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미로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살인이 일어나는 특정 장소의 한정,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관-탐정 혹은 의사, 주변에서 전개되는 또 다른 살인과 음모, 그 속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주인공…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틀이다. 그리고 거기다 더하여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히는 공간의 설계, 미로, 그 속을 헤매이는 사람들….마치 추리소설과 환타지장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소설 그대로 즉시 영화를 만들거나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한 짜임새와 대사들..푸짐한 영국식 추리소설의 맛을 맛볼 수 있었다.
 
 다만 500여쪽에 달하는 두께에 질려 이 [미로]속으로 선뜻 발을 내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12세기에 이미 사랑보다 일을 택한 매력적인 주인공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베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 간단히 '아델리아'라고 불리는 이 의사는 주교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당당하다. 소설을 따라가는 내내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나타내는 전문지식과 드러내지 못하는 시대상의 충돌이 빚어내는 장면의 절묘함 때문일 것이다. 영국 왕실과 연관된 독살사건을 파헤치는중 수도원에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살인사건에 깔려있는 시대상도 자못 흥미로웠다.
 
  시체를 통하여 사건을 파헤치는 의사인 아델리아가 자신의 신분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시대임에도 그녀의 능력은 이미 갖춰져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그녀를 정점으로 한 사건들이 전개될 것임을 알게해주는데 다음 작품에도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극중 등장하는 '어머니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에다이브 수도원 원장수녀의 입을 통하여 등장하는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이기도 한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달리 무엇이겠느냐? 두 가지 성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도 한쪽 성만을 사랑한다면 균형 잡힌 부모라고 할 수 없지. ~ 여성적인 전능자께서도 슬퍼하시듯 우리도 세상의 편협함을 슬퍼하지. (374)
 
 왕과 왕비, 왕의 정부, 주교, 대주교, 수도원장, 수도원, 암살자, 그리고 주교의 옛애인이며 의사이자 주인공인 아델리아…이들이 모여 엮어내는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빠르게 전개된다. 읽으며 따라가는 장면전환이 머리 속 영화장면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화된다면 더 재미있을 책이다. 12세기 중세의 풍경에 관한 장면장면들은 선뜻 눈에 다가서지 않는다. 화면으로 한 번 보는 것이 100번 읽는 것보다는 쉬 눈에 들어올 것이다. 
 
 지은이가 여자이기에 가능한 섬세한 표현들 - 아이에 대한 감정,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인의 감상 등 - 이 이 책에는 넘쳐나는데 마지막 부분의 옛사랑 주교와의 재회장면(419)은 마치 007 영화의 끝장면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이 책의 미묘한 맛을 모르리라. 자, 도전들 해 보시라. 500쪽 소설! 
 
 
2008. 6. 15. 새벽, 너무 오래되고 긴 이야기
 
들풀처럼
* '하느님'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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