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모텔 현대시세계 시인선 72
배선옥 지음 / 북인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2019년 1월 5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바다의 저고리 앞섶을 헤치고 뛰쳐나와 줄 풀린 개처럼 겅중거리는 갯내 밀물이 도착하기 전 저녁사냥을 서둘러야 해 천천히 그러나 음흉하게 움직이는 물살을 헤아려 잽싸게 날개를 펼치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하루를 낚아채 물어 올린다 낚시바늘보다 더 억센 부리에 붙들린 일상이 몸부림을 치면 그 서슬에 놀라 먼지처럼 부서져 날리는 노을 자동지급기에서 인출해갈 안락한 저녁과 풍요로운 식탁을 숫자판을 꾹꾹 눌러 가늠해본다 이른 어둠 속에서 하얗게 초저녁 달 나타나면 조개젓 파는 할머니 비로소 허리를 편다 6시다

* 배선옥 시집, [오렌지모텔]에서 (25)
- 현대시세계 시인선 072, 도서출판 북인, 1판 1쇄, 2018. 5. 8



:
'모텔'이라는 말이 제목에 있으니 가벼운 시집을 손에 들며 먼저 '음흉하게' 딴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 정말 잠시 쉬어가도 좋을 작은 파라다이스'(76)로 "오렌지모텔"을 이야기합니다.

"변방 사람들", "요양병원", "남동공단 블루스", "심야영업 노래방 삐끼"... 몇몇 시의 제목만으로도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시들이 따뜻하고 므흣하고 후끈한 노래가 아니라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리는 노동요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묵은 기미처럼 촉수를 오그려 납작 엎드려 있을 뿐
언제든 손톱을 세워
얇은 얼굴을 할퀼 때를 노려 피부 가까이에서
영글어갈 뿐
- "샤넬 노래방, 미쓰 킴"에서 (38)

그리고 끝내 "천사는 없다"(39)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서 고통만 바라본다면 시가 노래가 될 수 없음을 시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잘 버무려 '모두모두 예쁘고 고맙다'(17)고 말하며 따뜻한 노래를 건네 옵니다.

은종이 울렸지요
반짝이는 은가루를
소리의 끄나풀에 매달려
날아다녔지요
세상이
그렇게 쌀쌀맞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야, 저는 꽁꽁 여며져 있던
장갑을 벗어 그대의
손을
잡았습니다
함박눈이
오래도록
내려주기를
바라면서요
- "참 좋은 날"(13)

그래요, '세상이 / 그렇게 쌀쌀맞은 것만은 아니라고' 믿으며 경험하며 끌어안으며 '손을 잡'으며 우리는 살아가는 거지요. 이렇게, 겨울이 깊을수록 더욱더.

( 190105 들풀처럼 )


#오늘의_시
#보다 - [오렌지모텔]
'어수선한 한 시절을 살아내'(59)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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