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마릴린은 빛이 아니라 열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스크린을 활활 태우고 있어요. (사르트르) (172)
 
 오래전 인물임에도 마치 얼마전의 사람처럼 기억되는 인물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릴린 먼로'가 그러하다. 지은이는 이야기내내 '마릴린'이라고 간단히 그녀를 부르는데 아마도 '마릴린 먼로'라고 우리가 부를 때 갖게되는 어떤 선입견을 뿌리치고자 하기 때문이리라. 그냥 '마릴린'이라 부르는 이름에는 숱한 화제속의 그녀가 보이지 않고 묻어나지 않는다. 특히 시간적으로나 장소로나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는 나같은 이에게는…….
 
 한 때 영화에 빠져 지낸 시간들이 있다. 월간지 부록으로 나온 배우들의 인명사전을 줄줄 외우고 다니던 시절,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비디오와 주말의 명화만으로도 행복해하며 바라보던 영화들, 그 속에 그녀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실제 그녀가 나오는 영화를 직접 본 것은 로버트 미첨과 함께 주연한 <돌아오지 않는 강> 한 편 뿐이다. 노래까지 부르던 아름다운 모습의 그녀…….그런 그녀가 자살했다.
 
 그녀의 자살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 그녀를 치료하였던 정신과 의사,랠프 그린슨의 남겨진 기록들, 아픈 과거 이야기들, 영화와 영화인들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펼쳐지는 거대한 심리드라마 속에서 그녀는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위태로운 쪽이 더 강하였고 결국 그녀는 죽음으로 이르는데…. 
 
 겉으로는 부를 얻어 풍요롭지만 내면은 나약하고 예민한 의사들과 영화인들은 양쪽 다 아픈 환자 같은 존재들이었고 '대화를 통한 치료'로 서로의 병을 치유했다. (30)
 
 그 당시 정신과 의사들과 영화인들은 서로의 아픈 곳을 다독거려주는 존재였고 마릴린과 랠프도 그러하였다. 그들의 애증은 랠프의 표현되로 '에로스가 빠진 사랑'(236) 이었을까?  마릴린이 그토록 외로워하고 자신을 돌봐주기를 바랐던 것은 사람의 외로움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누구나 겪는 것임을 처절히 알고 있던 까닭이었을까?
 
 인간은 달에 가고 싶어 하면서 정작 인간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요. (마릴린) (198)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일이 바로 정신과의사들의 일이 아니던가, 마릴린은 랠프 이전에도 여러 의사들을 만나며 치료를 받아왔고 랠프를 만나서도 당연히 그러하였다. 과연 그녀는 치료를 통하여 치유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치료를 통하여 더욱 깊어져 갔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많은 만남을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결국 떠나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결론을 삭제하더라도 우울함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14)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떠난 사람은 떠남으로 잊혀져야 하고 남은 이들은 남은 삶에서 발버둥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발길질을 하지 마라'라고 표현하셨죠. 아무리 운명을 향해 발길질을 해도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다칠 뿐입니다. 혹시라도 언젠가 박사님이 운명에 대항해 발길질을 하여 제가 상처를 받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나 프로이트) (501)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랠프 박사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과연 운명을 향해 발길질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 생채기만 생기는 것일까? 쏟아지는 질문들에 나는 책속에서조차 허청인다.
 
 마릴린이 숨막힐 정도로 매혹적이었던 이유는 그녀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녀는 누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해도 그걸 알아채거나 따지지 못했어요. (랠프) (54)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랠프) (513)
 
 어찌되었든 마릴린은 랠프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숨막힐 정도로 매혹적'인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을까? 답은 그러리라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 오래된, 만인의 연인이야기를 붙잡고 밤을 지새울 까닭이 있겠는가? 
 
 "마릴린은 훌륭한 배우예요. 당대의 여배우들을 전부 합한 것보다 지각하는 마릴린 한 사람이 더 낫습니다. 제 시간에 와서 대사를 잘 외우는 여배우를 원했다면 빈에서 만난 산드라 워너 씨를 선택했겠죠. 산드라 씨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는데다가 기억력이 아주 좋아요. 하지만 산드라 씨가 영화에 나와봐요. 누가 보고 싶어 하겠어요? "(107) 
 
 '전설이 진실보다 흥미롭다면 전설을 이야기하라' (109)
 
 위 두 이야기는 모두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감독이었던 빌리 와일더가 한 말들이다. 이제 나도 그녀에 대한 추억을 접으려한다. '누가 마릴린을 죽였느냐가 아니라 마릴린이 무엇때문에 죽었느냐'(21)가 아직도 궁금하긴 하지만 어쩌랴, 추억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원래 끝이라고 여겨질 때,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법 (13) (541)
 
이기에 또 다른 이야기가 제발로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마릴린을 가슴에 묻어두는 수 밖에…….
 
2008.3.31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녘에…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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