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종합의는 오랜 시간 아주 사소한 것까지 논쟁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마법처럼 찾아오곤 했다. 이는 기업이나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분야의 학계 사람들까지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교훈을 준다. 뜻이 있으면 최종 합의에 이르는 길이 있게 마련이다. (136)
 
 수학이다, 국어,영어도 아니고 수.학.이다. 게다가 수학자들 이야기다, 소설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글이다. 수학자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아니고 수학자와 수학이 이뤄낸 한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재미없다. 그런데 책은 꽤 수월하게 넘어간다. 어디서 무엇이 나를 이 책에 빠져들게 하였을까?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그것이 궁금하다.
 
 '부르바키'라는 수학史에 큰 족적을 남긴 존재가 프랑스 수학자들의 모임에서 탄생한 가상의 인물이라는 놀라운 사실, 거기에 더하여 그 '부르바키'가 20세기를 풍미한 "구조주의"의 뿌리에 해당된다고 하니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구조주의"라는 철학사조를 전혀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부르바키'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나'라는 존재..도대체가 온통 놀라움 투성이다.
 
 책에 등장하는 앙드레 베유 - 시몬느 베이유의 친오빠라는 작은 놀라움!- 와 그의 동료 수학자들, 그리고 책의 맨처음 등장하여 이야기를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으로 몰아가던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의 과거사, 더하여 1991년 8월의 어느날 아인슈타인과 비교되던 그가 사라져간 피레네 산속…. 극적인 사건들의 등장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 까닭일까? 하지만 이런 일들을 영화처럼 재밌게 풀어나갔다면 이 책은 지금쯤 어떤 영화의 원작으로만 존재하였으리라. 하지만 지은이는 담담하게 있었던 일들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차근차근 들려준다. 그 담담함에 수학이라는 존재?자체가 나같은 일반인에게 안겨주는 어려움도 오히려 묻어서 날아가버린다. 
 
 개인적으로는 레비-스트로스를 통하여 "구조주의"의 맛!을 조금 보았었기에 그가 등장하는 순간까지는 인내심으로, 그의 등장 이후로는 재미있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결국 어떤 이야기이든 관심과 흥미가 가는 한 부분만 있다면 나머지 어려움이나 덤덤함도 참고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리라. 지금도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나는 그 책을 구조주의니 뭐니 하는 철학사조와는 관계없이 만났었고 그 책에서 보았던 것은 사람에 대한 따듯한 눈길로 기억하고 있다. 아! [슬픈 열대], 이 책 덕분에, 다시 책꽂이에서 꺼내 놓긴 하였는데.... 
 
 (레비-스트로스의 저서에서) 결혼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종류의 결혼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로 (앙드레) 베유는 추상적 군론의 결과를 사용해 그것을 입증했다. 실제로 이 개념은 구조주의의 핵심을 이룬다. 구조주의는 연구대상인 요소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요소들 사이의 관계이다. (201)
 
 뭔말인지 잘 몰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하지 않는가?  이 책에서 이 글을 옮겨놓은 까닭은 이러한 글들이 탄생한 배경에, 뿌리에 '부르바키'라는 수학자 집단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집단의 두 주축이었던 앙드레 베유와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라는 수학자와 그들이 살아오고 살아갔던 20세기 초반의 이야기들이다. 그 '관계'들 속에서 '부르바키'가 탄생하였고 그 '부르바키'가  "구조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다는 표현이 '부르바키'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이리라. 지은이는 이제는 '부르바키'가 사망하였다는 평가를 들려주는데 그것이 합당한 평가이리라. 조직의 존재가치가 없어진 시대에 당연히 그 조직은 사라져야하는 것 아니던가? 어려운 수학史와 수학들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이 책이 존재의의를 갖는 것은 아마도 그 한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내었던 수학자들의 삶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관계'의 의미망속에서 우리네 삶의 단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에 자세히 소개되는, 정치적으로 좌절한 알렉상드로 그로텐디크의 입산(入山)이야기는 쓸쓸하다. 아인슈타인에 비견되던 수학자가 정치적인 활동의 좌절로 일체의 행적을 접고 산으로 들어가다니…. 역사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역시 그 자신의 길을 찾아 간 셈이니 제 3자가 나무랄 일은 아니리라. 다만 지은이처럼 아쉽다고 표현하고 말 뿐….
 
 알렉상드로는 대개 혼자 시간을 보냈는데, 수용소 생활이 준 선물을 어른이 되고 나서 고맙게 여겼다. 그가 받은 선물이란 완전한 고독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고독한 시간은 다른 사람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도 생각을 만들고 개념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30) 
 
 
2008.12.21. '고독한 시간'속에서 '그'는 과연 행복하였을까? 되묻는 밤~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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