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황하문명과 같은 시기의 문명 발상지로 새롭게 대두된 요하문명의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는 학설을 잘 아는 펑타오는 교묘하게 말을 비틀었다. (208)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제 목소리로 우리 겨레의 찬란했던 역사를 복원하고, 이제는 친일과 음모의 학설들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뚜벅뚜벅, 1만년 우리 역사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는가? 그 때가 아직도 멀었단 말인가?
 
 중국은 갈수록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눈에 드러나는 사료를 가지고도 고조선조차 실재했느니 안했느니 이야기들을 하는건지, 답답하고 또 답답한 일이다. 중국에서 몇 년전부터 발굴되고 있는 흥산문명/요하문명이 한겨레의 유물임은 이제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발가락끝에도 못가고 있으니….
 
 너무도 유명한 작가,  김진명이 이번에 들고온 화두는 우리 겨레의 이름인, '한(韓)'의 원류를 찾아가는 길이다. 알려진 바대로 핵심을 찾아 달려가는 그의 글솜씨는 이 책에서도 빛나고 있다. 책을 손에 들면 일다 말기는 어려울 지경이다. 게다가 이번 이야기의 제재는 개인적으로 무척 관심이 많은 잃어버린 우리 고대사가 아니던가. 하여 나는 이 책을 주문하고 손에 받아든 날 밤, 진작에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한 번 쓰윽 읽고 던져두고말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그동안 만나보았던 관련 서적들을 뒤적거리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책의 말미에 비교적 놀라운 '한(韓)'의 유래와 출처가 제시되고 있는데 - 요부분은 추후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언급을 자제하련다 -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결론을 이끌어낸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놀라울따름이다. 아마도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정서의 성격이 지은이의 모습일 것이다.
 
 정서는 이제껏 어떤 분야든 그 변두리에 머무르는 걸 싫어했다. 기왕 시간을 쓴다면 일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왔다. 아무리 은원의 신변이 걱정스럽다 해도 이런 식으로 은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도서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정서는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178)
 
  정서가 사라진 친구 은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옛날 성(姓)씨와 관련된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씩 밝혀지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한(韓)'족의 등장이 기록된 서적….읽는 동안 내내 조마조마하며 정서를 따라가게 된다. 이것이 이미 검증된 김진명 작가, 지은이의 힘이리라.
 
 다만 책의 전체적인 호흡을 볼 때 초반의 미스테리한 김미진 교수의 죽음과 정서의 등장, 그리고 중국행까지 이어져가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스케일이나 속도가 조금 떨어진다. 그 까닭은 미궁의 세계를 찾아 헤매이는 동안의 긴장감들이 사실(史實)속 구체적인 책들이 언급되며 그 범위가 점점 좁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최근 만나온 우리 고대사학계의 최신 성과들이 다수 반영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이 책의 재미과 진가를 확인짓는 가늠대가 될 것이다. 우리 고대사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독자라면 조금은 내용의 전개와 결말이 아쉬울 것이고 이런 이야기 자체를 거의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면서 그만큼의 재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이 접점이 작가 김진명을 있게 하는 힘이자 그를 독려하는 우리들의 바람이다.
 
 학계에서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고대사의 재발견?을 추진하는 우리 사학자들의 노력보다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진 작가의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사회적인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기에 이러한 책들이 조금 더 정교하고 조금 더 넓고 깊게 '전면적'으로 기존의 완고한 틀과 부딪혀 파열음을 내기를 나는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이야기에 담긴 내용의 소중함들이 더욱 더 널리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발간된 지은이의 이와 비슷한 얼개의 이야기 [코리아 닷컴]이 조금은 싱거운 전개로 적지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소설은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와 고대사를 누비는 실제 책 이름 등으로 현장감을 많이 회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 다음에 나올 이야기는 이보다 더 치밀하고 더 파격적인 방법으로 우리 고대사를 찾아가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일부러 책 내용에 관한 자세한 언급은 삼가하였다. 앞서도 말한 바처럼 손에 들면 내쳐 달려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기에 유리 겨레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그 근거에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지.지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등등..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담겨있다. 자, 그러니, 어서들 달려와 만나보시기를..그리고 더 넓고 깊은 우리 고대사의 시간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기를 바란다.
 
 
2009. 7.2. 저 하늘의 별들이 몇 천 년 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밤에….
 
들풀처럼
*2009-15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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