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옹"해 드리리다. |
| - 정호승 시집 "포옹"(2007년)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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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고달파질수록 사람들은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지거나 스스로를 낮추게 됩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이후 3년만에 만난 시인은 후자의 길을 택한 듯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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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볼펜으로 이혼신고서를 쓰던 때가 언제이던가 |
| 헤어지느니 차라리 그대 옆에 남아 무덤이 되고 싶던 날들은 가고 |
| - '흐르는 서울역' |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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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치는 사라지고 국수만 먹고 있다 |
| - '잔치국수' |
|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 |
| - '바닥에 대하여' |
| 폭설이 내린 날 / 내 관을 끌고 올라가리라 |
| - '나의 수미산' |
| "이 짧은 시간 동안"(2004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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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시집들에서 이미 예감되었던 시인의 우울, '삶의 바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그러안으며 나아가는 그의 자세는 이번에도 변함없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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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개인 신상에 큰 변화가 있었거나 어떤 계기가 있었던 듯 합니다만 시인의 마음을 다 알수는 없겠지요. |
| 어쩌면 '사랑의 서정시인'으로 불리우던 그에게서 더 깊어진 절망의 노래를 듣는 일은 괴롭기까지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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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한 마리 / 툭 /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은 |
| - '빈틈' |
| 가는 발목에 끈이 묶여 |
| - '끈' |
| 내 눈물의 깊이는 재어보았니 |
| - '수표교' |
|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 이제 알겠다 |
| - '스테인드 글라스' |
| 더러운 내 손이 떠내려간다 |
| -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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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옹"의 앞부분만 슬쩍 훑어 보아도 보이는 시어들, '떨어져 죽어 있는','묶여','눈물의 깊이','산산조각','더러운 내 손' …스스로에 대한 끝까지 가는 낮춤으로 보입니다. |
| 이 바닥까지 가는 낮춤에서 그친다면 시인의 시는 한탄과 자조로만 끝날 것입니다.그러나 시인은 역시 시인,그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희망의 기운을 발견할 줄 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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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는 일 / 누구나 마음 속에 절 하나 짓는 일 |
| 지은 절 하나 / 다시 허물고 마는 일 |
| - '지하철을 탄 비구니' |
| 내가 휘청거리면서 그래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
| 내 눈물에도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
| - '마디' |
| 나는 오늘도 물을 가득 채운 통 속에 |
| 내 죄의 감자를 한꺼번에 다 집어넣고 씻는다 |
| 내 사랑에 묻어 있는 죄의 흙을 제대로 씻기 위해서는 |
| 죄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게 해야 한다 |
| - '감자를 씻으며' |
| 아직도 넘어질 일과 |
|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
|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
|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세운다 할 지라도 |
| - '넘어짐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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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음에도 여러 편의, 시인다운, 멋진 시들을 보여줍니다. '유등','밤의 연못','포옹','집 없는 집','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등의 시에서 그만의 서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풍경화로도 아름답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시 한 닢 띄워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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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는 인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
| 설악을 등지고 방파제에 앉아 |
| 허겁지겁 활어회를 먹는 인간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
| 외롭고 쓸쓸한 갈매기들에게 소주 한 잔 건네지 않고 |
| 저 혼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인간들이 마냥 미웠던 것은 아니다 |
| 바다의 상처가 섬이 된 줄 모르고 |
| 해가 지도록 바닷가에 앉아 모래를 헤아리다가 |
| 결국 모래가 되어버린 인간들이 결코 안타까웟던 것은 아니다 |
| 다만 평생 감동 없는 밥을 먹는 인간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을 뿐이다 |
| 속초항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어등을 끄고 코를 골며 자는 |
| 저 지친 오징어잡이배들을 설악으로 끌고 가 잠들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
| 오징어와 명태와 고등어와 또 넙치들이 |
|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정히 불을 밝히다가 |
| 수평선을 바라보며 고요히 늙어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
| 진정으로 살아보지도 않은 채 죽어간다는 것이 |
|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
| 등대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
| 인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
| - '무인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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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어 따뜻한 목소리로 부르는 시인의 노래를 들으리라는 희망으로
그를 뜨겁게 '포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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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에게 남은 건 |
| 부러진 나무젓가락과 먹다 만 단무지와 낡은 칫솔 하나뿐 |
|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
| -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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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1. 15. 흔들리는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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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