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여행 1 : 그리움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안타깝게도 게으른 탓에, 좀처럼 TV를 집중하여 보지 않는 탓에, 언젠가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것 같은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덕분에 책으로 만나는 풍경들은 익숙한 곳의 풍경이면서도 새롭고 낯선 풍경들입니다. 16곳의 우리땅 가운데 절반정도는 발을 디뎌보았던 곳이고 나머지는 듣본적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도 이 책속의 풍경은 우리네 풍경입니다. 요즘 물밀듯이 쏟아져나온 여러나라의 낯선 풍광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릅니다. 첫 이야기로 등장하는 '한계령'의 눈 이야기만으로도 메마른 남도의 이 곳에서는 그리운 눈 소식에 가슴 설렙니다. 올 겨울에 또 눈 한 번 제대로 만나지 못한 이 곳입니다. 
 
 사진 옆의 글들은 뒷전입니다. 책을 뒤적이며 몇 번을 사진들이 뿜어내는 혹은 전해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서성였습니다. 눈 속의 황태덕장이 저를 한 번 다녀가라고 손짓 하고 있습니다.
 
 눈이 쌓일수록 그 속에 묻힌 것들은 더욱 생생해진다. ( '강원 한계령'에서 ) (16)
 
 어둠을 밝히는 것은 불빛만이 아니다. / 은빛 찬란한 멸치 떼가 이루는 빛의 향연! / 한참을 그렇게 이리저리 불 장단에 맟춰 / 멸치들이 춤을 춘다. ( '제주 추자도'에서 ) (55)
 
 멀리는 위로 서울,강원도에서 아래로는 제주도까지 그리고 바로 곁의 가야산,통영,거제까지 한번쯤은 다녀온 곳들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특정한 장소와 이야기들이 어우러지는 만남은 또 다른 감흥을 불러옵니다. 그 속에 제가 태어난 영혼의 고향 태백도 있습니다.
 
 지금 어디야?/ 그렇게 너는 내게 자주 물었다. // 나는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여기저기 / 흘러 다니는 중. / 그러다 어느 한 곳 / 분명 머물고 싶은 곳이 있겠지…… // 내가 너였고 네가 곧 나였던 시간은 흘러갔다. // 이곳은 너를 닮은 크고 깊은 산 / 그 곳으로 들어서며 나 네게 묻는다. /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  ( '강원 태백'에서 ) (133) 
 
 '지금 어디야?'라고 제게 물어주는 산, 제 고향, 태어나 단 두 해를 살았다는 옛장성탄광이 있던 곳에, 몇 해전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랑 아이랑 처음 다녀왔습니다. 이른바 '성지순례(聖地巡禮)'였지요.^^*  제가 태어났지만 자라지는 못하였던 곳, 신내림을 받았지만 제 본모습을 깨치기도 전에 떠나왔던 그 곳을 찾아가던 그날 밤, 하늘에서 쏟아지던 별빛 아래에서 저는, 가족들은, 특히 당시 7살이었던 딸아이는 너무도 먹먹한 감동을 받았답니다. 정말 새까만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던 별빛들을 보며 사람이 별에서 온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깨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그런 태백입니다. 그냥 태백이 아니랍니다. 
 

 이 책을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이처럼 참으로 다양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 다양함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책을 보며 너무 많은 기대나 바램을 갖지는 마세요. 저처럼 한 곳의,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살아온 한살이를 돌이켜볼 수 있을지니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하루에 단 한 순간이라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다독거리고 추스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허물어진 나날들 속에 이 책을 통하여 만난 마음의 고향들을 꿈에서나 그리워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돌아갈 그 곳이 있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풍경이 있음을….           끝으로 '태백, 강원도, 겨울, 눈'…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詩 한 닢 띄웁니다. 고마운 책으로 좋은 여행 즐기시기를….
 
 
견인
올 수 없다 한다
태백산맥 고갯길,눈발이 거칠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신만 되돌아온다
분분한 어둠속, 저리도 눈은 내리고 차는 마비돼 꼼짝도 않는데 재차 견인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산 것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일 것처럼 쏟아붇는 눈과
눈발보다 더 무섭게 내려앉는 저 불길한 예감들을 끌어다 덮으며
당신도 두려운 건 아닌지 옆얼굴 바라볼 수 없다
 
눈보라를 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만항재에 도착한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 
안 그래도 이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었다고 한다
기억으로는 삼십년 전 바로 이 자리,
이 고개에 큰길 내면서 수북한 눈더미를 허물어보니
차 안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 한다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그 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이병렬, <바람의 사생활>중에서
 
 
2009. 3. 8.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왔습니다. 고마운 봄날입니다.
 
들풀처럼
*2009-07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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