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 내 고운 벗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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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니까! 쓰바, 동작 그만!"
그러자 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아 씨팔. 나랑께."
평소 같으면 장 병장의 입에서는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욕설의 스무 배가
튀어나왔을 것이지만 대위 앞이라 참고 있었다.
그 대신 정 낚시가 나섰다.
"엉, 영만이구나. 어영부영 어영만이. 야 이 자식아.
니 여가 어덴중 알고 네 맘대로 낚시를 하고 있어. 여가내 전용 양식장인 거 몰라?
당장 낚싯대 안 빼나."
모자는 막 낚아올린 붕어의 입에서 낚싯바늘을 빼며 느긋하게 대꾸했다.
"아이구. 형님. 여그가 워치키 형님 양식장이요. 여그 무슨 주소라도 있습뎌.
양식장은 저그 아래쪽 가두리양식장에서 찾아보시쇼. 잉."
어느새 장 병장이 살쾡이처럼 잽싸게 다가가서 어영만이 버드나무에 끈을 매어
걸어놓은 살림망을 집어들었다.
살림망은 손바닥만한 붕어가 제법 들어차 묵직했다.
장 낚시는 십여 미터 떨어져 있는 대위와 중사에게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이 꺼지래면 꺼지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확 아가리를 그냥..
꺼져 새꺄, 너 이거 여기서 잡았으면 압수다."
어영만은 그제서야 대위의 존재를 알아챘다.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중사와 병장, 정 낚시가 모두 공손히 대하는 사람이면
만만치 않은 사람임은 알만했다.
나중을 위해서는 세 사람의 체면을 살려주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어영만이 얼른
살림망을 잡아채며 우는 소리를 했다.
"아니랑께. 여그서 잡은 거 한 개도 없당께.
낚싯대하고 의자하고 텐트하고 싹 철수할 텡께 그만 화 풀더라고."
장 병장은 갈 때보다 훨씬 잽싸게 대위에게 돌아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기 가는 놈이 저래봬도 이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낚시꾼입니다.
여기가 포인트라는 걸 아는 사람이 몇 안 되는데 지금 쟤가 지고 가는 살림망에 든
붕어들은 다 여기서 잡았을 겁니다. 자리잡아 드리겠습니다."
대위는 느긋한 표정으로 병장이 펴준 고강도의 드랄루민 낚시의자에 걸터앉았다.
병장은 어영만이 앉았던 바로 옆자리에 받침대를 박았다.
낚싯대는 스무 대쯤 가져왔지만 결국 채비를 한 건 정 낚시가 가져온 세 칸짜리 (18척)
대 하나와 장 낚시의 두 칸 반짜리 하나 해서 두 대였다.
어영만은 말굽처럼 되어 있는 만의 반대편에 가서 구시렁거리며 낚시를 펴고 있었다.
정 낚시가 물의 깊이를 가늠하고 헛챔질을 몇 번 하며 찌를 조절한 뒤 처음으로 바늘에
지렁이를 끼우고 낚시를 던졌을 때였다.
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며 맞은편의 어영만이 물로 뛰어들었다.
어영만은 아까 앉아서 낚아올리던 포인트가 못내 아까운지 그 자리에 계속 낚시를 던지다
대가 짧아 닿지 않자 아예 물속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맞춘 것이었다.
중사와 병장이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또 동시에 대위를
돌아보니 그는 재미있다는 듯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정 낚시가 한마디 했다.
"저렇게 미친놈도 있심다. 그런데 저 자리가 정말 구멍은 구멍인 모양이라요.
자가 이래 차가운 물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이꺼네 말입니다.
원래 계곡형 저수지는 물이 차고 맑은 핀이라 가이고요.
고기들이 사실 빨리 크지는 않습니다. 붕어가 경계심도 많고 입질이 적고요.
그래도 여는 저 안쪽 계곡에서 내리오는 물이 들어오는 수로가 있으니까
먹을 기 많아서 붕어가 많이 모이는 핀입니다."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장은 텐트 속을 청소하고 준비해온 방수천과 담요를 깐 뒤에 침낭을 열어두었다.
언제든지 들어가서 누우면 잘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중사는 주전자에 생수를 옮겨 담고 버너를 켜고 물을 끓이면서
군대 시절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병장은 지렁이를 바늘에 세 번째 갈아 끼웠다.
그동안에 어신은 전혀 없었고 대위는 미끼를 갈 때마다 낚싯대를 들었다 놓았다 할 뿐이었다.
갑자기 맞은편에서 물을 튀기는 소리가 요란해지며 뭔가가 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모자를 저수지 물에 빠뜨리고 대머리가 드러난 어영만이 옷을 마구 벗어제치고 있었다.
"거머리, 거머리, 거머리!"
알몸으로 미친 듯이 뛰고 뒹구는 어영만을 보고 대위는 절벽 삼면이 다 울리도록
큰 소리로 웃었다. 어영만이 먼지를 일으키며 가버린 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장 병장은 준비해둔 캐미라이트를 찌에 끼우고 랜턴을 모자챙에 끼워 대위에게 건넸다.
대위는 이제 다들 그만 가보라고 했다.
중사가 주춤거리며 말했다.
"저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으실란지요. 아까같이 다른 잡 낚시꾼들도 올 수 있는데
시내에 들어가서 주무시는 게..."
대위는 웃었다. 웃으면서 여전히 찌에 눈을 주고 상관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지방 소도시 여관에 묵으며 호강하려고 한 게 아니라 낚시를 하러 온 것이라고 했다.
숙식은 정 사장, 장 사장이 가져온 장비로 충분하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고
다시 한 번 집에 가라고 세 사람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 6편에서 계속 읽어드리겠습니다. -----------
여전히 계속 낚시 이야기만 하는군요.
성석제 본인이 낚시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성석제의 다른 책들을 읽어봐도 낚시 이야기가 종종 나오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