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2 - 무단(武斷)의 시대
장정일 글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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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실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기본과 원칙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네. 전쟁이란 워낙 변수가 많아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서 승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그래서 기본이나 원칙보다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따르기 쉽다네. 물론 그것도 장점은 있어. 전쟁이란 시기를 놓치면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경험 많은 장수들이 필욯기도 하지. 그러나 원칙은 잊지 말아야 하네. 눈앞의 다급한 상황만 해결하려다 보면 더 큰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거든. 그래서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야. 산도 보고 숲도 보는 사람 말일세. ( '조조'가 참모 '곽가'에게 ) (21)
 
 "삼국지"라는 계급장을 떼고 보면 위 이야기는 그대로 자기계발서나 리더십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 된다. "원칙중심의 리더십",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원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은 것임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주변상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 임시적으로 대응한 일들은 결국에는 다른 문제의 뿌리가 됨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이미 여러 사례나 저술들을 통하여 검증된 바이기도 하다. 
 
 하여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무엇이 우리의, 우리 시대의, 그 시대의, 원칙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난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땅뺏기 전쟁을 하던 그 시절에 백성들이 공감하고 당사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인지? 오늘, 우리 시대의 원칙은 무엇인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우리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되리라.
 
Ⅱ.
 '사람은 여포, 말은 적토마'라는 당대의 평가가 정사에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여포가 이끄는 흉노 기병대가 천하무적이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 '삽화가의 말'에서 ) (24)
 
 이번 [삼국지 2권]은 가히 '여포 편'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각과 곽사에게 쫓겨나 원술에게 의탁하였다가 홀로되고 유비랑 연을 맺었다가도 적이 되기도 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조조에게 패하여 죽는 일련의 사건전개가 2편 내내 전개되는 까닭이다.  
 
 1권에서도 나오지만 여포의 무공은  유비 3형제와 겨루어도 결코 꿀리지 않는 천하제일의 실력인데 그는 그 무공만으로도 모든 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만을 믿고 그를 따르는 이들의 말은 진중히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끝내는 패장으로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다.
 
 당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마도 '명분'이었으리라. 천자-황제를 모시고 있다는 것, 그만큼 큰 명분은 없으리라. 그러나 이는 '명분'이지 세상 인심을 움직이는 '원칙'의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조조가 황제를 모시고 있음에도 거만하고 탐욕적인 행동으로 정통 한족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당시 삶의 원칙을 요약하자면 '명분'을 갖되 '자신의 역량 혹은 지위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으리라. 그 적절함을 넘어서거나 벗어나면 위험인물이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척되는 것이리라. 
 
 파란만장한 여포의 삶을 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누구보다 강한 무공을 지녔음에도 인덕의 부족으로 수많은 배신을 넘나들며 마침내 초라한 죽음에 이르는 그를 보며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의 덧없는 사라짐을 담담히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지은이의 얘기처럼 "삼국지"는 한족 중심의 이야기이기에 변방 출신들, 흉노 등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적, 배경등이 왜곡되어 있는 부분도 많으리라.
 
 나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 바는 아니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네. 두 아우를 섭섭하게 하려는 뜻이 아니라, 천하를 도모하는 것은 한두 명의 용장으로만 되는 게 아닐세. ( '유비'가 두 아우에게 ) (63)
 
 세상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꿰고 있어야만 가능한 정세판단과 결단, 유비와 조조에게는 그런 부분이 있다. 나머지 제후들은 이런 부분에서 한 수 아래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삼국지]이다. 가후라는 천하의 인재를 모사로 두고서도 결국 이각과 곽사가 분열하여 자멸의 길을 가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한편 손견의 아들, 손책은 차근차근 힘을 길러 강동을 평정하는데 이는 손책의 역량이라기보다는 그 곁을 보좌하는 선대先代의 가신들이 훌륭한 덕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사람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주유는 손견이 동탁을 토벌할 때 가족과 함께 서성舒成으로 이사했는데, 두 사람은 그때부터 알게 됐다. 주유와 손책은 우정이 깊어져 형제의 의를 맺었다. 둘의 나이는 동갑이었으나 손책의 생일이 두어 달 빨라 주유가 손책을 형이라 불렀다. 손책 일행이 역양歷陽땅에 이르렀을 때, 풍채가 뛰어나고 용모 또한 수려한 주유가 일군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인사를 했다. (167)
 
 나중에 제갈공명과 함께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적벽대전"을 장식할 인물, 주유, 2권에서는 얼굴만 보아둔다. 여포도 죽고, 옥새는 조조의 손에 들어가는데 ~  아직도 우리의 유비 3형제는 ~ 
 
 
2009. 1.11. 밤, '공명孔明'은 아직도 이름자락조차 보이지 않는 ~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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