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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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기억이다. 한 여공이 집에 전축도 없으면서 월급을 받으면 매달 음반을 1장씩 사모은다고 하였다. 언젠가는 그 음반을 감상할 전축을 마련할 꿈을 가지고…. 그리고 난 이 오랜 신문기사 속 주인공이  지금 이야기하고자하는 [외딴방]의 작가라고 알고있다. 맞든 틀리든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글과 [외딴방]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짧고 명쾌하지만 아련한 느낌의 문체로 지난날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발걸음은 조심스럽다. 그러기에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 (2권,281)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하여 우리는 이 외딴방에서 흔들리며 마주하는 이야기를 지은이의 자전적 소설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사실 글의 형태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터, 우리가 이 글을 통하여 만나는 삶의 다양함과 그 다양성을 통하여 바라보는 우리네 지금, 여기의 모습들이 더욱 중요할지니, 자, 이제 외딴방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부드럽지만 조금은 서늘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녀가 들려주는 '외딴방'이 그날, 그 추억 속의 외딴방뿐만이 아니라 지금, 그 기억을 토해내며 살아가는 현재의 방 역시 외딴방이라는 사실이다. 조심스레 조심스레 오래전 기억들을 되집으며 공장 생활과 그날의 일까지 들려주는 과정 속에 현재의 화자(話者)인 주인공은 아직도 외딴방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시골에선 자연이 상처였지만 도시에선 사람이 상처였다는 게 내가 만난 도시의 첫인상이다. 자연에 금지구역이 많았듯이 도시엔 사람에게 금지구역이 많았다. (132)
 
 그날의 상처도 여태 아물지 않았는데 지금 생활 속의 환경들도 아프게 달려든다. 전화선을 뽑고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하는 과정 속에 지난 날의 이야기가 풀려가지만 그 과정자체가 지난날의 반복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겉으로 보기엔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여도 실제는 그대로 인지도 모른다. 마치 수 십년 전처럼.
 
 오래 전 공단생활을 돌이키는 과정은 물이 끓어오르듯 한 점을 향해 달려간다. 꽁꽁 묻어두었던 그 날, 희재 언니와의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그 순간을 위하여 이야기는 반복되고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저 자연스레 그날 그날들을 하루하루 살아왔을 것이다. 지은이도 우리도. 그러다 어떤 폭발같은 일이 한순간 일어나면 모든 기억은 그날, 그 순간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생각 안 난다. 그래도 그녀의 물 속 같은 목소리… … 가끔은 깔깔 웃으면서 그럼, 그럼, 했던 그 오후 다섯시 같은 목소리, 그 손뼉치는 소리는 선명했다. (185)
 
 주변의 누군가를 떠나보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보내는 그 순간보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갑자기 그 사람과의 기억이, 어떤 장면이 떠올라 울컥, 치밀어 오르는 날들이 있음을. 그래서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가슴 한 켠에 머무른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잔잔히 머무르다 어떤 계기로 출렁이다 마침내 폭발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 폭발을 끝끝내 묻어두려 하였으나 그 역시 불가능하였으리라. 조금씩 조금씩 그 날, 그 장면까지 우리를 이끌어가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차분하고 정갈하다. 덕분에 우리는 그 장면에서 조금 더 강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어느 정도 읽어나가면 '아, 무슨 일이 있었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짐작하고 예상되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건은 있는 법이다. 희재 언니 이야기도 그러하다. 80년대의 참담한 현실, 5월 광주의 이야기까지 등장하지만 지은이를 사로잡고 있는 사건은 오로지 그날, 그 장면이다. 그 순간 하나로 그 시절은 모두 정지해버린 셈이다. 여기에 대고 왜 이야기가 그 정도에서 머무르냐고 묻는 이들은 없으리라. 시대가, 세계가 다 바뀌어도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은 따로 존재할 수 있음을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떠나온 먼 시간 속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는 숨으리라. 폭발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내 안의 난폭함과 야만성 무질서함과 섬약함들 속으로. 이 글이 다 완성되면 마침내 나는 다른 열정 속으로 건너갈 수 있으리라. 그대가 물어보면 대답하기 쉽게 무슨무슨 꼬투리를 잡고 있어야겠지만 그대가 무엇인가를 물어올 때는 지금의 나,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리고 이미 시간을 건너 다른 열정 속에 놓여 있으리라. (255) 
 
 아마도 이 글처럼 지은이도 털어놓고 떠나고 싶었으리라. 그날, 그 때의 순간에서. 하지만 온전히 어떤 상처를 지워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우리는 그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가고 살아내는 삶의 모습이리라.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지.  살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 일상에 매여 일 년을 통화 한번 못 한다고 해도 수첩 속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내 손을 뻗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  ~ 내가 기억한들, 언제까지나 기억한들…… 그런들……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지? 기억으로 뭘 변화시켜 놓을 수 있어? (2권, 15)
 
 내 가슴을 흔든 문장들. 꺼내보지도 않는 '오래된 전화번호'가 내게도 얼마나 많은가, 언젠가는 한번 만나보리라, 언젠가는 녀석들과 웃으며 통화하리라 하며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우지 못하고 쟁여두었던 그 번호들, 그 기억들. 그래, '기억으로 뭘 변화시켜 놓'으랴,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또 무엇인가. 일단 다들 살아 있으니 되었다 생각하며 또 한걸음 나아간다.
 
 지은이는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에 대하여만 말하는 것은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읽는 이들이 각자의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면 좋지 않느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개의 외딴방에서 여전히 옳은 것과 희망에 대해 생각한다. 그날의 현실과 당연히 달라져야 하지만 아직도 진행형인 현재의 공장 상황들, 지금도 널려있는 외딴방의 현실과 과거를 돌이키는 과정속에서도, 그래도 살아가야함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삶이라도 살아내야함을 만난다. 그래야 전화라도 하고 하소연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이어지며 시작되는 것이리라.
 
 내게도, 집안 한편에 언젠가 전축을 사서 들으리라 다짐하며 모은 음반이 수십 장 있다. 이제는 전축이 낡아 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 음반들을 볼 때마다 흐뭇해하곤 한다. 아끼고 또 아껴서 모은 내 소중한 기억들이기에 비록 듣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것이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글을 쓰고 말리라던 지은이의 꿈이 이뤄지듯이 우리도 그런 꿈 한 줌 정도는 갖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가슴 속 깊은 곳에 외딴방 하나 있어 무시로 들락거리더라도 말이다.
 
 열일곱의 나, 볼펜에 힘을 주어 글씨를 꾹꾹 눌러 쓴다.  - 언젠가는,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을 언젠가는 보러 갈 거야. 아무리 우리를 업수이 여겨도 내 이 마음 버리지 않을 거야. 언젠가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그날을 기약하며 나는 살아갈 거야. 별을 향하고 숲속에서 자고 있는 새들은 나를 용서하겠지. 숲을 평화로운 잠으로 아름다이 뒤덮고 있던 백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보러갈 거야. 너도 같이 가겠니? -  (131)
 
 자, 이제 외딴방에서 나가자. 남아있는 기억처럼 짧게 끊어지며 반복해서 강조하던 지난날. 열 여섯,열 일곱,열 여덟…. 그 여린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행여 다시 뒤돌아볼지라도 그 방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으리니….
 
 8월이 시작되었다.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출판사에 이 글을 넘겨야만 하는데 내 속의 또다른 나는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다시……. 끈질기게 처음부터 다시, 를 속삭인다. (2권, 233)
 
 
2009. 8. 8. 밤, 저도 '더는 할 말이 없'(2권, 220)습니다. 
 
들풀처럼
 
*2009-178-08-06
 
 
* 책에서 옮겨두다
 
 도시에서는, 금방 필요한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늘 번거로운 일에 휘말려 있고, 꼭 사야 될 책이 언제나 많았다. (20)
 
 열 여섯에, 그 파란 대문집 마루에 앉아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내 발바닥을 쇠스랑으로 찍어버렸던 열여섯에,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걸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외롭겠다고. 그저 살고 있다가는 언젠가 다시 쇠스랑으로 또 발바닥을 찍어버리겠다고. (23)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찟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 밖에 없는 운명아, 쓰는 자에겐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벳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39)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44)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은가. 때로 이 인식이 나로 하여금 집도를 포기하게 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점 대신 겹겹의 의미망을 선택한다. 할 수 있는껏 두껍게 다가가자고, 한겹 한겹 풀어가며 그 속에서 무얼 보는가는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모두를 각각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좋겠다고,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80)
 
 무슨 일이든 한번 자신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85)
 
 저임금이란 말이 주는 가슴 저림. 저임금, 저임금…… 내가 기억하는 우리들의 급료는 사실이었을까. (90)
 
 순간 내게 혼란이 왔다. 외딴 방은 이제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먼 섬이 돼버린건 아닐런지. (99)
 
 낯선 식당에 앉아 낯선 식사를 하며 낯선 사람들의 낯선 얘기를 들으며 이제 나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도망칠 일이 아니라고. 외딴 방에서의 나의 삶을 나 스스로 다르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99)
 
 "월급이 얼마나 되는데요?" 김삼옥은 피식, 웃으며 내뱉는다. "치약 하나 사면 그걸로 삼 년 썼어. 됐니?" (228)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꿈을 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이 좋아서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냐? (261)
 
 …. 어느 해나 오월은 있다. 모란이 지고 나면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었다는 영랑의 시절에도, 나, 열여덟이었던 80년에도.
 
 ….. 오월, 처절한 상처의 이름.  (2권,55)
 
 "아무도 너의 허락 없이는 네게 열등감이 들게 만들 수 없다" (에리노어 루즈벨트) (2권, 95)
 
 …. 글을 쓰며 살아가는 자들의 고독은 그 스며듦이 끝났을 때 시작되는 거겠지. 스스로 거슬러올라 가장 어려웠던 처음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고독. (2권, 199)
 
 이제 이렇게 책상에 앉았으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글은 끝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글을 완성시킬 것이다. 곧 더는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2권,220)
 
 몸의 기억력은 마음의 기억보다 온화하고 차갑고 세밀하고 질기다. 마음보다 정직해서겠지. (2권,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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