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
| 600여쪽에 이르는 두툼함에 비하여 손에 들린 무게는 마춤하다. 한 손에 들고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깔끔한 편집이 맘에 드는 책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손에 든 정통 미스터리 소설집이다. 특히 최근 유행하는 팩션물이 아니라 구성 자체에서 독자에게 싸움을 거는 정통 중편 소설들이라니 입맛이 땅긴다. 추리소설의 황금기에 완성되었다는 다섯 작품중 오늘은 우선 한 작품에 도전하여 만나보기로 한다. 이 여름밤을 차근차근 이야기 속 사건과 인물들과 함께 보내며 무더위도 잊어보련다. 필기구를 꺼내고 노트를 펼치고 주요 등장인물들을 메모하면서 작가가 뿌려놓은 함정들을 피하여 먼저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리라 다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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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
| 앨러리 퀸의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는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의 중편소설 "안개 속에서"는 '런던 안개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가운데 어느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려낸 수작이다' (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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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평가는 그대로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이다. 한 클럽에 앉아 있는 5명의 사람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하여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데 4명은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고 한 명은 주로 듣기만 한다. '흑진주,변호사,공무관,여왕의 집사' 메모를 하여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간다. 그리고 나만의 추리를 내세워 아하, 사건은 이렇게 전개되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다른 이야기 속으로 딸려들어간다. 신문기사에 등장한 진실과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가 무럭무럭 오해와 진실사이를 떠돌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떤 화자의 이야기를 믿어야할 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쯤 이야기의 반전이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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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한 사람의 시간- 정확히 말하면 하원의원인 앤드류경의 의회연설을 저지하기 위한 일종의 '천일야화'였음을 알게 된 순간 이야기를 따라 허겁지겁 쫓아오던 나는 지쳐 주저 앉는다. 그리고 네 사람이 남작을 바라보며 승리의 축배를 드는 순간 또 다시 시작되는 반전… 오랜만에 만나서 제대로 뒤통수를 때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뿔사, 그럼 그렇지, 쉽게 마무리될리가 없지…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상상하지 않으면 범인을 따라잡기란 역시 만만찮은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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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경찰관과 다른 그만의 강점은 바로 상상력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범인이라 상상하고 동일한 정황에서 그 자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상상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범인 대부분을 잡는다고 상상하는 사람입니다. (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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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
| 손에 들면 물리지 않고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 정통 추리 소설의 장점이다. 비도 내리지 않는 올해, 김해의 여름밤은 미스터리와 함께 지새워야겠다. 책을 읽으며 뒤척이는 사이 더위도 밤도 쪼금은 멀리 달아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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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7. 26. 저녁, 상상력의 넘쳐남을 위하여 읽고 또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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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