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 할샤 
 일러 다 못 일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 보리라  *신흠 * (14)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생각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6) 시조, 특히 조선시대의 시조들이 지은이의 노력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살아 돌아왔다. 돌이켜보니 어설프게나마 시조에 빠져들어 우리문학을 하겠답시고 문고판 시조집을 들고다니던 날들이 벌써 20여년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얼마전 [현대 시조 쓰기]라는 책까지 준비하여 두고 다시 우리가락의 멋을 찾아보려던 차에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을 만난다.
 
 개인적인 일로 여차저차하여 산넘고 바다건너서 떠나는 비행기안에서 '옛님네들의 노래가락'을 듣는다.  '아서라', '이따금', '아마도', '이 몸이', '청산은' 하며 치받고 올라오는 가락에 오래전 옛사람들이 그랬듯이 나의 어깨에도 추임새가 자연스레 들어간다. '내 잡아 권하는 잔을 덜 먹으려 하는가'라고 송강선생이 잔을 권하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그 잔 받아들고 나도 한 자락 읊어보는데…….
 
 아내가 손을 잡고 물 건너 가자는데
 부는 바람 마다하고 책만 지고 나섰더니
 아이가 그 책을 두고 저만 따라 오라 하네  *들풀처럼 
 
 노래도 노래만 들으면 재미없는 법임을 지은이는 익히 알고 있다. 옛사람들의 풍류를 알고 있는 것이다. 두어 수 시조 앞에 미리 깔리는 시대적인 특질과 배경들, 뒤이어 등장하는 노래자락과 상세한 설명, 그리고 또 이어지는 옛그림들… 책을 읽으면서 시조가락을 따라가며 자연과 사람에 대한 옛님들의 말씀만으로도 벅찬데 뒤이어 등장하는 적절한 그림들로 입과 귀, 그리고 눈까지 호사를 누린다. 마치 한 상 잘 차려놓은 한정식을 먹고 있는 기분이랄까. 시조들도 특별히 어렵거나 완전히 낯설지는 아니한 것이 예전에 좀 봐두었던 탓이리라.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고 새로 배우니 더욱 즐거운 순간이다.
 
 옛사람들의 전통을 이어가자고 나는 내 방(블로그)의 이름-택호(宅號)를 "紅익人間 飮酒歌舞"로 평소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하루 일을 마치고 붉게 익은 얼굴로 모여앉아 술 한잔 기분 좋게 하는 가운데 노래 한자락,어깨춤 더덩실' 이다. 이때 고된 하루일을 풀어주는 술과 함께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노래가 바로 조선시대에는 시조가락이었으리라. 우리는 오래전부터 '노래'를 사랑하는 겨레였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읊조리며 행복한 시간들이다. 비록 우리 시조가락이 이제는 곡조는 사라지고 시조만 남아 전하는 형국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 면면은 우리 곁에 아직도 흐르고 있으리라. 요즘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노래인 힙합,랩 속에도 전통의 가락이 살아 전해진다고 생각하는데 나만의 욕심일까?
 
 그나저나 날은 봄날인데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듣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계속 나겠는가? 이제 이 책속의 여러 아름다운 시조들 가운데 가려뽑은 봄노래 한자락 함께 즐겨 보련다.
 
 술이 몇 가지요 청주와 탁주이로다
 먹고 취할선정 청탁이 관계하랴
 달 밝고 풍성한 밤이거니 아니 깬들 어떠리  *신흠 * (143)
 
 사실 잠시 세상일을 다 잊고 자연을 벗 삼아 술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그런 생활이다. 나 역시 가끔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한가롭게 쉬면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쌓아놓고 읽으며 좋아하는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142)
 
 아마도 많은 이들 역시 그러하리라. 나 역시도…. 읽고 쉬고 마시고의 생활을 누릴 수 있을때까지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또 배우고 익혀야하리라. 나의 영혼을 훔쳐가는 노래를 찾아 부르며…….
 
 옛님네 노래가락 찾아 물어 따라 가니
 노래는 남았어도 가락은 간 곳 없네

 두어라 그 노래자락 내가 불러 보리라.   *들풀처럼 

 

 

2008. 4. 19.   우리 노래가 울려퍼져야 마땅한 날에...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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