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세상을 날다
소피 라구나 지음, 황보석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Ⅰ.
 딱 스물 다섯 해 전, 그러니까 1984년 겨울, 고향 부산에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우리는 아직 어렸었다. 아니, 나는 어렸었다. 죽마고우(竹馬故友) 혹은 지음(知音)으로 일컫는 내 가장 오래된 벗, 녀석과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의 겨울을 보내며 어디에 진학해야 할 지 고민중이었다. 그러던중 우리가 같은 대학을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갔고 여러가지 정황 - 경제적인 형편이나 앞으로의 전망 등- 을 고려할 때 기숙사 생활이 제공되고 취직이 보장되는 '항해학과'가 앞으로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각자 따로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따라 얼떨결에 무리수를 두고 서울로 가버렸다. 당시 나는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만 흥분하여 - 9명중 나를 포함한 6명이 서울로 갔으니 ~ -  녀석에게 이와 관련한 별도의 상의도 없이 그냥 떠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녀석의 어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은 그 때 녀석이 많이 서러워하였다는, 함께 같은 대학을 다닐 수 있을거라 기대하였는데 나만 떠나버려 울기도 하였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던 순간 나의 모자람에 갑자기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의 심정을 결코 알 수 없다. 다행히 나처럼 곁에서 지켜보고 전해주신 어머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녀석의 그 때 그 감정을 나는 지금도, 아니 평생을 모른 채 지냈으리라. 아마도 그 일 이후 나는 녀석을 더 자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더욱 그리운 벗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Ⅱ.
 모든 일들은 동시에 일어난다. 어떤 삶이 자기 삶에만 일어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동시에 삶을 살아가고 누구나 다 자기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39)
 
  주인공 버드슈거의 우정 이야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슈거의 갑작스런 이사로 인한 헤어짐을 앞에두고 버드가 겪는 세상사의 모든 고민들 - 가장 친한 친구의 떠남에서 비롯된 오래전 엄마가 떠난 사실, 학교생활의 흔들림, 아빠와의 불화 그리고 가출! - 을 읽으며 이번에는 내가 울었다. 
 
 자신의 취미이자 거의 전부인 '새 이야기' 책을 들고 떠난 난생 처음의 여행길에서 소년은 책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기차역에서 목숨까지 잃을 뻔하다가 구조되어 일상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 어린시절들, 좋아하던 벗들과 헤어지던 순간들을 이처럼 생생히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도 슈거버드는 서로 만나는, 그런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한 사이일까? 그러리라, 그러하리라…. 나는 믿는다. 
 
 어릴 적부터 쌓아온 우정만큼 순수한 것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나이가 들고 세파에 휩쓸리고 흔들리고 부대끼며 허청거릴수록 우리가 돌아가야할 곳은 가족의 품과 벗들의 어깨동무뿐이지 않던가? 아버지를 따라 멀리 떠나가는 벗에대한 찬가(讚歌)처럼 내게 다가온 이 책, 새에 대한 모든 것을 좋아하여 그림도 곧잘 그리고 심지어는 새들처럼 생각하고 날 수도 있었던 소년의 이야기, 잊혀졌던 우정을 떠올리며 중년의 아빠가 읽는다면 얻을 것이 더욱 많은 그런 책이다.
 
Ⅲ.
 몇 년 전 내가 무척 힘들어할 때 곁에서 많은 격려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누구보다 많은 도움을 주었던 녀석이 최근의 경기불황으로 오히려 지금은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릴 적 그 때부터 나보다 더 철들고 어른스러웠던 녀석답게 지금의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리라. 곁에서 큰 도움은 주지 못할지라도 틈틈이 메신저로 대화하며 우리는 이 '떨어짐'을 끝내는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서로를 격려한다. 하루하루 버팅기는 날들 속에서 버드슈거같은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남은 삶도 잘 살아갈 수 있으리니...... 
 
 토요일에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그렌펠 강으로 갔다. 그리고 버드나무 동굴로 기어 올라가 안으로 들어갔다. 슈거가 없으니 모든 것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햇살이, 버드나무 이파리들이, 느리게 흐르는 강물이 곧장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리는 모든 소리들도 모두 내 안으로 그대로 스며들었다. (65)
 
 
2009. 4. 5. 새벽, 서른 해, 스며든 우정, '녀석, 또 보고싶구나 !'
들풀처럼
*2009-09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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