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렛을 주겠다며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떠들썩하다.
느즈막히 기상한 나는 그런 세상의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와 만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다.
남자를 만나러 가긴 가는데, 나만의 남자는 아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인 카운터테너 요시카즈 메라.
160도 안될것 같은 너무나도 작은 키의 사나이가 무대에 나타났을때, 객석은 잠깐 술렁거렸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자 그는 더이상 작은 남자가 아닌 요정이 되어 있었다.
스피드 011 광고 음악으로 유명해진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中 <움브라마이푸> (그 어디에도 없을 나무 그늘이여)를 청아하게 부르던 그를..
존윌리암스의 <그린슬리브스>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승화시킨 그를.. 사티의 <난 그대를 원해요>를 너무나 우아하게 부르던 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카운터 테너 특성상 성량이 풍부하지도 않았으며, 대단한 기교가 있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노래에 푹 빠져서 한곡 한곡 심혈을 기울이던 진짜 가수의 모습이 그것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이 가수는 참으로 정성이 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어로 부르는 노래, 불어로 부르는 노래,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노래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놀랍도록 완벽하게 소화해내는것인가?
<아리랑><고향의 봄>을 2절까지 완벽한 발음으로 외워서 부르던 그 성의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공연하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제대로 된 문장으로 또박또박 이야기 하던 모습과 맞물려 보는이로 하여금 작은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문화의 개방으로 무대에서 일본어로 된 노래를 처음으로 부를 수 있었던 메라의 모노노케히메 (원령공주) 주제가도 마음에 와 닿았다.
공연이 끝나고 팬 사인회에 줄을 서서 사인을 받으면서 "너무 감동했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하며 내게 "악수해요~"라고 청하던 그 소년같은 이미지의 카운터 테너에게 인간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가지 바랄점이 있다면 좀 더 유려하고 확고한 기량을 키워줄 것을 당부하는 마음이고, 바흐의 칸타타에서도 좋은 아리아를 다음 공연에는 프로그램 사이에 넣어주십사하는 것!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러 역삼동으로 향했다~!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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