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흥미진진하다, 재미있다.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바쁠 지경이다. 370여 쪽의 책을 세 시간 정도에 독파하다니, 참으로 오랜만의 경험이다. 마치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본 듯하다. 그리고 이제 극장 문을 나선다. 다시 그 장면들을 생각할 시간이다.
 
 그런데 극장을 나서듯 책장을 덮고, 돌아보는 이야기는 씁쓸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뤄져야 할 무엇인가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므로 빚어진 그 많은 사건과 죽음들, 입에 쓴 칡을 씹는 듯하다. 관계, 결국은 여기서도 관계가 문제이다. 인연 또는 업, 업보로도 표현되지만 명쾌한 낱말 한 가지만 고르라면 단연코 '관계'이다. 
 
 실수로 환자를 죽여버린 의사, 그리고 그 의사의 불의를 참지 못하여 뛰어나간 딸, 죽어버린 환자의 남편, 그 남편의 무모한 인질극에 희생되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엄마, 엄마의 사고로 결국 정신병원 신세를 지는 아빠, 망가진 이 가정의 두 아들, 두 아들과 연결된 소매치기, 평범한 가정주부가 된 암살자…. 이것만으로도 멋진 스릴러물이 탄생할 것 같지 않은가. 이 재료들을 종횡으로 섞어 얽히고설킨 관계의 그물망을 짜맞추어 독자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작가의 실력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 정말 만만치않다. 일상의 틈새를 파고들어 앞으로 나아갈수록 엮이도록 짜놓은 과거의 인연들, 그 어쩔 수 없는 관계들, 책을 읽다 보면 누구도 온전한 악인은 없다. 서로 한쪽 발을 잡힌 채 이번 건만, 이번 일만 끝나면 다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제대로 그 삶의 길을 찾아가는 이는 몇 되지 않지만 말이다.
 
 "잘 들어, 모두. 이게 노래야. 전원이 힘을 합쳐서 확실하게 마음을 담으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거야. 여러분의 합창도 마찬가지야.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기분 좋게 불러 보자! 한 명이라도 딴 짓 하면 안 돼! 다 함께 하는 거야! 자, 기적을 일으키자!" (153)
 
 음악선생인 주인공(다이지로)의 엄마가 합창단원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래를 부른다면 '기적'은 일어나는 법, 이 소설의 주제가 아마도 여기에 있으리라. 이어지고 꼬여 있지만 결국엔 하나씩 풀어지는 사건의 내용, 그리고 그 내용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기적의 합창'! 책을 읽으면 이 말뜻을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으리니 어서들, 달려가 이 "악몽의 관람차"를 타시기를…. 밀실 속임수에서부터 소소한 소시민의 가정사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이 흥미진진한 '기적의 합창'을 들어보시란 말이다.
 
 이런, 이런 또 흥분하고 말았다.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요즈음 넘쳐난다고 한다. 특히 일본 추리작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우리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문득, 왜? 왜? 이런 책들이 많이 읽히는 걸까를 생각해본다. 몇 가지 까닭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적당히 재미있다는 사실, 두 번째는 우리에겐 이런 책들, 적당히 자극을 주면서도 그 수위를 조절하고 추리물의 맛까지 전해주는 이런 소설들이 적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맛있는 책들에 빠져들어야만 아픈 여러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이런 까닭들이 우리를 일본式 추리소설 類에 빠져들게 하고 있으리라.
 
 하여 나는 극장을 다녀와서, 책을 덮고 나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재미도 있고 맛도 좋은 이런 이야기들이 주위에 널려 있는데 더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말이다. 보장된 재미와 긴장감은 충분히 유혹적인데 계속 이 길로만 가도 되는지…. 답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야기의 갈림길을 막아놓지는 않으리라는 것, 다시 돌아보고 어린 날처럼 추리 소설의 세계에 밤낮으로 빠져들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파묻히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만져보리라 생각한다. 넓고 넓은 이야기의 세계에서 이쪽 이야기만 거부할 까닭은 없으리니......, 언젠가는 다시 '관람차'에 오르리라.
 
 
2009.8.16. 깊은 밤, 잠 좀 잡시다….
 
들풀처럼
*2009-19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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