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언각비
정약용 / 일지사 / 197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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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언각비는 마치 요즘 텔레비전 방송에서 짧은 시간 동안 보여주는 바른말 고운말 코너처럼 흥미롭다. 조선시대, 정약용이 당대에 사용된 어휘와 단어 표현들을 하나하나 골라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고 그 연원까지 소개하는 이 책자는, 그래서 더욱 재미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다르게 알려져 있었던 여러 단어에 대한 소개는 물론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여러 물건에 관해 꼼꼼한 설명까지 덧붙여 두었다. 상복과 함께 사용하는 굴건을 실상은 꺾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닌데 꺾어서 사용하면서, 이름까지 굴건이라 지어 부르고 있다는 통탄의 말도 보이고, 중국의 발음을 따라 잘못 발음하고 있는 단어의 용례도 확인할 수 있다. 어문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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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절 - 신완역, 한국고전명저정선 4
이덕무 지음 / 명문당 / 198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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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가 남긴 청장권전서의 일부로 소개되기도 하는 사소절은, 그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굳이 풀이하자면 선비의 작은 예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안에는 비단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예의범절만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가 갖추어야 할 덕성과 자세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설명과 예시가 돋보인다. 상추쌈은, 먹는 모양이 과히 좋지 않으니 먹기를 삼가하라는 표현에서부터, 부인의 투기와 게으름, 어린아이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언이 담겨 있다.

사소절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의 옷은 넉넉하여 시체를 염할 때 쓸 수 있었으나 요즘(이덕무가 글을 쓰던 그 시점)에는 그렇지 못하니 괴이하다거나, 머리카락을 높이 올려 가체를 드리는 일이 사치와 낭비를 조장하니 경계해야 한다는 당대의 유행에 대한 언급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실학자의 입장에서 본 당대의 비합리적 혹은 지탄받아 마땅한 사안들에 대한 꼼꼼한 시선은 흥미와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한편의 짧은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조선시대의 에티켓 전문서, 어떤가! 그 낯설고도 익숙한 영역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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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의 나라 1
김진명 지음 / 해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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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또한 실제이기도 하다. 김진명의 소설을 읽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국수주의적 관점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일간의 미묘한 관계에 지나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 시선에서 한발자국만 물러서보라. 이전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혹은 황태자비 납치사건, 그리고 가즈오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의 소설에서 역사를 읽고 본다.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그 안에 더해져 있는 다양한 사건들은 허구인 소설을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김진명 소설의 매력이다.

가즈오의 나라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배경과 쟁점은 광개토대왕비이다. 그리고 우리가 박물관 한 귀퉁이, 다큐멘터리의 어느 한 장면에서 보고 지나쳤던 칠지도가 중심에 놓인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 유물과, 이것을 사이에 둔 실제의 외교적 혹은 역사학자들간의 논쟁, 그리고 연구성과, 이 모든 것을 소설이라는 틀 속에 놓고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물론 글을 읽는 독자는 어디까지가 고증된 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곳인지 잠시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역사'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역사를 보는 데에 과연 절대적인 관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지극히 상대적이며, 자료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거대하고 복잡한, 그럼에도 또한 일상이며 삶인 역사를 오늘, 소설 속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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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인 이야기
하야시 미나오 지음 / 솔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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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중국고대생활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중국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인 이야기인 것도 마음에 든다. '고대' 이야기를 하자면 어차피 그들의 무덤이나 고고학적인 성과물이 바탕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고분에서 나온 도자기의 모양이며, 고분의 구조가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이 책의 장점은, 그런 고고학적 발굴 성과물을 통해 고대 중국인들의 생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물론 부장물이니 장례라는 상황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고, 그 부분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어떤 사후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이 그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것이었는가를 유추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고대 중국인들의 차림새와 주거, 음식와 농업 등을 다양한 발굴품을 통해 살펴보는 재미가 이 책에 있다. 그것이 의례나 정치, 권력관계 등에 함몰되지 않고 일상생활에의 접근에 이용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글 사이사이에 놓인 그림과 사진, 그리고 도면 등은 이해를 돕기에 더없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중국인들의 생활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전문적인 지식은 아닐지언정, 소설처럼 읽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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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프로메테우스 - 현대 문명을 연 아홉 명의 화학자들
섀런 버트시 맥그레인 지음, 이충호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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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관련된 책들은-유명한 과학자들의 전기가 아닌 이상- 대개 간결하고 명료하며, 지극히 사실적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선입견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반은 수필, 반은 전기같다. 하나의 화학적 발명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화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합성 염료, 설탕, 합성 비료, 나일론 등 20세기를 편리함으로 안내한 화합물들의 등장 배경과 그것을 만든 이들이 경험한 에피소드들은 이 모든 소산들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느끼도록 도와준다. 선구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많은 사람들을 편리함과 안전으로 안내한 이들의 발명품이 그들 자신에게 족쇄가 되기도 했다는 점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과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대신, 즐겁고 독특한 작업 혹은 노력과 투자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재미있는 책이었다.

서술하는 방식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으나 '결과'만을 빨리 보고자 하는 조급함을 느긋함으로 바꾼다면, 그들의 여정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힘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불'을 선사한 그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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