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바라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과 굵은 빗줄기뿐이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으나, 세상은 삽시간에 어둠으로 물들고 그 어둠을
가르며 마치 하늘이 찢어져 내리는 듯한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있는 실내 기온도 뚝 떨어져 갑자기 팔뚝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팔뚝의 맨살을 더듬었다.
어둠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의 소리가 너무 거세,
살이 아픈 느김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벌써 열흘 가까이 이어져오던 폭염을 씻어 내리는 반가운 소나기였지만,
소나기치고는 좀 지나치다 싶은 감이 있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쩌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들은 걷는다기 보다는 떠밀려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도, 승용차들은 와이퍼를 분주하게 움직이며
언덕 아래의 차도로 연신 방향을 틀고 있었다.
비 때문에 승용차들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우산을 쓴 연인들이나 마찬가지로 마치 거센 물결이 휩쓸려가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폭우가 아니라 세상이 두 조각이 나더라도, 지금 당장은 사랑을 나눠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 난데없는 어둠과 빗속을 헤엄쳐, 그들만의 밀폐된 공간을 찾아들고 있는 것이었다.
프런트에 나와 청승맞게 바깥을 내다보던 사장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장이 문밖을 내다보고 있던 한 시간 남짓,
언덕 아래의 2차선 도로로 들어서는 승용차는 열 대도 넘었지만 그중의 한 대도 다시
언덕길을 올라 모텔 알프스의 주차장 입구로 들어선 차는 없었다.
1년 전의 대대적인 개축에도 불구하고 그 1년 사이에 새로 들어선 고급 모텔들로 말미암아,
알프스는 개축 전이나 마찬가지로 그 지역 안에서는 가장 인상적이지 못한 여관이
되어버렸다.
비 내리는 날의 반짝 호황을 기대하듯,
사장은 비가 퍼붓기 시작하자마자 프런트에 나와 주차장 입구를 내다보았지만,
사실 사장은 지금 비어 있는 객실을 더 염려해야 할 형편이었다.
열흘 전, 장마의 마지막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듯이 한밤중의 폭우가 무지막지하던 날,
난데없이 객실에 비가 새는 소동이 일어났었다.
침대 위에 설치된 간접 조명등을 타고 빗방울이 툭툭 떨어져 내리다가
나중에는 쏟아붓는듯 했다.
그때 그 객실에 들었던 투숙객들은 중년의 남녀였는데,
그때까지 일을 채 치르지도 못했었던것인지 환불을 요구하는 남자의 얼굴이 사장을
때려 죽일 듯했다.
이튿날 새벽, 비가 무릎까지 들이찬 지하 세탁실에는 새끼 고양이들의 시체가 둥둥 떠 있었다.
폭우 속에 손님들이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이 일어나고,
빈 객실에 양동이 세숫대야가 군데군데 놓이고,
남자 직원들이 옥상에 올라가 방수천을 뒤집어씌우며 난리를 피우는 동안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그 구슬픈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새끼를 잃은 어미의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남자 직원들이 고양이 시체를 건져낼 때,
여전히 비가 내리는 창틀에서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엄청난 돈을 들여 대대적인 개축을 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장마철에 뒤통수를 맞아도
되게 맞은 사장은, 남자 직원들이 고양이 시체를 비닐 봉지에 담아낼 즈음에는 거의
기진맥진해 버린 듯했다.
지하 계단에 멍청히 서서,
직원들이 비켜갈 자리도 내주지 않은 채로 그는 다만 홀로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내 집에서 새끼를 내는 놈들도 있는데... 꼭 내 집이어야만 한다는 놈들도 있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어찌나 처량맞던지,
젊은 직원들은 늙은 사장이 혹시 그 고양이 새끼들을 땅에 묻어주라고 하지나 않을까
잠시 멈칫거리기까지 했지만, 사장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알프스가 문을 닫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사장은 건물 개축 등으로 인해 엄청난 은행 빚을 끌어 썼으나,
알프스의 경영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만 있었다.
알프스를 살리기 위한 사장의 안간힘은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그는 툭하면 새로운 경영 아이디어를 내놓곤 했는데,
그건 냉장고에 무료 음료수를 더 많이 넣어둔다든가,
좀더 획기적인 비디오들을 구비해 놓는다든가,
콘돔을 무료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여성 전용 세척기를 설치한다든가 하는 것에서부터
심지어는 객실마다 비싼 생화를 꽂아놓는 것에까지 이르렀다.
청소원들을 닦달하는 정도도 점점 더 심해졌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은 직접 객실을 돌아다니며 빈 객실의 청소 상태를 점검하곤 했는데,
욕조나 변기에 물기가 남아 있는가를 알아보기위해 손바닥으로 직접 변기를
문질러보는가 하면 시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까지 했다.
청소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평일에는 그래도 견딜만 했으나 인근의 다른 모텔들에는 더 이상 빈 객실이 없어서,
알프스까지 하루에 몇 회전씩을 돌아야 하는 주말 같은 경우,
휴지통을 비우고 시트를 갈고 욕실을 세제로 닦은 뒤 다시 마른걸레질을 해야 하는
객실 청소는 거의 전쟁처럼 치러졌다.
사장은 그런 운 좋은 날의 손님들을 모두 단골로 묶어놓겠다는 듯이 청소원들을
몰아치고 또 몰아쳤으나 스무 개의 객실이 절반 정도라도 차는 날은,
한 달을 통틀어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모텔 알프스는 신도시의 외곽에 위치했다.
예전에는 논과 밭뿐이던 벌판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그 아파트촌 주변으로 카페와 나이트클럽들이 들어서더니
어느 날 갑자기 우후죽순격으로 러브호텔들이 들어섰다.
모텔 알프스는 그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여관이었다.
다른 러브호텔들이 들어서기도 전, 카페와 나이트클럽들이 들어서기도 전,
신도시가 완전히 채 조성되기도 전부터 존재했던.
--------- 2편이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