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이 부산 서면 중심가의 한 커피숖- 젊은이들이 가는 카페-에서 주방일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하여 나는 방과후 가끔 어머니를 만나러 서면 중심가로 가곤 했었다. 그런데 당시만 하여도 커피솦 혹은 카페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혼자서 떳떳이 들어가기엔 어색한 것이라서 2층에 있던 그 곳을 지나 4층 옥상에 있는 우리찻집 [다전(茶田)]에 미리 가있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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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우리 차를 알게되었다. 은은한 향이 풍겨나오는 '차밭'에서 정확한 뜻도, 이름도 모르고 마시던 우리 차의 맛은 일회용 커피만 먹어오던 청춘에겐 새로운 맛이었고 그 찻집의 분위기도 우리 가락 - 국악+김영동+김수철 등 - 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낙서장을 뒤적거리거나 전통문화책을 볼 수 있는, 내게는 어떤 문화적인 것들을 배우고 흡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 때, 그렇게 차는 내게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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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녹차인 '세작(細作)'을 알게된 것도 그 때였다. 그러나 고교시절을 졸업함과 동시에 차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일회용 자판기 커피의 간편함과 편리함, 무엇보다도 저렴함이 차를 내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차 한 잔이라는 말은 그냥 커피 한 잔으로 대체되었고 우리네 직장 생활 대부분의 곁에는 녹차보다는 커피가 함께 하게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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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녹차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년에 두어 번 부산에 내려갈 때에도 나는 가급적 '차밭'에 갔었고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간단한 도구와 '차'를 준비하였었다. 하지만 일하다가 간단히 차 한잔 마시기에는 시간도 환경도 분위기도, 경제력도 나의 편이 아니었다. 겨우 한 두어 번, 한달에 마시는 차를 가지고 '차 마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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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차에 대한 기초 상식부터 차의 제조 과정, 차의 본모습, 차를 마시는 까닭까지 소소하게 잘 설명이 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일상생활에서 차 마시기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식의 차마시기는 정말 집에서 저녁 식후나 주말에나 가능한 일들이기에 나는 계속 고민해오던 바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말하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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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업무중에 짬짬이, 커피 한 잔 마시듯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티백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냥 물 한 잔 따르고 티백 하나 넣으면 편안하게 차 한 잔 마실 수 가 있다. 하지만 이 스타일은 아무리 양보하여도 차 한 잔 마시는 모습이 아니다. '자세'나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차 잎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내게는 컸다. 차를 마시면서 차 잎조차 볼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차 한 잔이란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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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요즘에야 내가 정착한 방법은 작은 유리병 - 500ml 정도되는, 요즘에 다시 나오는 유제품 중에 유리병에 담겨 있는 제품들이 있어 간단히 구할 수도 있다. - 에 차 잎들을 풀어두고 정수기의 따뜻한 물을 잔에 따루어 마시는 것이다. 여기에 걸러내는 뚜껑만 준비하면 차 잎을 걸러내면서 차를 편안히, 간단히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두어 번 우려 먹을 수도 있다. 얼마전까지 역시나 '세작'을 마시다가 최근에는 '뽕잎차'가 손에 들어와 이파리 몇 잎 넣어 우려먹고 있는데 처음 맛보지만 향도 맛도 달콤한 것이 좋다. 겨울이 갈 때까지 즐기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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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커피 대신 차를 즐긴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쉽게 차 마시는 방법에 오히려 근접한 것이 아닐까한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여야만 먹을 수 있다면 영원히 차는 우리 곁에 머물 수 없을 것이기에 앞으로도 좀 더 대중속으로 일상속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커피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차를 제대로 우려내고 차분히 앉아 정갈한 마음으로 마시는 순간도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더 많은 시간을 곁에두고 차를 즐기고 싶기에 이렇게라도 차를 마시며 즐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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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씁쓸한 미소를 자아내는 다회가 많아졌다. 그들이 보여주는 손놀림이며 자태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을 매혹 시킬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불행하게도 형식만 있을 뿐 정작 차와, 차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차를 위한 자리에 있어야 할 차가 정작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
차가 '선'이고 '도'라면 그것은 그대로 두고 차나 마실 일이다. 찻자리에서는 차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취할 것이 없다. (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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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28. 새벽, 그냥 차 한 잔 마시고 잠들어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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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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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0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