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5 - 적벽대전(赤壁大戰)
장정일 글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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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란 유연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거지가 밥을 좀 달라고 하면 먼저 밥부터 주면 되는 것이지, 이 거지가 왜 배가 고픈지 어떻게 고픈지 의서(醫書)를 모두 살펴본 후에 '아, 이 거지가 이러한 연유로 배가 고프구나' 하고 다 따지고 나서 밥을 주는 것이 옳습니까? ~ 학문이 지적 놀음이나 하고 현학의 허세를 부리자고 있는 것입니까? 시대의 사명과 과제를 명확히 알아내고 풀어나가기 위해 지식도 필요하고 학문도 필요한 것입니다. ( '공명'이 동오에서 문신들을 설득하는 "군유설전(群儒舌戰)"중에 하는 말에서) (65)
 
 동오에 가서 조조와의 전쟁에 참전을 설득하는 와중에 나온 말이지만 공명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유연성'은 학문뿐만이 아니라 전쟁중에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조조가 유비를 두고 이런 말까지 하였겠는가?
 
 유비,내가 일찍이 이놈을 요절내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이 놈은 마치 물처럼 형체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내 속을 뒤집어놓는구나. 얕아 보이다가도 깊고, 한낱 물줄기에 지나지 않아 보이다가도 폭포처럼 변하니 실로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런데다 어느새 제갈량인가 뭔가 하는 모사꾼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놓지 않았나. 제갈량, 이놈 또한 화근덩어리임에 틀림없다. ('조조'의 독백) (33)
 
 5권은 "적벽대전"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다들 알다시피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큼 각 세력들의 지략싸움이 불꽃을 튀기고 그 결과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조조는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하여 살아날 정도였고 유비는 드디어 자신만의 터를 닦으니, 과연 "적벽대전"은  모두에게 중요한 한 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적벽의 영웅은 당연히 제갈량, 공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가 그린 초안 위에 주유와 노숙이 힘을 합하고 방통이 연환계를 사용하고 제갈량이 동남풍으로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적벽'을 읽으며 문득 주유를 생각하였다. 분명 그 자신 뛰어난 인재임에도 그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제갈량을 만나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주유의 모습은 세상사 속에서 흔히들 만날 수 있는 우리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물론 주유는 범부의 지혜와 기개를 뛰어넘었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였다. 어쩌면 스스로에 대하여는 잘 알았지만 공명의 능력에 대하여는 짐작을 못하였기에 번번이 공명의 지략에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적벽대전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익은 공명이 다 가져가는 모양새가 아니던가. 아, 공명, 제갈량.
 
 - 동남풍을 일으키는 공명에 대하여 세상은 '제갈량이 신출귀몰한 재주를 부린다고 놀랄 뿐 그것이 초야에서 지내며 십수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축적해온 지혜의 결정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183)던 것이다. '지식이 힘이다'라는 사실과 때를 기다리며 철저히 준비를 하여야만 무언가를 제대로 이룰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우리를 놀라게 하는 또 한가지는 '명성'이 사태 판단을 흐리게도 한다는 것이니 관우는 '충과 의의 인물'(211)이라는 자신의 허명에 매여 조조를 놓아주고 마는 데 공명은 여기까지도 예측을 하고 관우에게 각서을 받아두고 있으니 과연 '4권'에서 스스로 이야기한 '명장론'에 걸맞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주유, '어리석은 주유'(237), '돌대가리 주유'(330)는 형주의 3군을 제갈량에게 빼앗기고 정략결혼으로 잡아두려던 유비까지 놓쳐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여서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길에 오르는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한계를 일찌감치 알고 얕은 꾀를 부리지 않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으랴만 주유는 공명보다 두어 수 아래의 인물이었기에 5권 내내 좌충우돌하며 열심히 싸우지만 실속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망치는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니 곁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지경이다.
 
 마지막까지, 끝내 제갈량의 신묘한 전술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급기야 말에서 떨어지고 마는 불쌍한 '주유를 위하여' 이 밤은 '진혼가'를 부르리라.
 
 술을 마주하니 저절로 노래가 나오네.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짧은 날에
 지난날의 고됨이 묻혀 있구나.
 그날들을 생각하니 탄식 속에 
 슬픔이 번진다.
 무엇으로 이 슬픔을 달랠까.
 오직 두강주뿐이로다.
 ( '조조'가 "적벽"에서 부른 노래중에서 ) (171)
 
 
2009.1.19. 새벽, 이제 삼국이 정립하는 6권으로 ~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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