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떡거리는 차를 상대로 그는 가학증 환자처럼 점점 더 난폭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대고 있었다.
차 안의 분위기가 다시 써늘하게 가라앉았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 예외가 있다면,
맨 뒷자리에 커다란 푸대자루처럼 구겨박힌 채 맹렬히 코를 골고 있는 사내 정도였다.
덩치가 보통 이상인 데다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가 튀어나온
그 사내는 애초부터 고주망태가 된 상태였었다.
버스가 터미널을 출발하기 직전 아마도 그의 친구들일 법싶은 다른 두 사내가
힘겹게 떠메다가 그 뒷자리에 처박아두고 가버린 처지였으므로
설사 차가 천 길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진다고 해도 쉽사리 깨어날 가망은 없어 보였다.
그를 제외한 승객들은 모두 깨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젖어들었던 그 감미로운 감정도 말짱 사라지고 없었다.
그대신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싶은 불길한 예감이 다시 그들 모두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버스가 깊숙하게 휘어진 산굽이를 돌아들 때마다 다들 심장이 오그라붙었다.
확실히 저 운전사는 문제가 있다!
승객들 사이에는 그런 의식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결같이 뻣뻣하게 긴장된 시선들을 운전사의 뒤꼭지에다 꽂아둔 채
말없이 흔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저 운전사 말이우."
긴장과 침묵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지자 노부인이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제 정신이 아닌 게 확실해요. 절대루 제정신 가진 사람이 아녜요."
"제 정신이 아니라면?" 노신사가 어눌하게 반문하였다.
그도 잔뜩 짓눌린 음성이었다.
부인이 잠시 주저하다가 선언하듯 재빨리 내뱉었다.
"약 먹었다구요! 마약 같은 걸 처먹은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는 스스로 두려운 듯 입술을 떨었다.
"설마하니~ 그럴 나이는 지난 거 같구만." 신사의 자신 없는 대꾸였다.
"나이하고 무슨 상관이람!" 부인은 여전히 단호하였다.
"잠을 쫓느라고 흔히들 약 같은 걸 먹는다지 않수. 맨정신으로야 왜 저러겠수?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이래도 그렇지.
저 혼자두 아닌데 어째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차를 몬데요 글쎄?"
"버릇인 게지 뭐~"
"버릇이라구요?" 부인의 음성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버릇? 다른 사람들 목숨은 아무래도 좋구?"
노신사의 목소리는 쥐어박힌 듯이 더 기어들었다.
"아니면 무슨 화나는 일이라두 있었나?"
"화가 나요?"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노기를 담은 항변이었다.
"우리가 왜 저 사람한테 화풀이를 당해야 하는 거죠?"
노신사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대꾸를 한 사람은 저 뚱뚱한 중년여자였다.
노부부의 뒷줄에 앉아 있던 그녀는 주저 없이 커다란 목소리로 불쑥 대꾸하고 나섰던 것이다.
"댁 말씀이 옳아요. 약을 처먹었거나 미쳤거나 둘 중에 하나라구요!"
버스가 출렁거리는 느김이었다.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모아졌다.
두려움과 비난이 가득 담긴, 한결같이 차가운 눈빛들이었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다 말고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살얼음이 잡히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운전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내는 그런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단지 핸들 조작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점점 더 심하게 헐떡거리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침묵 속으로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긴 오르막길의 거의 꼭대기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휴게소를 알리는 전광판 기둥이 저 앞쪽 어둠 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그러자 침묵을 깨고 갑자기 노신사가 소리쳤다.
"기사 양반! 우리 저기 들러서 좀 쉬어가세나!"
그는 앞쪽을 향해 오른팔을 엉거주춤 쳐든 채로 거듭 말하였다.
"잠시 허리도 펴고 화장실도 다녀올 겸 말이오.
얼추 두어 시간은 온 것 같으니까 기사 양반도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렇지 않소?"
그는 동의를 구하듯 주변을 둘러보며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밤차 타기가 이래서 쉽지 않는 거라.
원, 이렇게 고단허고 땀나고 숨이 차서야 어디 더 배길 도리가 있어야지~"
"그래요. 제발 천천히 쉬어가면서 가십시다. 나는 가슴이 할딱거려서 죽을 지경이라구요.
두말 말구 쉬어서 가십시다~" 노부인의 맞장구였다.
뒤를 이어 여기저기서 찬성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분위기는 금세 쉬어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사실 상당한 시간을 달려왔고 또, 긴장했던 탓으로 요의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갑자기 원두커피가 마시고 싶어졌고, 더러는 따끈한 가락국수가 생각났다.
벌써부터 철그덕거리며 여기저기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을 태운 버스는 눈곱만치도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그대로 휴게소를 통과하고 말았다.
승객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승객들의 요구가 이렇듯 깨끗이 묵살당하다니!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그러고도 운전기사는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말문을 트지 못하였다.
급기야는 저 중년여자가 또 발끈하고 일어섰다.
"이봐요. 운전하는 양반! 귀가 먹었어요? 다들 쉬어가자는데 왜 아무런 말이 없는 거예요?"
그러자 점퍼 입은 사내도 거들고 나섰다.
"저 냥반, 너무 시건방지구만 그래!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사람이길래 손님 알기를 뭣같이 아는 태도냐고 지금?"
===================================== 5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운전사의 횡포가 점점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이부분에서 억울하게 폭력을 가하는 운전사는 마치 정치인들처럼 여겨집니다.
심야길을 당연히 안전하게 운전해 줄 것임을 믿고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정치를 당연히 깨끗하게 해줄줄 알고 뽑은 정치인들과 같습니다.
나중에 바른 길로 가지 않는다고 항변해 본들,
가타부타 말이 없이 국민들을 깨끗이 무시해 버리는 저들처럼 그들은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우리를 비굴하게도 하고 가슴 답답하게도 하다가,
나중엔 우리 목을 조여옵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서 친구란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분이 계신가요?
선배란 이름으로 상사란 이름으로 그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서
힘없는 사람을 비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던가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인간임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 입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말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운전사는 어떤 행동을 할까요?
5편에서 계속 이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