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있는 일이다. 저녁 10시경 읽어내려간 이야기를 결국 새벽녘에 마무리를 하다니…. 그만큼 글의 전개속도와 글맛이 읽는 나를 빨아들였다고나 할까. 다 읽고 후기를 보니 시나리오로 먼저 탈고되었던 원고란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겠구나, 지금의 어느 여배우가 이 역할, '여자'(최승희)를 제대로 표현할까 생각해보곤 하였다. 떠오르는 이가 한 사람 있기는 하지만 영화개봉시까지는 혼자만의 비밀로 일단 보관해두련다.
 
 지은이 김선우, 지난해 7월 [내 몸속에 잠든이 누구신가]라는 자신의 세번 째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어쩌면 나는 당분간 시를 떠나 있을 지도 모르겠다'라고 하였는데 꼭 1년 뒤 이렇게 소설로 돌아왔다. 문득 장정일을 떠올린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내게 꽤 큰 충격을 주었던 시인이었는데 어느날 더 큰 충격을 터뜨리며 소설가로 화려하게 전업하였다. 지은이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어떠랴, 시든 소설이든 지은이의 따듯하면서도 살가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최승희, 해방정국의 춤꾼, 꽤나 유명한,~정도밖에 모르는 상식만으로 이 책을 만났다. 그래도 좋다. 인터넷으로 검색조차 해보지 않고 내리 달렸다. '여자'의 발걸음을 따라 북경,일본,유럽,만주,다시 일본, 그리고 북조선…. '여자'의 행적만으로도 이야기는 쏟아질 것인데 그 여자가 '최승희'라니..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던 무용가라니, 아, 나는 정말 우리 역사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구나, 도대체 무얼 배우고 살아온 것인지..부끄러운 밤이다.
 

 난 눈썹이 좋아. 이건 오직 아름다움만을 위해 있거든. 춤 같은 거야. 쓸모가 없지. (!5) 
 

 시베리아를 통과하며 늙어버린 바람(17)
 
 시인인 지은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표현들에 감탄해가며 '여자'의 일대기를 따라 걷는다. 일제 식민지하, 예술만으로는 아무것도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 예술, 춤 하나만으로 자유롭고자 했던 그녀의 삶이 격정적으로 전개되는데 남편인 사회주의자 '안'과 사진사이자 지기에 가까운 '기타로', 그리고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인 '민'의 어머니 '예월', 이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가며 암울했던 시대와 그 시대를 거슬러 자유혼을 추구하던 예술가 최승희의 삶을 부활시키고 있다.

 

 



 
 '조국? 이 몸, 이 몸이 내 조국이야! 내 춤이 내 조국이라구!'(261)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던 '여자'. 일제식민지시대는 그녀를 세계속의 무용가 최승희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예술적 자유를 찾아 헤매이는 '여자'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담대한 탈주의 스케일', '예술은 그녀를 노마드로 만들었고 그녀는 너무도 일찍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다.' ("작가의 말"에서) (288)
 
 책의 자세한 내용은 직접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즐기며 만나보시기를…. 순식간에 넘어가는 이야기의 매력에 하룻밤이 금방 지나버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다만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미소'라는 일본식 낱말이 빈번하게 쓰인다는 사실, 특히 '그녀는 가만히 미소하며 여자를 올려다보았다'(271)는 구절은 어색하지 않은지? '웃음지며'등으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일텐데…우리는 '미소'라는 일본식 한자말에 너무 길들여져 있나보다.  이오덕 선생께서 생전에 그렇게 지적을 하셨건만....
 
 그녀가 무언가를 향해 돌진해 나갈 때, 그것은 그녀 심장이 시키는 일이다. 그녀는 오직 심장이 시키는 것만을 갈구하고 꿈꾸고 바라본다. 저 바닥모를 뜨거움이 나는 부러운 것인가. (남편 '안'의 독백?에서) (120) 그랬다. 나도 그녀의 뜨거움이 부럽고 또 부럽다.
 
 
2008. 8. 15. 새벽,광복 63주년, 아직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들풀처럼
*오타 1개 ^^
143쪽 위에서 11번째 줄 : 도쿄 '으' 로 건너갔다 →도쿄 '로' 건너갔다.
 

 



 

 

 
*최승희 : '위키디피아'에서 찾아본 자료를 첨부합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8A%B9%ED%9D%AC
최승희(崔承喜,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는 한국의 무용가이다. 남편은 좌파 문학평론가 안막이다.
 
목차 [숨기기]
1 생애 
2 사후 
3 바깥 고리 
4 참고자료 
5 주석 
 
[편집] 생애
강원도 홍천, 또는 경성부 태생이라는 설이 있으며, 서울에서 자라고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서 사사 받았다.
 
두차례 일본 유학 이후에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 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반도의 무희》(1936)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 《나의 자서전》(1936)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수년 동안 해외 순회 공연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광복 후 월북해서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연금 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그러나, 한설야와 함께 사후 복권된 상태라는 것이 2003년에 확인되었고, 묘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되어 있다.[1]
 
최승희는 신무용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작품으로는 〈영산춤〉, 〈에헤라 노아라〉, 〈달밤의 곡〉, 〈반야월성곡〉, 〈우조춤〉, 〈칼춤〉, 〈보살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 〈광상곡〉, 〈가면의 춤〉, 〈승무〉, 〈인도인의 비애〉, 〈해방을 구하는 사람들〉, 〈방랑인의 설움〉, 〈봉산탈춤〉, 〈유격대의 아들〉 등이 있고, 북조선에서 쓴 저서로 《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이 있다.
 
안막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안성희도 소련에서 발레 유학을 하고 돌아와 북조선에서 무용가 및 안무가로 활동했다.
 
 
[편집] 사후
2007년, 1930년대 초반에 가수로 음반을 낸 '최승이'가 음성 분석 결과 최승희와 동일 인물로 밝혀졌다는 주장이 나왔다.[2]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군 위문 공연에 참여하고 여러 차례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는 등 일제에 협조한 행적이 있어 친일 논란이 계속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심의가 진행 중이다. 최승희의 국방헌금 헌납은 강요된 것이었으리라는 추측이나, 설혹 친일행위가 사실이더라도 이로 인해 그의 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친일 문제에 엄격한 북조선에서 높이 평가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제 강점기의 행적에 문제가 없었으리라는 주장도 있다.[3][4]
 
 
[편집] 바깥 고리
다음 카페 - 홍천과 무용가 최승희 사랑 모임 
 
[편집] 참고자료
정수웅 (2004년 6월 7일). 《최승희 -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어느 무용가의 생애와 예술》. 서울: 눈빛. ISBN 9788974098414. 
 
[편집] 주석
↑ “최승희 69년 8월 8일 사망했다.”, 《연합뉴스》, (2003년 2월 11일). 
↑ 유상우 기자. “무용가 최승희, 가수 '최승이'와 동일인”, 《뉴시스》, (2007년 8월 23일). 2007년 10월 27일에 읽어봄. 
↑ 류재일 기자. “무용가 최승희 “역사적 평가마저 폄하말라””, 《강원일보》, (2008년 3월 8일). 2008년 3월 30일에 읽어봄. 
↑ 신재우. “`친일명단 발표' 후손ㆍ관련단체 반발 거세”, 《연합뉴스》, (2008년 4월 29일). 2008년 5월 2일에 읽어봄. 
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8A%B9%ED%9D%AC
분류: 1911년 태어남 | 1969년 죽음 | 일제 강점기의 무용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용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렬사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