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오랜만에 논문처럼 어려운 이야기들을 만났다. 책을 읽는 도중 반가운 추억 속의 이름도 등장하였다. 모리스 돕,폴 스위지의 돕-스위지 논쟁(151)….[자본주의 이행논쟁]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20여년전의 찬란했던(!) 젊은날의 아련한 열기가 잠시 느껴지기도 하였다. 당시의 '자본주의 이행논쟁'은 몇 년 뒤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으로까지 이어졌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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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 마흔 넘어 바라보는 세계역사, 그 중에서 유럽사라니…아득하고 또 아련하다. 이 책을 손에 든 까닭은 딱 하나인데 '유럽 중심주의'라는 말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하면 지금까지 유럽이 세계 역사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배운 세계사는 당연히 그리스로마부터 시작되어 영국프랑스로 이어지는 이야기였고 어릴적 숱하게 읽은 책들도 플루타르크 영웅전속의 고대 유럽인들의 이야기였다. 아니, 유럽말고 세계가 또 존재하기는 하였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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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세계는 유럽과 함께,아니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유럽은 그 변두리에 존재하는 문명들을 밑거름으로 하여 중세부터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치고 올라왔던 것이 아니던가… 이 책에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믿는 역사학자들에 대한 진지한 비판이 전개되지만 지은이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그동안의 편견과 오해가 수이 불식되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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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는 "깊이 자리 잡은 인간적 충동의 발현"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며, 요즘의 세계화, 구조 조정 등등도 역시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렌디스 : 제국의 역습"에서) (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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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논조, 이런 생각,요즘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던가? 역사의 가해자,'갑'에 해당하는 나라의 역사학자이니까 이처럼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백 번을 양보하여 인정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피해자.'을'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학자나 관료들이 지금, 이 시절에도 이와 같은 논조의 얘기들을 씨부려대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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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박한 자본주의라고들 하지만 더 천박한 적응방식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한숨만 내쉬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 속에서 이 책에서 지은이가 꼼꼼히, 세세히 짚어내는 비합리적이고 몰상식한 사실들을 역사적인 가치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리라. 참으로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이다. 문득 우리에게도 [해방전후사의 인식1~6]이라는 역사학계의 결과물이 있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결과물조차 뒤짚으려는 시도가 있음을 생각하곤 곧 우울해진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결과물들을 공유하고 배워나가면서 우리만의 중심을 찾아야하리라. 지은이의 노고에 박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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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은 아무튼 세계의 타고난 중심지였던 것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유럽 중심주의적 범용 모형"에서, 지은이가) (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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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9.20. 밤, 나도 생각이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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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