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5층 6층씩 도는 고급 모텔들이 들어서 모텔 밀집지역을 이루기 전에는
위치도 가장 좋은 곳이어서 언덕 위의 빨간 벽돌집이 멋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때 알프스는 욕실 표시에 알프스장이라고 쓰여진 촌스러운 간판을 붙이고 있었지만,
1년 전 개축 뒤에는 외벽의 빨간 벽돌이 대리석 무늬로 바뀐 것과 함께 간판에서도
욕실 표시와 장 자는 떨어져나갔다.
알프스장은 완전히 새로운 알프스 모텔로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윤은 예전의 알프스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윤은 결혼 전이었고, 남편은 무슨 수단과 방법을 쓰든지 그녀를 안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인,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다.
남편은 언제든, 어디서든 그녀를 만지고 싶어했다.
거리를 걷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온통 언제 어디서 그녀를 만질 수 있겠는지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으슥한 거리, 구석진 자리, 삼류 동시영화 상영관 그리고 밀폐된 방이 있는 식당..
그는 그녀를 만지기 위해 걷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았다.
그때, 윤은 그의 어디를 그렇게 사랑했던가.
그녀를 만지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는 간절한 손길, 소망과 떨림으로 가득 찬 눈빛,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고 애절하게 반복되던 애원...
그녀는 그가 자신을 얼마나 열렬하게 원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식사비나 영화표 값을 아껴 값싼 여관을 찾아 돌아다녔고,
허겁지겁 일을 치른 뒤에는 한두 시간 만에 그 여관을 되돌아 나오곤 했다.
그 숱한 여관들 중에 알프스장이 있었다.
그곳이 그녀가 지금 일하고 있는 알프스 모텔과 같은 곳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의 다른 여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알프스 모텔에 일자리를 정하기 위해 처음으로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그곳이 아닌 예전의 알프스장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다.
바로 그날, 그녀가 알프스 모텔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던 날,
하필이면 모텔 바깥에서는 인근 주민들의 러브호텔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장실 창문 바깥으로는 모텔 밀집지역으로 들어서는 언덕 아래의 2차선 도로가 보였는데,
그쪽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깜빡이를 틀었던 차들은 시위대를 발견하곤 재빨리
직진을 해버리곤 했다.
그즈음 인근의 모텔들은 개점 휴업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건물 개축을 하느라 은행 빚을 쏟아붓자마자 곧바로 닥쳐온 그 엄청난 사태는,
다른 모텔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알프스로서는 거의 치명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장이 시위대의 구호 소리를 막기 위해 창문을 딛다 말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럼 사랑은 어디서 하라는 거야? 차 안에서 해? 차 없는 놈들은 물레방앗간에서 하고?"
그럴만한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윤은 그만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사장이 기막히다는 듯이 그녀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이 다가온 이후, 그렇게 참을 수 없는 웃음은
아마도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장은 화가 나서 "이 아줌마가 허파에 구멍이 뚫렸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웃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까닭이었을까.
난데없이 튀어나온 '물레방앗간'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그럼 사랑은 어디에서 하라는 거냐니...
사장은 정말,
모텔 알프스의 스무 개 객실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을 사랑이라고 믿는 것일까.
알프스 모텔에서 윤은 매일같이 그녀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흘린 체액들을 닦아내고,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구겨진 휴지를 모아 쓰레기 봉지에 넣고,
욕조에 엉켜 있는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변기 속을 닦는다.
침대 시트는 땀과 체액 그리고 때로는 핏자국들로 더렵혀져 있다.
쓰러진 술병들과 꽁초와 침이 가득한 재떨이, 구멍난 스타킹과 더렵혀진 팬티,
정액이 고인 채로 구겨져 있는 콘돔, 한 짝뿐인 귀고리와 넥타이핀...
윤이 알프스 모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쓰레기뿐이었다.
냄새나는 쓰레기들을 쓰레기봉지에 넣고, 시트를 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마지막으로 라벤더 향의 방향제를 뿌리고 객실의 문을 닫을 때 윤이 느끼는 것은
육체에 대한 환멸이었다.
그리고 그건 윤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소득이기도 했다.
윤이 집에 가는 것은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었다.
다른 청소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틀에 한 번꼴로 귀가를 했지만,
윤은 아예 일주일 내내 집에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윤이 모텔일을 하게 된 것도 실은 집밖의 잠잘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텔이 있는 동안, 그녀는 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고, 모텔의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그녀가 딴살림이라도 차린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일주일 만에 들렀다가 하룻밤도 자지 않은 채 집을 나서던 날,
윤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시어머니의 기척을 느꼈다.
칠십 노인네의 미행은 서툴기가 짝이 없어서
집의 대문을 나설 때부터 윤은 이미 그 기척을 알 수가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버스 정거장을 한 정거장이나 지나쳐 걸었고,
알 수 없는 골목길들을 꼬불꼬불 돌았다.
시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고 윤은 점점 그 일이 재미있어졌다.
빠르게 걷다 느리게 걷기를 반복하는 윤의 눈빛이 밤고양이처럼 빛나고,
목덜미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노인네는 악착같이 윤의 뒤를 쫓았다.
윤이 노인네를 향해 벼락같이 돌아선 것은 자신도 알 수 없던
골목길이 막다른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