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머리로 읽어 지식이 되는 글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어 감성이 되는 글입니다. ('들어가는 글'에서)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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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이 제대로 어우러져 우리를 옛추억으로 들이민다.따라 들어가지 않으려 발버둥쳐보지만 한 컷의 사진과 한 줄의 글로도 빨려들어간다. '달동네','고무신','연탄','구멍가게','달걀꾸러미' 등의 꼭지 이름만보았을때에는 어찌 '그때가 더 행복했네'라는 부제를 붙일 수 있단 말인가?하며 반발하였지만 그림같은 사진과 더 그림같은 이야기들을 만나곤 '그래, 그때가 더 행복했었지'라고 잠시나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정말 지나가 버린 모든 것은 추억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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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의 전통과 관련된 추억거리는 내 기억속에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 1부에 해당하는 <청보리 일렁이던 고향 풍경>과 3부에 해당하는 <술도가·서낭당이 있던 자리> - 2,4부의 <연탄·등잔, 그 따뜻한 기억> 과 <완행열차와 간이역의 추억>은 내게도 꽤많은 추억거리가 있어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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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동네-내가 나서 자라던 곳이 바로 달동네 또는 그 아랫마을이 아니던가, 고무신-당연히 나 역시 검정 고무신에 얽힌 추억거리가 한보따리이고,연탄- 대부분이 경험해보았을 가스중독을 죽지 않을만큼은 해보았다. 괘종시계-역시 집 어딘가에 걸려 있던 기억이 있고, 도시락-은 고등하교때까지 싸가지고 다녔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어쩌다 한 번 가는 가족나들이에는 '사진사'아저씨에게 사진을 찍고 즉석사진-폴라로이드-을 받거나 주소를 적어 우편으로 사진을 받곤 하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엄마와 나랑 동생이랑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7살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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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행열차와 간이역의 추억은 8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하며 가지게된 추억이라 앞서의 추억들보다는 행복한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그 때에도 달동네 근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슴에도 혼자 서울로 떠나있다는 해방감에 나만 더 행복했었던 것 같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쏟아지는 추억들에 몇 번을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손에 들곤 하였는데 그래도 '그때가 더 행복했네'라고 나는 아직 이야기할 나이는 아닌가보다. 사춘기 청춘의 민감한 시절에 전전하던 이사와 산 위 달셋방 등의 기억, 연탄가스 중독으로 아팠던 흐릿한 기억들이 그 때를 행복한 시절로 돌아가게 하지않나 보다. 특히 완행열차와 간이역을 오가며 젊음을 만끽하던 시절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기억까지 더해지면 오히려 가슴 시린 추억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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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보리밭 풍경이나 초가집 사진, 섶다리의 아련함등을 만나고 돌아서면 그 모든 추억들이 잘 버무려져 나도, 내가 건너온 그 시절도 이 책속의 이야기들처럼 행복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개인적으로 딱 한가지 많이 아쉬운 이야기는 '전통혼례'인데 아내랑 10월 말경을 결혼날짜로 잡고 야외 전통혼례를 치르려 하였었는데 날이 추워 진행하지 못하고 그냥 평범한 결혼식을 하였던 일이다. 전통혼례는 꼭 해보고 싶었는데….십여년을 더 기다려 은혼식때나 다시 도전해볼까나...... 이래저래 쏟아지는 추억거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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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그 과정이 좋았다. 쓸모없을 것 같았던 쇳덩이가 괭이가 되고 칼이 되는 과정을 보는 건 산수 문제를 풀고 국어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푸른 불꽃 속에 몸을 담그고 나온 쇠는 아름다웠다. ~ ~ 아이는 커서 대장장이 조씨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어쩌면 쇠를 두드린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두드리고 담금질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살아도 살아도 헛헛하기만 한, 가슴속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렇게 두드려 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대장간'에서)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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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만큼 아련하고 그리운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넘쳐난다, 만나 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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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5. 18. 새벽, 책 속의 사진을 자꾸 뒤적거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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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