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다르면서 또 얼마나 같은가." (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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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야 어찌되었든 한달 이상을 - 걷는 데에만 34일이라니~ - 떠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였다. 그래,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 길에 서보리라는 엄두는 커녕 이 곳에서 단 며칠이라도 자유롭게 떠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옥죄이며 살아가는 나같은 이에게 산티아고는 먼나라 별같은 존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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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걱정할 미래라곤 딱 세 개밖에 없잖아. 어디까지 걸어가고, 밥은 뭘 먹으며, 어디에서 잘 것인가. 삶이 실제로 이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겠어!"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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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걷고 먹고 잘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하지만 삶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걸어가는 이들도 이 점은 잘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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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풀밭에 앉아 감탄사를 주고받던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삶이 실제로 그렇게 단순해지거나, 지속적으로 '지금', '여기'의 순간에 몰두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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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리라.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것임을, 우리가 어디로 떠난들 풀어지고 찾아질 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 서는 것이다. 지은이가 만나는 많은 낯선 사람들이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처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장면들은 처음엔 신기해보였지만 어차피 그네들도 지은이도, 우리도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쩌면 많은 말이 필요없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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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산티아고 여행기에서는 하루종일 걸어가며 만나고 느끼는 지은이를 둘러싼 일상!들이 소개되는데 눈에 띄게 들어오는 대목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워커스 하이'라고 지은이 스스로 이름붙인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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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 하이'는 마라토너들이 경험하는 절정감을 일컫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빗대 내가 만든 말이다.(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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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벼워지고 정신과 온 신경이 순수한 진공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내 안의 텅 빈 공간. 어떠한 생각도 없이 잠시나마 자아의 하찮은 주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 (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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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진공상태'의 순간, '워커스 하이'를 읽으며 나는 '리더스 하이(Reader's High)'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랬다. 적당히 부러워하고 시새움하면서도 지은이의 발걸음을 따라 가는동안 나도 모르게 그 현장에서, 그 느낌을 같이 즐기는 듯한,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한번씩 상쾌하고 맑은 기분으로 책을 읽다 만나곤 하던 그런 느낌을 표현할 방법을, 드디어 여기서 그 낱말을 찾아낸다. 리더스 하이! 이 책도 그런 차분한 황홀감을 내게 안겨주는 편안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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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던 우리가 가야할 길과 앞으로 만날 세상은 규정되어 있지 않은 법,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제 깜냥만큼 열심히 걷고 전념하고 추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138) 지은이의 지적처럼 '확신에 찬 사람은 한 달씩 여길 걸으며 올 것 같지도 않다. 모두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기 길을 걷고 있' (256) 을 것이다. 그러하리라. 한 달씩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쉬운 기회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나같은 이는 이러한 책을 통하여 지은이만의 [나의 산티아고]를 우리의 '산티아고'로 만들어가려 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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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는 것이 몸에도 좋지만 생각에도 좋다는 것은 지은이가 때때로 들려주고 인용하는 잠언투의 말씀들에서 충분히 경험한다. 어디선가 한번씩은 들어봄직한, 듣고 또 들어도 삶의 지침이 될 좋은 말씀들을 이 조그만한 책에서 듬뿍 만난다. 이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하여 이 글 끝에 몇 문장을 따로 옮겨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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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17) 이라는 생각으로 바깥으로만 내달리던 시절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마흔이 넘어서야 돌아보는 지나온 흔적들은 초라하고 또 초라하다. 어찌 내게도 이처럼 먼 곳으로 오랬동안 떠나있을 시간이 없었으랴, 이 핑계, 저 핑계로 안으로 안으로만 방황하던 시간들을 좀 더 일찍이 추스릴 줄 알았다면 나 역시 나만의 '산티아고'를 소개할 수 있을 터인데….. 아픈 시간들을 뒤로하고 떠난 지은이의 '순례길'에 얹혀가며 다시 배우는 고마운 시간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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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체험" (조지프 캠벨) (298)을 하게 해주는 이 책, 여행을 준비하는 이에게도, 어디론가 잠시라도 떠나보려 하는 이들에게도 부담없이 권해 드릴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걷기를 통하여 우리들의 '산티아고'로 떠나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해두지만 '부러우면 지는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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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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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여행/풍경 사진만으로도 배부른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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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12. 스스로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미 출발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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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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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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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옮겨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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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품은 순례자라기보다 깃발을 꽂으러 온 모험가의 얼굴이다.(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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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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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가 뭐 별거인가 싶다. 몸과 마음 모두 어딘가에 도착하려 안달하는 대신 길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아 걸어보면 되는 것을.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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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카미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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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과 사람들, 세상의 무수한 사건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내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뭔가 겪고 싶다면 근사한 풍경과 만남, 사건이 날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으로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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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성장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꼭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 꾸준히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 그것말고 어떤 다른 희망이 가능하겠는가. (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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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유일한 문제는 부족하고 못난 나 자신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 단 하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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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의 밤도 하루 일정을 마치면 씻고 빨래를 하던 평소의 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있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큰 감동은 없다.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2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