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모든 지식이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지식은 다른 지식보다 더 믿음이 간다. 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른바 성장이다. (61)
 
 이 책, 읽지 말아야할 책이다. 찬찬히 읽어가며 지은이의 발길을 따라가는동안 만나게되는 어마어마한 지구와 우주의 역사, 그 역사를 밝혀내는 길을 걸었던 많은 과학자들의 이야기, 때로는 들은 바 있지만 대부분이 낯선, '지리학,천문학,지질학,생물학,인류학,물리학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학과 인간의 역사'(240)라니…도대체 얼마나 더 배워야 이 이야기의 한 꼭지라도 제대로 따라갈 것인지 좌절하게 되므로 아예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책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그만큼, 낯선만큼 반갑고 고마운 책, 평소 살아가며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오던,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던, 위도와 경도 이야기, 그리니치 천문대 뿐만 아니라 '자오선'에 얽힌 발걸음을 따라 전개되는 다윈과 뉴턴의 이야기, 많은 과학 역사들을 이처럼 간략하지만 연대기적으로 혹은 폭 넓게 만날 수 있는 책이 어디 또 있으랴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책이다.
 
 대부분 그것은 책과 역사를 소중히 여긴 내 부모님의 덕분이었다.(18)
 
 훌륭한 지은이들- 이번처럼 과학 이야기이든, 역사적인 서술가이든 소설가이든, 지난 번 만난 [마지막 강의]의 故 랜디 포시 교수처럼- 그들의 뒤에는 아이들의 꿈과 생각을 건전하고 올바르게 이끌어준 부모님이 계신다. 이 책을 읽으며 먼저 만난 위 글에서 난 또 한번 부모의 역할에 대한 반성을 하게된다. 과연 나는 아이에게 '책과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부모가 되고 있는지 뒤돌아본다. 내 아이가 자라 꼭 이러한 저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서 누군가에게 '나의 이 발걸음은 자라면서 보아온 아빠엄마 때문이었다고 담담하고 자연스럽지만,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지은이의 도보여행과 함께 펼쳐지는 넓고 깊은 과학 이야기는 따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배워야 할 것이 많아 그리 수월하지 만은 않다. 여러 사람의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고 함께 하였는데 맨처음 지구의 둘레를 산출해내었던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에라토스테네스'의 이야기가 내 맘에 쏙 다가왔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그에 대한 평 때문이리라.
 
 일부 기록에 따르면 에라토스테네스는 당대 사람들에게 만물박사이기는 하되 어떤 분야에도 깊이 있게 통달하지 못했다는 조롱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평가는 아마도 도서관장에게 이상적인 자질이었을 것이다. (44)
 
 넓고도 깊은 배움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는 나같은 사람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이 도서관장인 까닭이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오늘 새삼 깨닫는다. '넓으나 깊이는 없는' 반대로 '깊이는 없어도 넓게 알고 있는', 내가 가끔 쓰는 표현으로 '박학다식(薄學多食-학문은 얕으나 먹기는 많이 먹는!)'한, 나같은 이들에게는 도서관장이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며 걸음을 잠시 멈춘다. 다윈의 이야기 또는 뉴턴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 등은 조용히 책 속에 묻어두고 나중에 다시 꺼내어보기로 한다.
 
2008. 8.24. 자정, 개인도서관장이라도 꼭 되어야지, 꿈꾸는 밤에
 
 
들풀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