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제 시대가 달라졌으므로, 내가 입을 열 때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나갈 터이니…… 귀 있는 자들이여, 들으라. (10)
 
 무려 65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그 속을 타고 흐르는 지식에 대한 사랑, 중세 암흑기를 거슬러 이어지는 지식의 전승에 관한 이야기라니…. 이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일까, 오리려 의구심이 이는 책, 읽는 동안도 재미있었지만 읽고 나서 돌이켜 보는 시간들은 더욱 좋다. 아마도 이 책의 단점을 말하자면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닐까? 
 
 "향기, 즉 영혼을 들이마시되 서둘러서는 안 된다. 살아가는 일이 그렇듯, 요리를 하는 것도 그 자체를 즐겨야 해. 우리가 공들여 만든 음식을 몇 분 만에 먹어치운다 해도, 창조의 행위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법이지." (71)
 
 빈틈없는 구성과 이야기의 재미, 주제의식까지… 오랜만에 만나는 잘 쓰인 소설이다. 너무 여러가지를 다 갖추고 많은 이야기들이 언급되어 오히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생각마저 이는 것이 단점일 정도이다. 그렇지 않은가, 소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개연성이 높을수록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이 책은 너무 완벽하여 오히려 그 가능성을 낮추는 듯한 느낌이라는 얘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바뀌는 걸 아주 싫어하지. 하지만 날 믿으렴. 이 세상에는 교리 말고도 알아야 할 게 아주 많단다. 인간의 잠재력은 …… 그러니까……. 어쩌면 기적을 행할 수 있엇던 사람은 예수만이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우리 모두 기적을 행할 수 있는지도 몰라." (239)
 
 거리의 부랑아였던 주인공 루치아노를 거두어 들여 주방일을 가르치면서 고대로부터 전승되는 지혜의 비밀이 담긴 책을 전해주는 주방장 페레로와 중세 이야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세대에까지 이어져오는 지식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뚫고 전해져오는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아마도 그 과정이 '기적'과 같은 것이라고 지은이는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것이었으리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살과 피라는 나약하고 썩기 쉬운 것으로만 맺어지는 게 아니다. ~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노력과 의지, 사랑으로 단련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 따라서 더 필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 (629)
 
 흔히들 이뤄지는 단순한 핏줄간의 전승을 넘어 나의 가족이 아닌 남을 키워가며 시대의 지식을 이어가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그들, '지식의 수호자'들이 고른 직업이 요리사라는 별정직인 것이다. 주연도 조연도 아니라 그저 곁에서 보조하는 역할의 주방장이라면 중요한 자리, 중요한 시기에 함께 존재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에 요리사라는 직업과 그 요리사의 책이라는 것만큼 적절한 위장술은 없어보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성공하여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까지 이어진다. 
 
  중세 시대를 아우른 역사, 비밀의 책을 찾아나가는 미스터리, 맛깔나는 중세시대의 요리들, 인쇄술에서 신세계의 항해, 유대교,기독교까지 짚어보는 지식들, 살아가는 삶의 교훈들, 이 모두가 너무 잘 버무려져 2% 넘쳐날 정도인 이 소설, 그리고 또한 아래와 같은 이야기들….
 
 "저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요. 범죄자였을지도 몰라요." "그건 중요하지 않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한 존재이고,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지. 네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개발해야 해. 우리가 그것에 성공할 때, 인류가 진보하는 거란다. 알겠지?" (343)
 
 우리는 용서할 줄 알아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단다. (333)
 
 이 세상에 가망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333)
 나는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성취한 결과물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려는 분투, 잘하고자 하는 의지, 끈기있는 노력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분에게 배웠지. (334)
 
 "네가 한 번 시도해보기를 바랐을 뿐이란다. 두려움 앞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건 아주 중요한 능력이고, 네게도 그런 능력이 필요하단다. 우리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힘을 발견하게 되지. 난 네가 그렇게 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성장할 수 있거든." (348)
 
 사람과 지식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확신, 그 신념만으로 역사를 이어간 '지식의 수호자'들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이 책. 그 믿음들에 관한 이야기들만 이렇게 따로 놓아두고 보면 잘 쓰여진 자기계발서로도 익힐 수 있겠다. 자, 이제 이 책에 대한 칭찬은 그만하련다. 직접 만나보시기를…. 마지막으로 첫사랑에 관한 몇 마디 이야기를 옮겨놓아둔다. 이 책에는 사랑이야기도 있으므로….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지. 특히 젊었을 때는 더욱. 안 그런가?" (141)
 
 패레로 주방장이 내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짝사랑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지칠 대로 지쳐 상처 입은 몸을 웅크린 채, 은밀한 장소로 숨어들 뿐. (627)
 
 
2009. 3.28. 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19), 한참을 묵혀둔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내 글은 맘에 들지 않는, 씁쓸한….
 
들풀처럼
*2009-090-03-28
 
*책에서 가려뽑은 글들, 옮겨둡니다.
 
 (~) 꿈 때문에, 우리는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긴긴 낮과 남의 집 현관 앞에서 웅크리고 자는 밤을 견뎌낼 수 있었다. (57)
 
 "아니, 현명한 자들이 지식을 모으는 동안 못난 자들은 전쟁을 벌였고, 그때마다 도서관의 일부가 허물어졌단다. ~ " (113)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질곡에 휩쓸려 어둠과 비밀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된, 소용돌이 같던 나의 인생 역정이 생각났다. (143)
 
 " ~ 자기 이기심에 면죄부를 받고 싶어 했어. 당연한 일이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겠어? 소원을 빌고, 확신을 얻고, 위안을 얻고, 상과 벌을 받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안 그래? ~ " (151)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뭔가 더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되죠." "인생에서도 그렇죠." (180)
 
 "모래가 유리로  변하듯, 포도는 시들어 건포도가 된단다." "알아요. 마술처럼요." "아니, 이건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야. 모래 한 줌이든 포도 한 알이든 아니면 복음이든, 여기 뭔가를 첨가하거나 빼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거나 인간의 간섭을 거치면 변화는 일어나게 마련이란다." (232) 
 
 "그노시스파의 복음에서는 예수가 내면에 신을 지닌 인간이라고 가르치지. 승인받은 다른 세 가지의 복음에서조차 그렇게 가르친단다. 바로 우리들처럼 말이다. 예수는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부분을 우리의 일부로 인식하길 바랐지. 저 멀리 있는 어떤 왕국에 대한 게 아니라, 바로 여기 내면의 깨달음에 대해 설파한 거야." (235)
 
 "우리가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 신이 왜 우리에게 두뇌를 주셨겠어요?" (240)
 "그래. 교황은 부와 군사력을 다 갖고 있어. 하지만 보르자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돈과 군대가 있는데 또 뭐가 필요한가요?" "바로 사람들이란다. ~ " (373) 
 
 "좋다. 올려다보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잊지 말거라. 예수가 그렇게 말했단다. 노자붓다도 같은 말을 했지." (373)
 
 난 네가 로마에 와서 이곳의 권력과 이곳의 권력이 우리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랐단다. 우리의 무기는 지식이란다. (374)
 
 누군가로 하여금 널 사랑하게 만드는 물약은 이 세상에 없단다. (408)
 
 "아니, 이건 그저 약 성분을 혼합한 것일 뿐이야. 처음 느끼는 낯선 기분이 들겠지만, 그건 거짓된 감정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그걸 이해해야 해. 사랑은 정직함이 무르익어야 생긴다. 상대에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깊은 신뢰를 쌓아야 해.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지. ~ "(411)
 
 " ~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지. 믿음이 사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단다." 이보다 더 심원한 진리가 있을까? 많은 이가 그 책에 자신이 가장 원하는 바로 그것이 담겨 있다고 믿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451)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느냐? 인내하되 방심하지 말 것, 바로 정신을 집중하라는 뜻이다." (485)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우린 뒤에 뭔가를 남기지. 우린 지식을 후세에 전하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단다. ~ 현재의 순간과 풍요로움에 고마워하라~ (488)
 
 아주 곱게 갈아야 한다. 덩어리가 남아 있어서는 안 돼. 세심함이 큰 차이를 만든단다. (491)
 
 삶의 많은 부분이 기다림이란다. 그러니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면 좋은 거지. (492)
 
 '내가 해냈으므로 너희도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예수가 말했단다. (593)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 있는 것은 째깍거리며 가는 시계와 다를 게 없단다. 죽는 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목적을 갖고 고결하게 사는 건 가치 있는 일이지. (596)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또한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지 않고 대신 학교에 보냈다. (6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