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를 만나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시, 문지혁 옮김, 노경실 글 / 가치창조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서히 눈이 부시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눈멀고 말 것이다"(에밀리 디킨슨)~ 반 고흐의 그림은 그야말로 "서서히 눈이 부시"다. (11쪽)
 
 반 고흐의 '삶의 마지막 고비 속에서 그려낸 그림들'과 원저자 맥엔타이어의 ,고흐의 편지글, 그리고 작가 노경실의 본문글 어우러져 또 한 권의 '소유하고픈 책','탐나는 책','아름다운 책'이 태어난다.
 

 책에 나타나 있는 순서대로 말하자면 '그림- 편지글-본문글-詩'가 펼쳐진다. 막연히 바라만 보던 그림들에 고흐 자신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듣고 다시 이야기해주는 -그림 읽어주는 작가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한 번더 등장하는 그림 곁에 지은이의 詩, 그림을 풀어서 글로 써 놓은 듯한 마춤맞은 詩가 우리를 두 팔 벌려 반겨준다.

 

 

 



 

[아를의 공원 입구]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라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물감과 석고만으로 작업할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속에서, 즉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작업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예술작업이 아닌가 -(고흐) (27쪽)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한 뒷모습을 발자국 대신 남긴다. 그것은 편안한 산책이 아니라 늘 부족한 빵과 커피,연료,물감 그리고 갖지 못한 사랑과 가족 등 사람과 사람의 뿌리에 대한 갈망이다.-(노경실) (27쪽)
 
~ / 떠나고 들어가는 자국이 남는 출입구들을 만들어 / 원치 않음에도 우리를 휘저어 / 삶의 한가운데서 한번쯤 길 잃었던 / 오래고 어두운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 야생을 / 길들이고 만다 -(맥엔타이어) (28쪽) 
 
 한 작품을 놓고 세 번의 설명을 듣는 셈이다. 물론 들여다보면 조금씩 차이는 있다. 고흐 자신이 하는 이야기는 작품과 관련된 구절이 있는 편지글들을 잘 배치해 놓은 것 같고(아니면 실제 그 작품에 대한 고흐 자신의 이야기든지) 노경실 작가의 이야기는 고흐의 생애에 대하여 사전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친절한 설명과 본인의 느낌을 버무려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원저자 맥엔타이어의 詩는 아마도 원어로는 운율이나 질감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기분과 상당히 더 근접하리라 여겨질정도로 적절한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그림에 대하여 특별히 배운 바가 없고 아는 바가 없는 나같은 이들에겐 놀라울 정도로 그림에서 느낀 감정, 분위기를 잘 짚어내고 있다.
 
 책을 보며 집을 둘러보니 몇 년전부터 퍼즐을 가족들이 함께 맞추어 집안 곳곳에 붙여놓은 고흐의 작품이 세 점(1000조각 2점 + 300조각 1점)이나 된다. 그 중 두 작품은 이 책에도 실려있어 무척 반가웠다.- [밤의 테라스]와 [아이리스]
 



 


[밤의 테라스]

 
 푸른 밤,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고흐) (77쪽)
 
 고흐는 별 하나하나에 경의를 표한다. 그의 별들은 아무 대가없이 그를 초대한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오라.우리가 안식을 주리라,술잔을 내려놓고,붓을 등뒤에 내려두고,그 낡은 구두도 벗어버리고 맨발로 오라, 오라,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오라,아무것에도 요동치지 않는 심장으로 오라,흐르는 눈물을 닦지 말고 그대로 오라,맨발로 오라…….-(노경실) (77쪽)
 
 그런데 책에 실려 있는 22편의 작품중 [의자]와 이 작품 [밤의 테라스]에만 詩가 없다. 추측컨대 원본에 없는 작품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여 고흐의 글과 노경실 작가의 글만 첨부하여 두 편을 추가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출판사의 무지막지한 실수가 될 터이니..그렇지는 않으리라 보인다. 
 
 그림을 잘 모르는 이도 고흐에 대하여는 설핏이라도 들은 바가 있을 터이지만 그에대한 지식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책에서는 작품 자체로 고흐를 한 번 만나고 세 번의 설명을 들음으로 어렴풋이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에 대한 감상을 구체적인 표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새로운 작품감상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막연한 어떤 느낌들이 글로 표현되고 그 표현이 나의 감성과 맞아 떨어질 때 느끼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즐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었다고 하여 기죽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맞게 변해가며 바뀌는 것이니까. 또한 '나는 그림에 생명을 걸었고'(98쪽)라고 말하는 고흐를, 그의 그림을 다 이해못한다고 하여 부끄러울 건 또 무엇이겠는가. 그림을, 詩를,글을, 그의 목소리를 만나고 들으며 흠뻑 취하는 것만으도 충분한 시간들일지니…
 



 


[낮잠]

 
 생 레미 병원에서 고흐는 나갈 수 없다. 지저분한 회색 벽 앞에 모델을 세워 둘 수도 없다. 나가고 싶다, 나가고 싶다.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림은 그릴 수 있으나 흙을 만질 수 없고, 흙의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누가 그의 붓을 마르게 하랴. 어느 바람이 그의 캔버스 위에 한숨을 쏟아내랴. / 그는 판화로 만든 밀레의 그림을 보고 농부들을 만난다. 그 농부들에게 낮잠을 선물한다. 그제서야 자신도 안식에 들어간다.-(노경실) (91쪽)
 
 이것은 신뢰의 기도 / 남은 일들을 기다려줄 것이다. / 돌보지 못하는 아이, 다듬어지지 않은 토지,/ 금간 바퀴와 부서진 담장은 모두 / 어스름한 꿈속 그림자로 부드러워진 / 깨어있는 마음의 일이다. /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다. /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 세상은 사랑 안에서 돌아가는 것, / 우리는 대지에 알맞고 적당한 것을 주고, / 몸이 우리를 쉬라고 부를 때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맥엔타이어) (92쪽)
 
2008. 3.12.  마른 봄날, 봄비를 기다리는 밤에
 
들풀처럼

*첨부사진: 책 속에서는 무척 선명한 색깔이었는데 인터넷에서 가져온

             위 사진들은 그렇지 못함,원색의 질감을 전하지 못하고 있슴

 

 

*아쉬움 2가지 !

 
1. 그림 설명에 '원작'의 크기가 표기되지 않은 6작품이 있어 궁금했슴
2. '감자 먹는 사람들'이 없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임 ^^
?. 원저작의 작품 소개시 "작품+시" 순서가 연대순이 아닌지요? 
 - 詩가 없는 [의자],[테라스]와 [밀집모자 자화상]만  작품연대 순서가 틀림 = (추측) 2작품은 임의로 편집, 자화상은 처음에 2편 나오면 부담스러우니 순서를 바꾼 것은 아닌지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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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어버이 은혜 감사드리며 - 고흐의 카네이션 그림 3점
    from 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 2008-05-08 01:15 
    토마스 엘리엇(Thomas Elyot, 영국, 1490~1546)이 말한 "잔인한 달(4월)"은 5월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어린이 날을 보내고 나니, 바로 내일이 5월 8일, "어버이 날"입니다. 이제 곧 다음 주면 "스승의 날"도 다가 오구요. 이번에는 다 챙겨보려고 일단 마음은 먹었는데, 끝이 없을 듯 합니다. ^^ 지난 주부터 모두들 작은 정성이나마 마음 담아 선물 고르기에 애들 쓰셨을 줄 압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선물들을 고르고..
 
 
초하(初夏) 2008-05-0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덕분에 좋은 감상하고 좋은 책 하나 기억해둡니다.
저도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올린 고흐 관련 글을 엮어 소개하고 갑니다.
좋은 날, 좋은 하루 맞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