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갑작스러운 지인(知人)의 죽음으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기회가 되어 화장장에도 다녀왔습니다. 산자락 위로 꼬불꼬불 돌아가는 그 공원묘원에는 다다를 때까지 단 하나의 표지판도 없었습니다. '공원묘지'라든지 '화장장'이라든지 하는 안내판이 하나도 없는 길을 알음알음 찾아가며 문득 티베트인들의 장례를 떠올렸습니다.
 
 죽음에 빈부의 차이나 시대적 지역적 차별이 존재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그 시대, 그 지역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요. 아마도 우리는 죽음을 부끄러워하는 시대에 살아가나 봅니다. '화장터'가, '공원묘지'가 어디인지도 떳떳하게 표기할 수 없는 상황의 죽음이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집값의 하락? 아니면 교육상의 문제? 뭐,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죽음을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는 삶을 삶 자체로 바라보지 않는 현실과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장(鳥葬)'을 지냅니다. 하늘의 새들에게 자신의 한 몸을 '공양'함으로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환생을 믿거나 말거나가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시대, 이곳의 장례문화도 서로의 영혼을 달래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태어나서 돌아가는 그 한 과정 모두를 똑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사라졌나 봅니다. 사실 누구라도 자신의 집 근처에 공원묘원이나 화장터가 들어온다면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조장은 어떤 종류의 폐기물이나 쓰레기도 남기지 않는다.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몸을 독수리에게 줌으로써  생애 최후의 공양을 한다. 푼촉이 한 말이 생각난다. "보시는 티베트인들의 본성에 자리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독수리는 시체만 먹는 동물이죠. 그런데 만약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한다면 독수리는 굶어 죽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잔인한 일이 되겠지요." 영혼이 더 좋은 곳으로 가든 아니든, 조장은 내게 자연적이며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  "2.조장(鳥葬)"  에서 ) (63)
 
 생전의 삶과 죽고 나서의 삶마저 일치하는 티베트인들의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세 형제가 한 아내랑 살아가는 "일처다부제"의 문화도, 불교의 환생과 인과응보 등을 철저히 믿으며, 죽은 영혼을 위하여 슬픔을 참으며  '평온을 유지하는' (69) 풍습도, 겨울에는 순례의 길을 떠나는 모습들도 오랫동안 그들의 삶 속에서 걸러지고 다듬어진 모습입니다. 하여 낯선 문화라고 티베트 사람의 풍속에 대하여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중국인인 지은이가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1년간 함께 생활하며 바라본 티베트인들은 그저 욕심 없이 담담하게, 말 그대로 그냥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어떤 극적인 장치가 있어 우리를  끌어당기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구나 하며 편견 없이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성공!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방식이니까요. 불교도들은 그렇게 삽니다." 불교도인 티베트인들은 업보를 믿는다. (  "6. 전통 혼례" 에서 ) (155)
 
 거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부모님이 짝 지워주는 데로 살아가면서도 그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특별히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스트레스란 말을 모를 것입니다. 문득 왜들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보려다 이런 삶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라고 반문하는 저를 봅니다. 때로는 인생 대부분을 술로 허비하는 이들도 있고 아버지와 아내를, 아들과 또 아내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저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일 크게 깨닫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나의 시각으로 특정한 기준을 세워두고 판단하거나 자르지 말자는 생각, 이상하게도 티베트의 사람을 만나며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저는 특정한 종교의 신자도 아닐뿐더러 무신론자입니다만, 그저 신이라는 크나큰 존재 안에서 이처럼 평화롭게 살아간다면 이런 삶도 행복하리라 인정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아득바득 악착같이 살아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잠시 멈추어서 해봅니다. 사람과 신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들에 적응해가는 티베트 사람의 모습은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 속의 컬러 사진으로 만나는 몇 장의 풍경들과 우리랑 구별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주 삶과 믿음, 신과 행복에 대하여 물어보며, 생각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신앙 요법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대만 효과가 있어요.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질 테고 그러면 정말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죠." ( "9. 전통 요법" 에서 ) (252)
 
 
2009.8.14.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실까?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요." (215) ^^*
들풀처럼
*2009-18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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