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시안황금알 시인선 19
윤관영 지음 / 황금알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초면에 실례인줄 알면서도 먼저 한말씀 드립니다. 아무리 '시집'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아니라지만 이처럼 심심하고 무심하고 큰재미 없는들을 누가 보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냥 읽다말려고 하였답니다. 뭐,이건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도 이 시집의 제목인 [어쩌다 내가 예쁜]에 끌려 정말 어쩌다 내가 예뻐하는 그런 시들이 등장하리라 기대를 하며 찬찬히 따라간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詩 "어쩌다, 내가 이쁜"의 마지막 두 행에서야 나는 한시름 놓고 이 시집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내가 봐도 
 내가 이쁠 때가 있는 것이다 
 - "어쩌다, 내가 이쁜"에서 (122)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끔은'입니다. 아무리 장동건이라도 자기를 바라보며 늘 '아, 나는 잘 생겼어. 이만하면 역시 대한민국 최고 미남이지.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하나도 틀린 말 없지'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 예전에 그리 살다 가신 분이 한 분 있었지요. '나르시스'라는 옛사람말입니다. 그리하여 "어쩌다, 내가 이쁜"은 일상의 대부분인- '가끔은'을 뺀 - 나머지 삶들을 자신의 눈으로 정확히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시인의 정직한 심성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라 믿게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쌀도 현미도 보리도 좋지만 / 콩이야 팥이야 말도 많지만
 차라리 내 찹쌀이 될란다 / 날 쳐 / 날 녹여 
 남 끌어안는 찹쌀이 될란다  - "체 치면서"에서 (13)
 
 역류는 계속 되어야 골고루인 것이다
 층도 결도 녹아지는 손질이 대를 이어야
 참 기름이 진짜 참기름이 되는 것이다  - "깨를 볶으면서"에서 (15)
 
 그렇지요, 이런 모습들이 시인이 보여주는 생활의 모습이며 수더분한 우리네 삶의 본질이겠지요. 그리고 역시 당연하게도 그런 일상이 무에 그리 재미있겠습니까…. 그래도 시인은 이런 일상들속에서 자신만의 재미 혹은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찾아 냅니다. 그래야 시인이지요.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솟는 줄기
 어떻게 흔적도 없이 구멍에서 솟는가
 국수가락처럼 늘어진 뿌리 무엇이
 줄기이게 하고 뿌리이게 하는가
 널 보고 있다 쪄도 아리던 껍질
 등 푸른 서슬로 사는 너 - "감자"에서 (24)
 
 늘 먹고 바라보는 감자를 줄기부터 뿌리까지, 그리고 그 껍질의 아린 맛까지 버무려 '등 푸른 서슬로' 피어나게 하는 것은 역시 시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생감자를 즐겨먹기에 그 아린 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아마도 시인보다 더 많은 감자를 먹어왔겠지만 감자를 보며 위와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뭐,역시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그저 먹기만 할 뿐 키워내지는 못하였으니까요.
 
 그리고 이 시집에는 중년의 나이인 시인에 걸맞게 '술''性'스런 구절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어색하거나 야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정겹고 살갑기만 합니다. 익숙하고 구수하여 친근한 느낌들을 준다는 그런 말이지요. 아마도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탓도 있을겝니다.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 "그 자리"에서 (70)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가서 / 그 풍경 속에서의 일이야 사랑뿐이겠지만
 (다른 일 하실 분은 하시구)  - "car론論"에서  (73)
 
 수다의 중심엔 / 술병이 있고 술잔이 있다 - "사실이거나 이미지거나"에서 (77)
 
 질통이란 말끝에 문득 여자의 몸이 떠오르는
 나 같은 놈 참 대책없는 놈이긴 하지만 
 한 생 궁뎅이 서로 비비며 짓물러 보면 안다
 질긴 게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흔들어 쏟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 "질통"에서 (82)
 
 그렇게 살아가는 거 아닌가요, 다~들.  술도 마시고 이런 이야기도 하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거, 그것이 행복이란 걸 아는 사람은 오히려 적더군요. 그리고 그 행복이 오래되어 '지겨운' 것이되면 삶도 인생의 낙도 '질겨'지는 것이라고 시인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겠지요.
 
 자, 그럼 이만큼 따라오신 분들은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심심하다, 재미없다는 그 일상 속에 '가끔은' '이쁜'일들이 일어나 다가와서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버팅기며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임을…. 하여 이 시집은 간이 잘 되어 허겁지겁 먹는 음식이 아니라 산나물 무쳐먹듯 조금씩 쉬엄쉬엄, 하나씩 질겅질겅 씹어가며 먹어야하는 것임을…. 저 역시 이제서야 그 첫 숟갈을 떼었을 뿐입니다. 고작 이만큼만이랍니다.
 
 볕 좋은 봄날에 
 뭔 힘이 밀어 꽃잎은 나오느냐
 나오면서
 나오면서
 피어나느냐
 
 뭔 힘이 밀어 태깔마저 밀어내느냐
 볕 좋은 봄 한날
 내 오줌 누던 모습, 정면으로 지켜보던 흰둥이랑
 쪼그려 앉아서
 흰 배꽃을, 분홍 복숭꽃을
 한나절 보고 있었어라
 
 삼 년 전 꽃나무 심은 내가 갸륵해서
 거름마저 파묻은 참이어서
 앞발 드는 흰둥이 목덜미를 
 쓸어주는데,
 
 내 몸에선 뭔 힘이 밀어
 이리 눈물나는 것이냐
 
  - "볕 좋은 봄날에" 전문 (34)
 
 이제 곧 3월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09.2.28. 새벽, 아침이 오듯 봄도 곧 오겠지요.
 
들풀처럼
*2009-061-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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