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가는 길
밥 그린 지음, 강주헌 옮김 / 푸른숲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Ⅰ.
 누군들 자신의 영혼을 보여주지 않아도 모든 걸 이해하는 벗 하나 없으랴만 굳이 꺼내어 헤집어보면 뜻밖에도 그런 오래된 나랑 같으면서도 또다른 그런 녀석이 흔치는 않음을 알게된다. 허나, 나는 정말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그런 오래된 벗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33년, 서른 세 해나 묵은, 벗이라는 이름조차 거추장스러운, 그런 녀석 하나 있다.
 
 첫 친구이자 가장 오래된 친구, 그런 친구는 꼭 같은 도시에 살 필요도, 매일 만나야 할 필요도 없다. 우정, 특히 오랜 우정에는 그런 조건이 없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런 친구가 오랫동안 곁에 있을 것이다. (12)
 
 책을 펼치자마자 만나는 이 글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난해 10월 녀석의 아버님이, 우리들의 아버님이 홀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한답시고 나는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와 喪을 치르는 녀석의 곁에서 24시간 붙어있지 못하고 겨우 하루는 저녁에 간단히 문상만 하고, 하루는 밤을 세우는 것으로 곁을 지켰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녀석은 서울의 직장과 집으로 돌아갔고 나 역시 바쁜 일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새해도 되었고 하여 오랜만에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별일 없다는 간단한 안부전화만으로도 왠지 뿌듯한 시간이었다. ''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지은이 '밥'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11살, 다른 반이었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엄마 손에 끌려 녀석의 집에 가서 책을 빌려온 것이 우리 둘의 첫만남이자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5,6학년 같은 반이 되어 생활하면서 우리는 누가보아도 단짝으로 자랐다. 이후 중학교,고등학교도 다른 곳에서 졸업하고 심지어 대학은 다른 지방에서 다녔슴에도 우리는 늘 함께였다. 얼굴을 자주 보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 해에 두어 번 만날지라도 우리는 '밥''잭'에 결코 뒤지지 않는 우정을 쌓아왔던 것이다. 
 
Ⅱ.
  여러 벗들과는 다르게 자라오면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여 나갔던 주인공 '잭'처럼 녀석도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그처럼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그가, 그런 녀석이 33년만에 처음으로 힘들다는 전화를 바로 어제 내게 하였다. 몇 년전 내가 녀석에게 하였던 그 전화처럼 말이다. 그 뒷이야기는 생략하련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말고 건강한 몸 하나로 버팅기자고, 우리는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살아보니 어떠한 어려움도 '다 지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족과 벗들과 남은 삶을 굳세게 살아가기 위한 '튼튼한 몸과 마음'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수명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추억이 되고, 마침내 아름다워진다. (116)
 
 '밥'이 힘든 시간이었을 때 '잭''밥'이 있는 시카고까지 날아가 필요해서 불러줄 때까지 근처에서 대기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잭'이 떠나가는 곁에 '밥'이 머무르는 시간들이다.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벗을 떠나보내는 '밥'의 그 이야기가 이 책의 전부이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비록 이제는 '잭'이 곁에 없다하나 그와 함께한 시간들에 아로새겨진 추억들은 '밥'을 비롯한 벗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니….
 
 그래, 이럴줄 알았는데, 제목만으로도 이런 아프고 슬픈 이야기리라 짐작을 하였는데 결국 손에 들고 냅다 읽어내려가다 목이 메이고 눈물을 삼킨다. 문득 또 녀석이 생각난다. 곁에 있었다면 오늘 밤도 소주 한 잔 하며 서로를 다독였으리라. 술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언제든 내가 원하면 곁에서 묵묵히 잔을 따라주곤 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곧 우리 겨레의 큰 명절, 설이다. 설 전날 밤, 우리는 옛날처럼 오래지는 않더라도 꼭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어깨동무를 하곤 하니까, 가까운 날에 녀석을 만날 수 있으리니…. 내 곁에는 아직은 오래된 벗이 있으니…. 물론 '밥''잭'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헤어질 날이 올테지만 그 때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동안 우리는 우리네 삶을 열심히, 기쁘게 살아내면 되리니…
 
 '밥'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오래된 벗, 영원한 친구, '잭'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힘듬에도 더 어려운 이들에게도 관심을 쏟을 줄 아는 그런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랬으리라. 그러니까 그의 죽음에 각지에서 많은 친구들이 그를 애도하러 달려왔으리라. 그래, 우리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날들이지만 하루하루를 따듯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리라.
 
Ⅲ.
 그날 종업원들이 장애 청년에게 건넨 말 한마디로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건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친절하라.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도우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내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라. 전날 밤 자신의 고통을 완전히 잊은 채 주변의 고통 받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했던 의 말이 떠올랐다. (152)
 
 

2009.1.9. 밤, 그렇지요. '간절히 보고 싶은 영화란 늘

                             우리의 손이 닿는 범위 너머에 있는 법' (182) 이지요.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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