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빠빠 - 어린 딸을 가슴에 묻은 한 아버지의 기록
저우궈핑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어린 딸을 가슴에 묻은 한 아버지의 기록"이라는 부제만 보고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는 책이었다. 늦게 얻은 귀한 딸이 희귀병으로 18개월을 살다 떠나고 아빠는 아이에 관한 추억을 가슴에 묻어두었다 책으로 내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흔하여서는 안되지만 흔한 눈물의 드라마가 아니던지~ 라는 생각은 책을 펼쳐 들자 마자 여지없이 깨어진다. 그리고 오히려 담담해진 맘으로 '아빠'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아마도 지은이가 평범한 아빠였다면 그렁그렁 눈물흐르는 아픈 드라마가 상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아이를 가슴에 묻은 이 아빠는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였던 것이다. 여기에 슬픔과 눈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삶에 대한 통찰이 아픔속에서 담담히 피어나는 것이다,
 
 고난을 만났을 때, 철학자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 좀더 많이 생각해 결국 인생과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7)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 또는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분명 철학책이다. 단,어렵고 머리 아픈 철학책이 아니라 어려운 일에 부닥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정리하고 갈무리 해나가며 성숙해지는지를 체험으로 알려주는 그런 책이다. 그러기에 읽으면서도 계속 명징하게 깨어있게 된다. 감정의 몰입을 방해받으며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리라. 
 
 어린 생명을 기르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체험일 것이다. 어린 생명을 바라볼 때의 지극한 즐거움이 바로 아이를 기르는 것의 보상이다. (46)
 
 나 자신의 죽음까지 포함하는 모든 비참한 일,우리는 이에 적응하기도 하고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비관하다가 어떤 때는 달관하기도 하고,때로는 정신을 차렸다가 때로는 둔해지기도 하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사람의 인내력과 적응력은 놀랄 만한 것이다. (164)
 
 평생을 불구로 고통속에 보내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아이에 대한 시술을 거부하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다 가도록 - 겨우 542일이지만!- 선택한 아빠의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곧 후회하게 되며 깨닫게 된다.
 
 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니! 얼마나 단순하고 유치한 공식인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공식 속에서, 생명이 지닌 부족함,어려움,설움 같은 것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다고 자부하던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유치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완전'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상일 뿐, 현실은 아무래도 '불완전'하고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이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자신 또한 마땅히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야 한다. (236)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당혹감에 빠져들었는데 지은이는 '뉴뉴'(딸)가 태어날 때부터 곁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늘 함께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이가 아픈 것을 알기 전부터 그처럼 아이에게 열과 성을 다하여 사랑을 하였다는 사실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왜냐면 나는 지금 12살인 딸아이에게 제대로 된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은 기간이 겨우 두세해 밖에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아이가 나서 자라 10살 가까이 될 때까지 나는 일을 핑계로 바깥에서 맴돌았고 그 결과물은 철처한 '엄마딸'의 탄생이었다. 뒤늦게 깨달은 바가 있어 아이곁에서 책도 읽고 함께 놀기도 하며 같이 보내는 시간을 늘여보지만 벌써 5학년이 된 딸아이는 제 갈길을 뚜벅뚜벅 잘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헛수고라고? 사랑은 헛수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헛수고라고? 사랑은 절대 헛수고가 아니다. (97)
 
 세상에 어떤 사랑이 필요없는 사랑이랴, 특히 아비가 딸에게 베푸는 사랑은 말해 무엇하랴..뒤늦은 반성과 뉘우침으로 이제서야 딸아이곁에 서는 남자들이 어찌 나뿐이랴만 이 사회는 그동안 그런 아빠들을 원하여 왔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고 또한 달라져야 한다. 삶의 빛이 되는 아이와이 만남과 사랑으로 나도, 우리도 아이랑 함께 남은 생을 더욱 행복하게 꾸려가야 하리라. 그것이 먼저 이별한 사람들에 대하여 죄짓지 않고 사는 길이니까.
 
 아들은 기껏해야 내 고독을 덜어줄 테지만, 딸은 고독을 덜어줄 뿐 아니라 위로도 해줄 수 있다. (23)
 
 짧은 삶을 행복하게 살다간 '뉴뉴'의 명복을 빈다.
 
2008. 3.30.   그리고 사랑한다, 아빠딸…….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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