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또 달립니다. 책을 놓고 드는 느낌을 줄이고 줄인다면 이것입니다. 그냥 머물러서는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시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첫 느낌입니다. 책을 손에서 놓고 며칠 동안 그렇게 꼼짝도 않던 몸을 움직여 저녁 산책이라도 다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걸어야 뛸 수 있으니까요, 걷지 못하면 시간 여행도 없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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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이상? 으로 시간 장애인이 된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때가 아닌 언제 어디인지도 모를 곳으로 다녀옵니다. 머무는 시간도 일정치 않고 다녀오는 곳도, 때도 모릅니다. 그저 다녀올 뿐입니다. 처음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지 하며 따라만 갔습니다. [백 투 더 퓨쳐] 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떠오르면서 이러한 동시다발적인 시간여행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지 잠시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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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러한 기분도 잠시, 곧 이야기의 마력에 빠져 주인공 헨리와 클레어의 이야기 속으로, 그들의 시간 여행 속으로 따라갑니다. 그렇습니다. 시간 여행자는 분명히 남편인 주인공 헨리이지만 책 제목처럼 [시간 여행자의 아내]인 클레어도 그 시간여행의 한 축입니다. 어쩌면 헨리는 단순히 시간을 떠도는 여행자이지만 클레어는 시간 여행을 바라보고 정리해나가는 실재(實在)의 인물이기에, 시간 여행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아내, 클레어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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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 기다림이 어울리며 빚어내는 이야기들이 시간여행의 전부이지만 그 이야기들이 뿜어내는 빛깔은 다양합니다. 처음엔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서다가 이윽고 한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조차 없는 주인공의 서글픈 상황에 동화되고 마침내 그의 '떠나고 돌아옴'에 가슴 찡하게 눈물짓게 됩니다. 낯선 시간, 낯선 곳에 알몸으로 나타나는 주인공의 첫 번째 행동은 옷을 찾아 달리는 것입니다. 알몸으로 시대를 오갈 수는 없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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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는 주인공의 달리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건강을 위하여가 아닌, 낯선 시대,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달려야만 하는 주인공 헨리의 달음질은 경쾌하지 않습니다. 다만, 살기 위하여 달리고 또 달릴 뿐입니다. 하여 책을 덮고 일어선 다음무터 무의식적으로 저도 달리기 위하여 걷습니다. 책 속에서 무거워진 몸을 털어내기 위하여 걷기 시작합니다. 시간을 거스르고 장소를 옮겨다녀도 자신의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쓸쓸한 이야기가 휘몰아쳐 오는 저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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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모든 애도는 어머니의 생명을 단 일 초도 연장하지 못했고, 단 한 번도 더 뛰게 하지 못했고, 단 한 번도 더 숨을 몰아쉬게 하지 못했다. 내 욕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나 스스로를 어머니에게 데려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 버리고 나면 클레어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아내를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2권, 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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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는 날짜까지 미리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고리 속에서 헨리가 느끼는 이 괴로움은 어찌해야 될까요? 미리 알면 알수록 괴로운 시간 속에서 주인공의 시간은, 삶은 사라져 갑니다. 당연히 예상되는 결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글을 읽다 눈물 한 방울 또 찔끔, 흘립니다. 이미 예상하고 알고 있다고 하여 슬픈 일이 기쁜 일이 되는 건 아니지요. 아마도 우리네 삶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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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니 우리가 이 시간들, 비록 헨리처럼 오가지 못하는 시공간이라지만, 이 시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모습은 또 어떠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이들이 가지런히 숨을 쉬는 곁에서 문득 떠나버렸다 돌아오지 못하는 그 순간이 내게도 온다면…. 그 순간만큼 가슴 아프고 괴로운 시간은 없겠지요. 하여 다시 우리는 지금, 이 곳에서,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을 돌아보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시간 여행자인 주인공을 바라보며 우리가 배우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또 사랑하렵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길을 가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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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4. 밤, 가을 바람이 손 흔들어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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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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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7-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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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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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밑줄 친 구절들을 1시간가량 옮기는 중 노트북이 갑자기 꺼지며 다 사라져버립니다. |
지금 사라진 구절들은 시간 속을 떠돌다 언젠가 다시 내게 돌아오겠지요. |
헨리처럼 말입니다. |
다시 옮기려다 책을 덮고 가을 속으로 산책하러 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