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쉬운 차 - 혜우 스님의 풀어쓴 차 이야기 이른아침 차(茶) 시리즈 6
혜우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1983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이 부산 서면 중심가의 한 커피숖- 젊은이들이 가는 카페-에서 주방일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하여 나는 방과후 가끔 어머니를 만나러 서면 중심가로 가곤 했었다. 그런데 당시만 하여도 커피솦 혹은 카페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혼자서 떳떳이 들어가기엔 어색한 것이라서 2층에 있던 그 곳을 지나 4층 옥상에 있는 우리찻집 [다전(茶田)]에 미리 가있곤 하였다. 
 
 그 때 우리 차를 알게되었다. 은은한 향이 풍겨나오는 '차밭'에서 정확한 뜻도, 이름도 모르고 마시던 우리 차의 맛은 일회용 커피만 먹어오던 청춘에겐 새로운 맛이었고 그 찻집의 분위기도 우리 가락 - 국악+김영동+김수철 등 - 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낙서장을 뒤적거리거나 전통문화책을 볼 수 있는, 내게는 어떤 문화적인 것들을 배우고 흡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 때, 그렇게 차는 내게 왔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녹차인 '세작(細作)'을 알게된 것도 그 때였다. 그러나 고교시절을 졸업함과 동시에 차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일회용 자판기 커피의 간편함과 편리함, 무엇보다도 저렴함이 차를 내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차 한 잔이라는 말은 그냥 커피 한 잔으로 대체되었고 우리네 직장 생활 대부분의 곁에는 녹차보다는 커피가 함께 하게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녹차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년에 두어 번 부산에 내려갈 때에도 나는 가급적 '차밭'에 갔었고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간단한 도구와 '차'를 준비하였었다. 하지만 일하다가 간단히 차 한잔 마시기에는 시간도 환경도 분위기도, 경제력도 나의 편이 아니었다. 겨우 한 두어 번, 한달에 마시는 차를 가지고 '차 마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차에 대한 기초 상식부터 차의 제조 과정, 차의 본모습, 차를 마시는 까닭까지 소소하게 잘 설명이 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일상생활에서 차 마시기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식의 차마시기는 정말 집에서 저녁 식후나 주말에나 가능한 일들이기에 나는 계속 고민해오던 바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말하련다.
 
 회사에서 업무중에 짬짬이, 커피 한 잔 마시듯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티백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냥 물 한 잔 따르고 티백 하나 넣으면 편안하게 차 한 잔 마실 수 가 있다. 하지만 이 스타일은 아무리 양보하여도 차 한 잔 마시는 모습이 아니다. '자세'나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차 잎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내게는 컸다. 차를 마시면서 차 잎조차 볼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차 한 잔이란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요즘에야 내가 정착한 방법은 작은 유리병 - 500ml 정도되는, 요즘에 다시 나오는 유제품 중에 유리병에 담겨 있는 제품들이 있어 간단히 구할 수도 있다. - 에 차 잎들을 풀어두고 정수기의 따뜻한 물을 잔에 따루어 마시는 것이다. 여기에 걸러내는 뚜껑만 준비하면 차 잎을 걸러내면서 차를 편안히, 간단히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두어 번 우려 먹을 수도 있다. 얼마전까지 역시나 '세작'을 마시다가 최근에는 '뽕잎차'가 손에 들어와 이파리 몇 잎 넣어 우려먹고 있는데 처음 맛보지만 향도 맛도 달콤한 것이 좋다. 겨울이 갈 때까지 즐기련다.
 
 이렇게라도 커피 대신 차를 즐긴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쉽게 차 마시는 방법에 오히려 근접한 것이 아닐까한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여야만 먹을 수 있다면 영원히 차는 우리 곁에 머물 수 없을 것이기에 앞으로도 좀 더 대중속으로 일상속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커피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차를 제대로 우려내고 차분히 앉아 정갈한 마음으로 마시는 순간도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더 많은 시간을 곁에두고 차를 즐기고 싶기에 이렇게라도 차를 마시며 즐기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씁쓸한 미소를 자아내는 다회가 많아졌다. 그들이 보여주는 손놀림이며 자태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을 매혹 시킬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불행하게도 형식만 있을 뿐 정작 차와, 차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차를 위한 자리에 있어야 할 차가 정작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차가 '선'이고 '도'라면 그것은 그대로 두고 차나 마실 일이다. 찻자리에서는 차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취할 것이 없다. (114)
 
2009.2.28. 새벽, 그냥 차 한 잔 마시고 잠들어야지 ~
 
들풀처럼
*2009-060-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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