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한사상 - 한류의 세계화를 위한 한사상의 이론과 실제
김상일 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한류의 세계화를 위한 한사상의 이론과 실제"라는 긴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선뜻 만난 까닭은 '한류'라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한때의 것이 아니라 예부터 내려오는 그 뿌리가 깊은 우리 겨레만의 '한사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싶어서이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만난 이 책, 생각보다 훨씬 맘에 든다.
 
  요즘 이런분류의 책읽기가 어떤 점에서는 편협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우리 겨레와 관련된 기존 병든 사학(史學)의 물을 워낙 많이 먹어왔기에 그 반발작용으로 더 색다른 방향으로의 모색에 적극 동참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도 조금은 한쪽으로 몰아가는 논지들도 있다. 그래도 열다섯 편의 논문들이 제각각인듯 하면서도 일정하게 지향하는 바가 있으니 바로 우리 겨레의 뿌리인 '한사상'인 것이다. 그럼 먼저 '한'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만나보자.
 
  '한'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20가지 이상의 뜻을 가진다. ~ '하나',  '다多.일체一切.전체', '한갖'의 최소한과 '한껏'의 최대한, '큼(大)'과 '넓음(廣)' , '하늘天,무한無限',  '같음同'과 '함께共' ~ ( "글로벌 공공철학으로서의 한사상"-'김봉진'에서 ) (156~160)
 
 세상에나..어떤 말이 이처럼 넓고 깊이 여러가지 뜻을 아우를 수 있는지…참으로 우리에게 '한'이라는 말이 중요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한'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고유한 글자이면서도 세계속에 유사어로 존재한다. 결국 그 뿌리는 같은 말들이 먼 옛날 세상속으로 뻗어져 나가면서 우리에게는 '한'이라는 말로 정착된 것이리라.
 
 수메르의 '안An' 과 몽골어의 '칸Khan', 한국어의 '한Han'은 매우 유사하며 수매르어의 '딩그르Dingir' 와 몽골어의 '뎅그리Tengri'는 한국어의 '뎅그리Dengri'와 유사하다. 그리고 이 뎅그리 혹은 당굴레단군원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고대 아시아에서 북미주 대륙까지 한류는 흐른다"-'김상일'에서 가려뽑음 ) (183~205)
 
 결국 이 책의 지은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한'사상은 그만큼 오랜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므로 부디 잊혀졌던 역사를 바로잡고 후손들에게 이러한 우리사상을 물려주자는 이야기리라. 물론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도입부의 "여는글"에서 등장하는 우리 고유문화인 "선도문화""홍익인간 이화세계"(삼국유사)(38)라는 교의를 가진 우리만의 것이었는다. 비록 유교와 불교와 도교가 들어옴으로써 묻혀져 버린듯 하지만 우리의 선도(仙道)는 계승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신라의 화랑도인 것이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중국의 도교는 세속을 버리고 심산유곡에 들어가서 혼자 성통공완(性通功完)하여 불로장생하기를 바라는 개인주의 신앙'(39)이지만 신라의 화랑도는 '개인주의 가 아니라 나라와 이웃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본질로 삼'(39)아 '보다 적극적인 이타정신이 포함되어 있'(38)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문화의 원류인 것이다. ( "한류의 역사적 배경"-'박성수'에서 ) (21~48)
 
 이 책속에는 앞서 이야기한 '한'사상,'한류'와 관련한 여러 논지들이 전개되는데 특히 신선한 논지는 우리말의 '한두어 개'를 집합이론의 퍼지이론과 연관지어 설명해나간 "한의 '한두어 개'를 논리적으로 표현하기의 한 시도" -'김상일' (51~64)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지은이는 우리 고유한 한사상 속의 '애매모호성'을 퍼지 논리로 표현하고자 한다. 물론 이 글은 그 시도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신선한 시각과 논지로 우리의 사상을 논리적으로 설파할 수 있다면 한류와 한사상이 세계적인 사상사(思想史)의 한복판에 우뚝설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한국 난타문화의 원형"-'강은해'(371~409)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물극인 난타를 통하여 우리 문화의 원형을 유추해보는데 논지전개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왜 우리가 난타에 그처럼 매혹되는지가 이 글로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처럼 '묵고 쌓이고, 가득찬 것을 비워내고,내려 놓고,씻어 내는 행위가 바로 난타이기 때문이다.'(407) 그리고 그 원형은 익히 알고 있는 도깨비, 그리고 그 뿌리말인 두두리이다. 
 
 이말을 다시 요약하면 '두두리→도깨비→난타'인 것이다. 여기서 두두리는 쉬 짐작 할 수 있듯이 두드린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도깨비가 두두리에서 온말임을 알면 도깨비 방망이라는 말의 뜻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이 방망이질친다의 그 방망이, 두드리니까 방망이질 치는 것이고 이윽고 도깨비 방망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말풀이만으로도 흥미로운데 바로 이것이 우리 문화의 한 원형이라고 하니 더욱 새로운 기분이다. 두드리고 두드리는 행위들이 두두리→도깨비로 이어져 다시 난타가 되어 우리 가슴을 울려대며 시원하게 해주다니.....  문화의 힘을 여기서 다시 느끼게된다.
 
 책 이야기가 이처럼 두서없이 전개되는 까닭은 바로 이 책 내용의 다양성에 있다. 책의 방향성은 '한'사상의 널리 알림이라는 쪽으로 모두 향하고 있지만 전개되는 논지들은 신화/역사 추적에서부터 기독교의 하느님과 우리 하느님의 연관성 분석까지 여럿이다. 그리하여 그나마 제대로 이해한 부분들만 겨우 간추려 언급하여 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의 의의가 덜해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우리 겨레 고유의 얼, 그 사상의 뿌리를 추적하는 일이 어디 한두 사람의 노력과 한두 해의 시간만으로 될 것인가. 이처럼 모이고 쌓여서 우리만의 얼이 다시 살아나고 피어날 것이니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홀로 헤매이는 길에서 만난 반가운 벗처럼 겨레의 얼을 밝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그러니 '한'겨레의 '한'사상을 아시려거든 이 책부터 펼치시라. 그리고 입맛에 맞는 분야부터 천천히 시작하시어 우리 겨레 우리 얼 찾기에 함께 하시라.
 
 
2009.2.21. 밤, 오래 묵혀둔다고 생각이 트이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
 
들풀처럼
*2009-04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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