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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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내 끝을 알았어야 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만 그 벽을 넘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깊은 진리를 잊지 말았어야 했다.

유월 첫주,
몇년만에 벗들을 만나고 속초와 설악을 오가며
김 훈의 "강산무진"을 읽으며
그의 표현처럼 늘 아득하지만
멋진 감상문을 한 편 꼭 써보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개뿔,감상문은 커녕 ...제대로 된 감상이나 하였던지...

6월 4일부터 갑자기 바빠진 회사일을 핑계로
야근작업과 또다시 시작한 담배질과 여전한 술과의 전투속에서
멋진 글은 커녕 최소한의 몸 유지도 불가능함을
일찌감치 알았어야 했다.

그의 소설집은 감히 한마디로 나타내자면 아득하고 또 아득하다.
비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오며
차창에 달려와 부서지는 안개처럼 아련하고 아득하다
늘 그러했지만 그의 글은 한여름에 읽어도 서늘했고
숨겨진 나의 욕망을 보란듯이 드러내며 솔직했다.

아내의 죽음길에서도 회사 여직원에게 보내는 연서를 상상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 연서마저도 열정이 아니라 서늘함으로 아름다운
그의 글들은 내게 와서
너도 이렇지 않느냐고 비웃고 사라지곤 하였다.

그리고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어쩌면''으로 시작하여 ''당연히''로 달음질치다
''결국엔'' 주저앉아버린 16강행의 좌절을 보면서도
이전처럼 분노하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딱 한 번
이천수의 눈물을 보며 그에게 미안했던 것을 빼곤...

그랬다.
진실은 단순한 것이었다.
누구를 탓하거나 나무랄 것이 아니었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달릴만큼 달려보고 부딪칠 만큼 부딪쳐본다음
무릎꿇고 앉아 굵은 눈물 한방울 흘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심을 알고 달려와 부둥켜 안고
수고했노라고 열심히 하였으니 되었다고
다음에는 더 잘 될거라면서 어깨를 감싸안고 등두들겨 주는 것이었다.

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찌하여 더 부딪히지 아니하고 주저앉아 있느냐고...
하여 스스로를 다잡아본다.
뭐라도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겠냐고...

김 훈의 글이 그 서늘함과 아득함으로 나를 좌절시킴과
동시에 분발시키는 것이라면
이번 월드컵에서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밤을 새운 수많은 사람들 모두는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해 스스로에게 열정을 불어 넣는 길만이
이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임을 내게 깨우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그리고 온누리에 울려퍼질

"홍익인간 음주가무"를 위하여
나는 오늘도 더 열심히 부딪혀야 겠다.

카스!!!

[인상깊은구절]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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