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드라마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1
최복현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 신을 불러들였다 (14)
 이 한 문장으로 지은이의 '신'과 '인간'에 대한 관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탄생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기에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호감을 가진 채 책 속으로 거대한 신화의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커다란 전지크기의 용지에 정리된 별첨의 신화 계보도를 펼치는 순간, 먼저 내용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이처럼 정리해놓은 지은이의 노고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은이가 그리스 신화의 産地인 그쪽 학자가 아니라 우리 사람이라는 사실, 이제 우리손으로 바라보는 그리스 신화를 가지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책을 겨우 한 번 읽고, 커다란 도표속의 신화계보를 다 깨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장으로 보는 지식계보도"라는 신선한 기획과 그 결과물은 보는 이를 감탄케 하기에 충분하다. 머리 속에 완전히 따로 자리를 잡고 있던 신들의 계보가 책 속의 설명과 도표 속의 계보도를 따라 이해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래서 우리는 배우고 또 익히는 것이리라.
 
 왜 그리스 신들은 인간과 닮았을까? 신화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이 지어낸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안에서 신화가 싹트고 키워진 것이다. 신화는 바로 인간의 모습을 다룬 이야기이면서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 넘고자 하는 인간 욕구의 발로이다. (18) 
 
 세상 모든 '신'과 '인간'의 이야기가 이러할지니 정녕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모든 것들이 신들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남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좀 더 쉽게 신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신들의 일상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생활이니까. 이 책에는 이러한, 어쩌면 평범하기까지한 신들의 생활이 다시 한 번 요약+정리+설명 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를 읽기 전에 알아야 할 몇 가지 키워드'(26~34) 와 '신들의 정권 투쟁 ①~④'는 흐트러져 있던 우리의 상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어 그리스 신들의 세계로 더 가깝게 우리를 이끌고 간다. 
 
 싸움에서 이긴 제우스는 티폰을 사로잡아 타르타로스 깊숙이 던져 넣었다. ~ 티폰은 깊고 깊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제우스에게 패한 것에 분노가 들끓었다. 그는 그 화풀이로 힘을 가하여 반항을 했다. 그는 그렇게 하여 그곳에서 바람을 다스리는 신이 된다.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모든 바람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태풍을 'typhoo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91)
 
 언젠가 한 번 들어본 듯한 이야기, 태풍의 유래를 이처럼 알게되는 것도 그리스 신화를 만나는 재미이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 등이 모두 그리스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볼 때 왜 그리스 문화를 유럽 문명의 뿌리라 일컫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참으로 방대하고 거대한 드라마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의 제목을 단지 '신화'가 아니라 [신화 드라마]라고 하였던 것이리라. 사람이 만들어내고 그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며 스스로 살을 붙여나가며 함께 넓고 깊어져가는 신들의 드라마. 그리스 신화에는 분명 그런 요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남의 나라 이야기를 우리 이야기처럼 자주 접해온 터라 마치 우리 신화처럼 친숙하다.
 
 그런데, 문득, 우리 신화는, 우리의 드라마는 어디에서 누가 쓰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우리 신화는, 신화 속 이야기들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어디에서 살아남아 있는지…. 그리스 신화의 방대한 이야기들과 비교해보면 아쉬움이 더해진다. 최근에서야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조선 옛문화의 성대함이나 유적들에 대한 연구들이 있기에 조금은 그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 신화에 너무도 무심했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속의 이야기보다 그리스 신화를 더 잘알고 있다는 사실은 나 한 사람의 문제보다는 우리 문화와 지식의 지형도와 관련된 취약점 탓이리라.
 
 하여 나는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 다시 찾은 고조선,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요하문명,흥산문명 등으로 일컫어지는 우리 고대사와 그 속에 깔려있는 우리 겨레의 신화들도 언젠가는 "한 장으로 보는 지식계보도"로 펼쳐질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그 날을 기다리며 하나하나 차곡차곡 우리 눈, 우리 실력을 이처럼 쌓아가야하리라. 신선한 기획과 충실한 정리, 그리고 적절한 자극을 던져 주는 이 책처럼 말이다.
 
 
2009. 4. 11. 밤, 고구려의 밤하늘이 문득 그리워지는….
 
들풀처럼
*2009-10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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