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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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얼마나 다르면서 또 얼마나 같은가." (296)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한달 이상을 - 걷는 데에만 34일이라니~ - 떠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였다. 그래,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 길에 서보리라는 엄두는 커녕 이 곳에서 단 며칠이라도 자유롭게 떠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옥죄이며 살아가는 나같은 이에게 산티아고는 먼나라 별같은 존재였다.
 
 "여기서 걱정할 미래라곤 딱 세 개밖에 없잖아. 어디까지 걸어가고, 밥은 뭘 먹으며, 어디에서 잘 것인가. 삶이 실제로 이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겠어!" (86)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걷고 먹고 잘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하지만 삶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걸어가는 이들도 이 점은 잘 알고 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풀밭에 앉아 감탄사를 주고받던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삶이 실제로 그렇게 단순해지거나, 지속적으로 '지금', '여기'의 순간에 몰두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86)
 
 그러하리라.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것임을, 우리가 어디로 떠난들 풀어지고 찾아질 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 서는 것이다. 지은이가 만나는 많은 낯선 사람들이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처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장면들은 처음엔 신기해보였지만 어차피 그네들도 지은이도, 우리도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쩌면 많은 말이 필요없으리라.
 
 무엇보다 이 산티아고 여행기에서는 하루종일 걸어가며 만나고 느끼는 지은이를 둘러싼 일상!들이 소개되는데 눈에 띄게 들어오는 대목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워커스 하이'라고 지은이 스스로 이름붙인 느낌이다.
 
 '워커스 하이'는 마라토너들이 경험하는 절정감을 일컫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빗대 내가 만든 말이다.(141)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과 온 신경이 순수한 진공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내 안의 텅 빈 공간. 어떠한 생각도 없이 잠시나마 자아의 하찮은 주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 (142)
 
 '순수한 진공상태'의 순간, '워커스 하이'를 읽으며 나는 '리더스 하이(Reader's High)'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랬다. 적당히 부러워하고 시새움하면서도 지은이의 발걸음을 따라 가는동안 나도 모르게 그 현장에서, 그 느낌을 같이 즐기는 듯한,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한번씩 상쾌하고 맑은 기분으로 책을 읽다 만나곤 하던 그런 느낌을 표현할 방법을, 드디어 여기서 그 낱말을 찾아낸다. 리더스 하이! 이 책도 그런 차분한 황홀감을 내게 안겨주는 편안한 책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던 우리가 가야할 길과 앞으로 만날 세상은 규정되어 있지 않은 법,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제 깜냥만큼 열심히 걷고 전념하고 추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138)  지은이의 지적처럼 '확신에 찬 사람은 한 달씩 여길 걸으며 올 것 같지도 않다. 모두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기 길을 걷고 있' (256) 을 것이다. 그러하리라. 한 달씩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쉬운 기회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나같은 이는 이러한 책을 통하여 지은이만의 [나의 산티아고]를 우리의 '산티아고'로 만들어가려 할 뿐이다.
 
 걷고 또 걷는 것이 몸에도 좋지만 생각에도 좋다는 것은 지은이가 때때로 들려주고 인용하는 잠언투의 말씀들에서 충분히 경험한다. 어디선가 한번씩은 들어봄직한, 듣고 또 들어도 삶의 지침이 될 좋은 말씀들을 이 조그만한 책에서 듬뿍 만난다. 이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하여 이 글 끝에 몇 문장을 따로 옮겨둔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17) 이라는 생각으로 바깥으로만 내달리던 시절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마흔이 넘어서야 돌아보는 지나온 흔적들은 초라하고 또 초라하다. 어찌 내게도 이처럼 먼 곳으로 오랬동안 떠나있을 시간이 없었으랴, 이 핑계, 저 핑계로 안으로 안으로만 방황하던 시간들을 좀 더 일찍이 추스릴 줄 알았다면 나 역시 나만의 '산티아고'를 소개할 수 있을 터인데….. 아픈 시간들을 뒤로하고 떠난 지은이의 '순례길'에 얹혀가며 다시 배우는 고마운 시간들이다.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체험" (조지프 캠벨) (298)을 하게 해주는 이 책, 여행을 준비하는 이에게도, 어디론가 잠시라도 떠나보려 하는 이들에게도 부담없이 권해 드릴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걷기를 통하여 우리들의 '산티아고'로 떠나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해두지만 '부러우면 지는거다!'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158)
 
(*책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여행/풍경 사진만으로도 배부른 책입니다.^^*)
 
 
2009. 7.12. 스스로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미 출발하였습니다.
 
들풀처럼
*2009-160-07-12
 
*책에서 옮겨두다
 질문을 품은 순례자라기보다 깃발을 꽂으러 온 모험가의 얼굴이다.(38)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39)
 
 순례가 뭐 별거인가 싶다. 몸과 마음 모두 어딘가에 도착하려 안달하는 대신 길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아 걸어보면 되는 것을. (41)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카미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6)
 
 낯선 풍경과 사람들, 세상의 무수한 사건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내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뭔가 겪고 싶다면 근사한 풍경과 만남, 사건이 날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으로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55)
 
 ~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성장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꼭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 꾸준히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 그것말고 어떤 다른 희망이 가능하겠는가. (256)
 
 인생에서 유일한 문제는 부족하고 못난 나 자신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 단 하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262)
 
 산티아고의 밤도 하루 일정을 마치면 씻고 빨래를 하던 평소의 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있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큰 감동은 없다.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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