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2월 어느날 이후 미친 듯이 읽어대는 시간들이 어느덧 7개월을 넘어선다. 그런데 이 책처럼 이상한 책읽기는 처음이다. 흥미가 없는 것이 아님에도 읽다보면 감기는 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책읽기라니….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이라니..어찌 만나보지 않으랴. 그래서 작심하고 읽기 시작하였는데… 몸이 피곤한 날들을 요즘 보내서일까? 무려 일주일 가량의 밤 시간을 보내고서야 330쪽에 이르는 책읽기를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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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책을 놓은 지금도 내 머리속에는 이게 아닌데, 뭔가 더 이야기가 이어져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인터넷 서점들의 서평에는 온통 찬사들이 넘쳐나지만 나는 그 찬사들을 올곧게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책을 보았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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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회색 빛 속으로 걸어나가 우뚝 서서 순간적으로 세상의 절대적 진실을 보았다. 유언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 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모든 것을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시커먼 우주. 그리고 쫓겨다니며 몸을 숨긴 여우들처럼 어딘가에서 떨고 있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 그리고 그것을 애달파하는 빌려온 눈(目).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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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내내 몸도 마음도 아릿하게 아파오던 것이 이러한 '세상의 절대적 진실'을 날것으로 대하는데 따른 불편함 때문이었을까? 읽다 보면 쓰러지던 시간들.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미래는 지은이의 얘기처럼 온통 어둠과 절망 뿐일 것인가. '빌려온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라니…. 참혹하고 참담한 설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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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196)는 것처럼 모두가 떠나버린 세상 끝에도 누군가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그들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빠를 잃은 아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 끊어질 듯 하던 희망을 이어가듯이 삶이란 그런 것이다. 버팅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인 것이다. 지은이는 그 삶에 희망의 한 표를 던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권총으로 자살을 하거나 누군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함으로써 암울하던 세상의 종지부가 오리라 예상되었지만 역시 미국은 미국, 주인공인 소년이 죽을 수는 없는 법, 그 희망마저 버리면 우리가 살아갈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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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시작하며 [혹성탈출(1968)]이라는 옛날 영화가 떠올랐다. "주말의 명화"로도 자주 만난 SF영화인데, 핵심 줄거리는 이러하다. 2000여년이 지난 뒤 혹성에 불시착하여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만나고, 탈출하는 우주비행사들의 탈출기, 도주하는 끝장면에서 만난 혹성의 진실… 암울한 미래, 모든 것이 거의 끝나버린 시간들을 읽으며 계속 [혹성탈출]의 암울함과 서글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절망, 죽음보다 깊은 잠 등이 책읽기의 시간을 길고 어렵게 하였으리라. 그래도 주인공 '남자'의 길고 어려운 삶은 막을 내리지만 '소년'을 통하여 우리네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므로 오늘도 편안한 잠자리에 우리는 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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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것은 별 문제 없었지만 해변은 아직도 멀었다. 남자는 자신이 아무런 근거 없이 희망을 걸고 있음을 알았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곳은 더 밝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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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7. 26. 밤, 어렵고 힘들어도 꿈으로 버팅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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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