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 내 고운 벗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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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는 대위의 핸드폰에서 온기가 가시기도 전에 대위 앞에 뛰어내려 경례를 올려붙였다.
"허허, 이 친구. 제대한 지가 한 십 년도 훨씬 넘었을 텐데 아직 군기가 덜 빠졌구만.
훌륭해. 열중 쉬어. 쉬어. 편히 쉬어. 이제 됐나? 나 이런 거 싫어하네.
우리가 군인도 아니쟎은가, 친구."

단정한 양복에 짧은 머리, 군더더기살 하나 없는 몸매를 가진 대위에게서는 강한 스킨로션
냄새가 풍겨났다. 대위는 한쪽 손에 검은 색의 가죽 손가방을 들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군대 시절 중사는 대위와 근무지가 갈린 뒤에도 뻔질나게 대위의 호출을 받았다.
대위의 아이를 지우고 왔다는 여자와 그의 오빠를 만났고 돈은 둘째 치고 상판대기나
보자고 하면 군인은 돈도 시간도 없다고 둘러댔고 대위와 술집에서 치고박은 동네
깡패의 치료비를 대주고 함께 목욕탕에 가서 대위를 대신해 화해했다.

그러면서 대위에게서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대위의 말에 따르면 친구 사이에서는 고맙다, 미안하다, 다음에 갚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전역한 뒤에도 일 년에 한두 번씩 대위는 곤란한 일이
있을때 마다 친구를 부르더니 근년에는 뜸하다가 삼 년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난 쉬러 왔네. 세상만사 계산 시름 다 잊고 푹 쉬었다 가고 싶네.
못해본 낚시나 실컷 하면서 말이야.
오직 자네를 믿고 자네에게 만사를 맡기겠네."

중사는 '자네에게 만사를 맡기겠다'는 말에 감격으로 염통 한구석이 시큰해지면서
온몸이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중사는 이 나이에 이게 무슨, 하면서 어금니에 힘을 주고 대위에게 가방을 받아 들었다.
문을 열자 대위는 가벼운 몸동작으로 차에 올라탔다.

"하, 이거 완전히 야전용이네. 내가 서울, 아니 세계 어디서 이런 차를 타보겠나.
친구, 자네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일세.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고 말이야."

중사는 대위의 거듭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 예정된 숙소.
곧 며칠 전 빌려둔 어느 외지인 별장으로 향했다.
그림 같은 산중에 자리잡은 그림 같은 집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최고의 음식재료와 주방설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모두 장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로 사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온천도시의 관광호텔에서 빌려오고 자문받아 마련한 것들이었다.

전화 한 통이면 주방장도 즉각 달려오게 되어 있었다.
중사는 그래봤자 대위가 맛본 세계 수준의 요리에는 한참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중사."
장안 읍내는 자그마해서 어디서든 십오 분만 직진하면 곧 경계선을 넘게 되어 있었다.
그 경계선을 넘어 본격적인 농촌 풍경이 전개되기 시작하자마자 대위는 물었다.

그 목소리에서 과거 지독히도 빠르게 사물과 사람,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던 때의
그 날카로움이 느껴져 중사는 움찔했다.

"일단 편히 쉬실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집? 내가 집에서 편히 쉴 거면 왜 여길 왔겠나. 당장 자네가 말했던 그 저수지로 차를 돌려."
"대위님.."
"당장 차 돌리라니까!"

백원저수지에는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위는 다음 날 도착하게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사는 다급하게 장낚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삼십여 분 뒤 장 낚시가 정 낚시를 태우고 달려왔다.
장 낚시의 차가 앞장을 서서 두 차량은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흙길을 삼십여 분
달린 끝에 장안 두 낚시가게의 주인이 공통으로 지목한 최고의 낚시 포인트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일행은 저수지로 계곡물이 유입되는 상류 부분에 차를 세우고 수풀이 무성한
후미진 골짜기를 따라 삼십여 미터를 내려갔다.
장 낚시가 여름에 잉어를 잡을 때 쓰는 그물줄이 길잡이 구실을 했고 그 줄을 따라
잡목을 더 헤치고 들어가자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가 나타났다.

백원저수지는 소의 창자처럼 길이 꼬불거려 입구를 찾을 수 없어도 일단 들기만 하면
소의 배처럼 아늑한 곳이라 아무리 큰 난리가 나도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다는
우복동천 (牛腹洞天) 계곡을 막아 만든 저수지였다.

계곡물이 유입되는 본류에서 살짝 벗어난 수면은 잔잔했고 물가에 잠긴 수초와 잡목이
완벽한 포인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장 낚시가 이따금 쓰는 여름용 텐트도 남아 있었다.

"아, 바로 여기구나."
대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감탄을 연발했다.
산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곧 해가 저수지 뒤의 우복산 너머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모자를 쓴 웬 낚시꾼이 하나 앉아 있었다.
"누구냐!"

덩달아 군기가 든 장 병장이 군대 시절 수하 (誰何)를 할 때처럼 소리쳤다.
모자챙이 뒤로 돌았다.
그러더니 곧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여."
그런 소리가 모자 아래서 난 것 같기도 했다.
장 병장은 다시 소리쳤다.


---------------------------------------- 5편에서 계속 읽어드리겠습니다.-----



묘사는 열심인데 참 속도는 안나가는 소설인 것 같네요.
거의 소설은 반정도 분량을 달려왔는데 이렇다할 사건이 아직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죠.

아무래도 대위가 무언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중사는 이용당하는 것일까요?

권력 앞에 한없이 무너져버리는 사람의 심리를 다룬 소설일까요?
아니면 어디에선가 피어나올 인간애를 다룬 글일까요?

아직은 전혀 감이 오지 않습니다..ㅠ.ㅠ
계속 읽어보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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