔 서로 얽히고설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나타내게 될 때 우리가 느끼는 쾌감은 크다. 글을 읽으며 실실 웃다가 키득키득 거리기도 한다. 책 소갯글에서도 보았듯이 먼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았더라면 더욱 재미있을 이야기 들이다. 뭐, 그래도, 선입견 없이 다가가 들여다본 이야기들은 일상 속에서 빛나는 유리조각처럼 보인다. 비록 보석은 아닐지라도 평범한 시간을 깨뜨리고 반짝이는….
 
 말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를 연결 지으면 생각지도 못한 진실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    (118)
 
 그렇지,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 부분이다. 소세키 선생과 친구들이 보여주는 엉뚱한 대화와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얼개를 갖추고 이야기가 되어 가는 과정은 즐겁다. 새로운 형식의 추리물을 보는 듯하다. 마치 즐겨보는 만화 [명탐정 코난]의 구도처럼. 꼬마가 되어버린 명탐정 코난과 실제 무능력하지만 코난 덕분에 아주 유명한 탐정이 되어버린 '유명한' 탐정을 보는 듯 소세키 선생과 서생인 '나'는 얼토당토않게도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전개과정도 그렇고, 이야기 자체도 그렇고, 실제 결말도 그렇고, 모든 것이 고만고만한 일상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너무 잔혹하거나 읽는 이를 옥죄어오는 스릴러물이 아니라 주변에서 언제든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이처럼 맛깔 나게 접하니 유쾌하다. 그래, 그렇지,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가뿐한 그런 느낌이었다. 참,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쥐'라는 놈을 워낙 싫어하여 쥐 그림이 등장하는 장면들에서는 조금 떨리기도 하였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쥐와 관련된 모든 것은 내게 끔찍하게 다가오기에, 그 부분들만 빼면 다 좋았다. 그러니 한번 만나보시기를...
 
 
2009. 9. 12. 귀뚜리 소리 점점 커져가는 가을밤입니다. 
 
들풀처럼
*2009-214-09-11
 
 
*책에서 옮겨 둡니다.
 '그림을 그린다면 자연 그 자체를 담아라. 하늘에는 별이 있다. 땅에는 반짝거리는 이슬이 있다. 날아다니는 새가 있다. 달리는 짐승이 있다. 연못에는 금붕어가 있다. 고목에는 겨울 까마귀가 있다. 자연은 이런 것들이 살아 숨 쉬는 한 폭의 그림이다.' - 안드레아 델 사르토 (27)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의 작전도 현장에서의 사소한 실수가 원인이 되어 망하지. (49)
 
 사치스러운 풍류인이 철별을 두드리는 솔바람 소리를 듣지 못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머리맡에 두지 못하면 잠들지 못하는 이가 있다는 것 역시 진실이지. (135)
 
 의리가 없다, 인정이 없다, 창피함이 없다. 이렇게 '세 가지가 없어야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데.  (163)
 
 남몰래 덧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훔치는 게 도둑이고 남몰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게 탐정이지 ….
 
 칼을 다다미 위에 내려꽂고 무리하게 남의 돈을 뺐는 게 강도이고 듣기 싫게 으름장을 늘어놓아 남의 의지를 꺾는 게 탐정입니다.  
 
 탐정이라는 녀석은 소매치기와 도둑, 강도의 친척으로 도저히 사람이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존재야.  (188)
 
 영감이란 피를 솟구치게 하는 거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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