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질문 08 = 우리 남편은 '빚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그걸 다 갚았습니다. 도무지 반성도 하지 않는 그런 인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다니카와의 대답 = 반성하지 않는 인간을 꽃피우기는 인간의 솜씨로서는 힘들지 않을까요. 특히 아내가 남편을 교정한다는 것은 큰 사업이라 평생을 다 바쳐도 힘들지 모릅니다. ~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렇게 길러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28,29)
 
 책을 읽다가 잠시 '뜨끔'하였다가 곧 '크게 웃어 제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 글을 보여주었다. 아내님 가로되 "딱!"이네…그리곤 시니컬한 웃음…참 '편안한 가정사'이지 않는가 --;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설명이 나와 있는 다니카와 슌타로는 올해 우리나이로 이른여덟의 할아버지인데 여러가지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들에 멋진거나 적절한 답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그 답에서 세상을 충분히 겪어온 노시인의 눈을 거쳐나온 잔잔한 이야기들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일본 사람 특유의 관점이 스며들어 있는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앞서 예를 든 '남편의 경우'에 답중에 일본스러운(!) '동반자살'이라는 말이 너무 수월하게 나온다. '질문 13'의 토라진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질문에 대하여도 '손가락을 자르거나 배를 가른다든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일본문화의 배경 덕분?이리라. 이렇게 인식하는 것도 편견일까? 아니면 그냥 삶을 달관한 시인의 덤덤한 자세에서 나오는 말일까? 
 
"이웃의 마음을 이해하기 바라며"라는 '작가의 말'에서 질문과 답을 통하여 모두의 노력으로 이런 책이 나오게 됨을 시인은 기뻐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과 사람에 쏟고 있는 그의 따듯한 관심때문이리라. 어쩌면 이보다 더 진솔하고 진지한 질문과 답들이 쏟아지고 오갈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살짝 자세를 틀고 비틀어 일상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독자인 우리들은 부담없이 즐기며 만나다가 문득 깨달음의 순간에 이르기도 한다.
 
 질문 26 = ~ 인간의 악취에 대해 다니카와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다니카와의 대답 = ~ 야생을 잃고서 인간은 인공의 냄새로 자연의 냄새를 지우려 합니다. 인간의 악취에 민감하고 인간을 더럽다고 느끼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74,75) 
 
 질문 24 = 만일 다니카와 씨가 회사의 인사과에 있다면 입사시험에 무슨 문제를 낼까요 ? ~ / 다니카와의 대답 = 질문도 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고,상냥한 표정으로 말없이 상대를 2분 정도 바라볼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2분 동안 상대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볼 겁니다.  (70,71)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대답이리라. 엇, 가만, 나는 최근에 아내의 얼굴을, 딸아이의 얼굴을 단 1분이라도 말없이, 그것도 상냥한 표정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또 '뜨끔'해지는 순간이다. 오늘은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을 '상냥하게' 1분이상 바라보면서 책을 접어야겠다. 책에 뺏겨버린 남편과 아빠를 잠시나마 돌려주어야겠다. 
2008. 4. 16.  밤, 1분, 생각보다 깁니다.~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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