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탁 위의 책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
정은지 지음 / 앨리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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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먹는 밥이 더 좋다. 왜냐하면 더 탐욕스럽게, 온전히 먹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래서 혼자 먹는다. 어떤 날은 배 속에 마늘을 가득 채워 통째로 구운 닭에 서늘한 맥주를, 어떤 날은 비계가 매콤하게 녹아드는 돼지 불고기에 밥 많이, 또 어떤 날은 생크림을 듬뿍 넣고 무쇠 팬에 구운 스콘에 싸구려 찻잎으로 독하게 끓인 마살라차이를. 나는 설거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모은 그릇들을 마음껏 늘어놓고 나 혼자만을 위한 상을 차린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서가로 간다.

 

식탁 위의 책들. 이 은밀한 쾌락을 완성하는 책은 정해져 있다. 낯선 손님은 나의 식탁에 초대받지 못한다. 수십 번도 아닌 수백 번 읽어서 이미 외운 지 오래인 책들만 올라오고, 책장이 저절로 펼쳐질 정도로 같은 곳만 계속 본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쾌락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먹는 이야기에 집착했다. 주인공이야 왕위를 빼앗기건 해적에게 납치당하건 배가 난파해 무인도에 떠내려가건 내버려두고, 그들이 뇌조를 굽거나 알뿌리를 캐는 장면에만 심취했다. 오랫동안 굶주리다 간신히 발견한 굴 껍질에 칼을 밀어 넣고 억지로 비튼다. 입을 바싹대고 욕심 사납게 빨아들인다. 턱으로 흘러내리는 비릿한 냄새를 나는 맡을 수 있었다. 『죽음의 무도』에서 스티븐 킹은 말했다. 자신이 호러에 탐닉하는 것은 상상력 때문이라고. 내가 먹는 장면만, 오직 먹는 장면만 보고 또 본 이유는 그거였다. 그림이 아니라 글이기에 그 힘은 오히려 강했다. 단호히 말하지만 세상에 아직 못 먹은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은 없다. 나는 상상하고, 상상하고, 상상했다. -p, 6, 7 (작가의 말 '나는 푸드 포르노 중독자였다' 中)

 

 

 

 

 

 

 

 

 

먼저 이 책은 다이어트 중이라면 읽기를 잠시 미뤄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이유인즉슨,

 

어제 저녁 10시 쯤, 하루종일 먹은 건 커피 몇 잔과 초코파이 하나.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엄마가 퇴근하며 사온 빵을 무의식적으로 먹다가 '하루종일 제대로 끼니를 안챙겼으니까 라면이라도 끓여먹을까?' 생각이 들어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 시간에 한 개를 다 먹으면 살찐다며 엄마는 반 개를 끓여주었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러다 문득 얼마 전 빌려왔던 <내 식탁 위의 책들>이라는 이 책이 생각나서 식탁으로 들고왔는데 이 책을 읽느라 라면이 불어 반 개였지만 한 개 같은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어? 그럼 다이어트에 좋은 거 아닌가? 싶을텐데, 이 책은 먹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분이 쓴 책이라 여러 음식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상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며, '그래, 이런 먹는 기쁨을 뒤로 미룰 순 없어!' 라며 음식에 관대해져버린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다이어트에 실패할 것이라고 100%...아니 90% 장담한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한데, 음식을 다루는 텍스트를 좋아해서 책읽기를 하고 그 음식에 대해, 그 음식을 먹는 장면, 의미, 그 음식이 등장하는 책, 그 책의 작가에 대해 쓴 글은 처음 접해본터라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신기해하며 이 책을 뇌로 먹어버렸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기내식에 대한 글을 쓰고,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죽(그루얼)에 대한 글을 쓰며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계란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기내식에 대한 글을 쓰며 여행을 꿈꾸고, 기내식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죽에 대한 글을 쓰며 탄수화물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이리튀고 저리튀는 글을 쓴다. 그 글을 따라가며 읽고있자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책의 멋진 점을 또 하나 발견했다. 한 권의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그렇게 다양하게 읽어지고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떠서 빈 속으로 이 책을 읽다가 포스팅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벌써 저녁먹을 시간이 다가온다니, 하루 두 끼를 놓쳤다. 저녁엔 놓친 두 끼에 대한 보상으로 더 맛있는 걸 먹어야지.

 

 

 

 

1978년 4월 1일, 하루키는 진구 구장 외야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혼자 야구를 보고 있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데이브 힐튼이 2루타를 때린 순간,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일 영업이 끝나면 글을 썼고, 7개월 후 완성했다. 그 소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데뷔작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탔지만 가게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년이나 가게를 운영하며 밤에만 글을 썼고, 가게를 그만둔 후에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으로 출근하고 퇴근했다. 소설 쓰기는 어디까지나 일상의 일부지, 일상을 팽개치고 매달려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 20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낚인 사람 클럽'_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우리는 왜 기내식에 매혹될까. 나를 홀리는 것은 여행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대다. 왜냐하면 환상은 언제나 현실보다 우월하며, 기만은 필연적으로 진실보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비행기에서 싸구려 쟁반을 받아 들고 플라스틱 뚜껑을 여는 순간이다. 사각 쟁반 위에 우주가, 자기 완결적 세계가 있다. 기내식은 여행의 완벽한 축도인 동시에 여행자의 만다라다. 빼곡하게 들어찬 플라스틱 용기들은 무의식적인 여행 자아의 상징이고, 우리의 완전한 집중을 이끌어낸다. -p, 32, 33 ('사각 쟁반 위의 만다라'_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하지만 감자의 원한일까, 그의 재촉은 결국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감자를 깎게 시켜 놓고 츠바켈만이 집을 비운 사이 카스페를은 그가 가둬 둔 요정 아마릴리스를 구해준다. 요정의 마법으로 사악한 마법사는 바닥 없는 웅덩이에 가라앉고, 마법의 성은 무너져 내린다. 덩달아 호첸플로츠도 체포되고, 무사히 돌아온 아이들을 위해 할머니는 케이크를 굽는다.

 

자신의 감자 한풀이가 이런 식으로 귀결될지 츠바켈만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미리 알았던들 어쩔 텐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식탐이란 그런 것이다.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라면 물을 올리는 것은 아침에 얼굴이 부을 줄 몰라서가 아니다. 치킨에 맥주를 들이붓고도 기어이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는 것은 아무리 배를 쓸어 담아도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니다. 다 안다. 그래도 못 참는다. 불가능하다. -p, 120-122 ('식탐으로 굴러가는 평온한 세상'_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호첸플로츠 다시 나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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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없으면 어때? - 모바일기기 의존 누리과정 유아 인성동화 4
이민경 글, 배현주 그림, 최혜영 감수 / 소담주니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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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핸드폰을 만져본 건 중학생 때.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아니라 소위 말하는 2G 폰이었는데요.

그때 할 수 있는건 문자랑 전화 뿐. 그래서 그 때 제일 인기있던 요금제가 문자무제한 요금제였어요.

 

10년 정도 지난 지금, 그때와 시대가 너무나 많이 달라져버렸죠.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도 손에 스마트폰을 꼭 쥐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요.

 

 

 

 



 
 
 
 
물론 시대에 맞게 뒤쳐지지 않고 지내는 게 중요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접하는 연령대가 영유아기로 점점 낮아져서 많은 우려가 된다고 해요.
 
 
 




 
 
소담주니어에서 나온 이 책 <스마트폰 없으면 어때?>는 '소년한국우수어린이도서'로 지정되었을 만큼 인정받은 책인데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만한 책이랍니다.
 
 




 
 
 
스마트폰을 어린 나이부터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눈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
그 때문에 요즘은 어린 나이에도 눈이 나빠져서 안과를 찾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하니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주의를 주어야겠죠?
 
 
 






 
 
 
 
이 책에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점을 꼬집고 있기도 해요.
 
요즘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프로에서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위해 노력해주신다면 더 좋겠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을 위한 책!
<스마트폰 없으면 어때?> 추천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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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스칠 때 - 정바비 산문집
정바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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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의 내가 미래에 관해서만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에 물음표 모양의 묵직한 닻들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 무수한 물음표 중 일부는 덧셈이 되어 무언가를 데려오고 어떤 것은 뺄셈이 되어 뭔가를 덜어간다. 돌아오지 않는 물음표도 많다. -p, 256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라는 음악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던 때가 있었다.

 

만약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 내 맘을 무너뜨렸어. 어쩜 우린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렇지 않니?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우습지만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도 많이 하게 돼.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라는 가사 속에는 가사 그대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이별한 사람만이 느껴본 감정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만남을 가질 때, 나처럼 이별은 생각하지 않고 만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너무나 많은 시간만을 남겨준다. 그렇게 많아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둘이 아닌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려고 활동적인 사람이 되어본다. 안만나던 친구들도 만나보고, 안하던 공부를 하러 학원을 다녀보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참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상대방을 잊기 위해 억지로 바빠짐을 겪으려 하는 행위이다.

 

 

 




 

 

 

이별을 겪지 못한 사람은 '그냥 잊으면 되는거 아니야? 똥 밟았다고 생각해!' 라는 식으로 말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별을 겪게 되면 가사 그대로 가끔은 상대를 용서하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기가막힌 가사를 쓰는 사람들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길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래를 만들 수 있는걸까 하고 매번 궁금해했었기 때문인지 가을방학의 작사·작곡을 하고 있는 정바비님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산문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는 언니네 이발관, 줄리아 하트, 바비빌 로도 활동했었다.)

 

내가 대학생 서포터즈로 활동을 하고 있는 RHK에서 이 책이 출판되게 되어서 출판되기 전에 모니터링에 참여해 원고를 미리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간다. (원고로 볼 때도 글이 좋았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 기대는 안했는데 책으로 나오니 확실하게 이건 대박이다! 생각이 들었다.)   

 

 

 







 

 

 

 

가을방학의 정바비를 생각하면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를 법한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에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은밀한 성적인 주제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나도 모르게 이 책에 있는 대부분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정말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게 습관화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한 문장 한 문장이 자연스레 스치면서 와닿았다는 건 더 놀라웠다.

 

내가 들으면서 그토록 공감하던 노래를 만든 정바비님..은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사실.) 이런 생각을 해오고 이런 글을 적어왔구나,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영화를 보고 이런 음악을 들었구나 하며 정바비의 세계를 정말 대놓고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많이 늦었다. 12시에 꼭 자겠다던 내 다짐은 작심하루로 끝난 듯 하고, 이왕 이렇게 늦은거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가을방학 노래를 듣다 잠들어야겠다. 행복하다.

 

 

 

 

<이 숙녀분은 그야말로 여성을 대표할 만하군 中>

 

연애에는 희한한 측면이 있다.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 당신이 일종의 대표선수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 남자는 남성 대표가 되고 여자는 여성 대표가 된다.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이 어이없고 거슬릴 때마다 여자는 남자라는 성별 전체를 향한 강한 혐오와 불신을 느낄 것이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나서 선배에게 상담할 때 그녀들은 흔히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럴 수가 있어요? 남자들은 원래 그래요?'라고 하소연한다. 잘못은 한 사람이 했는데 30억 남자들의 신용등급이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의 연애상대는 자신의 성을 대표하기 위해 그 어떤 공인기관의 인증도 거친 적이 없다. 독점적 · 배타적 연락권과 신체 접촉의 핫라인을 획득할 때 어떤 선거도 치러지지 않았다. 성염색체의 이 신성한 외교사절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며 그(녀)를 성별의 대사직에 앉힌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p, 21, 22

 

 

<결혼에 있어서의 합리주의 中>

 

나의 지난 모든 관계가 실패했는데 이 사람과는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내가 여성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포지셔닝은 염세주의와 회의주의 사이의 어딘가다. '어차피 이 여자애랑도 잘 안될 거야, 그러니까 같이 있는 동안이라도 잘 해주고 좋은 시간을 보내자.' 이게 내가 생각하는 로맨틱함이다. 그러니까 이 로맨틱함과 합리주의는 적어도 내게는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합리주의와 로맨틱한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10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10년 후의 나는 지금보다 덜 로맨틱한 사람일 거야. 그렇다면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결혼하고 싶어. 이게 나의 합리주의야."

 

솔직히 말해서 근래 들었던 말 중 가장 로맨틱한 얘기였다. -p, 48, 49

 

 

<불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싶다 中>

 

나는 불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싶다. 하루에 한 번씩 들러서 청결 상태와 알바생의 근무태도를 점검하는 일은 나의 기쁨이리라. 내가 들어왔는데 큰 소리로 '어서오세요!'라고 외치거나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따위 인사성 투철한 알바생에게는 혹독한 감봉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매대 사이가 너무 넓어서 다니기 쾌적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쓸 것이다. 초코칩 박스를 뒤져서 가장 먼지가 많이 쌓인 녀석을 찾아내 맨 앞줄로 빼낼 것이다. 단골손님인 것처럼 가장해 다른 손님이 상품을 고르는 내내 근처에서 가게 욕을 해대는 것도 즐겁겠지.

 

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편의점'이란 게 하나 정도 있다 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 같다. -p, 98, 99

 

 

<농담을 사랑한 소년 中>

 

애당초 가정통신문을 쓰는 사람이 담임선생님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 점에 생각이 미치고서 나는 무릎을 쳤다. 왜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들의 생생한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 걸까? 1년간의 생활상을 단 몇 줄로 그려내는 가정통신문의 의견란.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가 이만큼 압축적일까? 여기에 내 급우들의 시선도 들어갔더라면 내 지배적인 이미지는 '주의 산만'보다는 '유머 만발'에 가까웠을 것이다. -p, 101

 

 

<좋은 택시기사 中>

 

가족이나 손에 꼽을 수 있는 친지를 제외하면 우리는 한정된 시간 동안 정해진 한두 가지의 역할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역할로조차 만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모여 '세상'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추상이 된다. 나는 더 이상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한 투표가 그 일과 관계가 있는 일이었는지도 이제 와서는 잘 모르겠다. 대신 '좋은 나'가 어떤 건지는 스스로는 좀 알고 있을 거라 희망한다. 나는 좋은 나로 살고, 나머지는 내가 책임지거나 지지할 필요가 없는 어떤 이치에 맡길 수 밖에 없겠지. -p, 172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中>

 

어린 시절의 내가 미래에 관해서만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에 물음표 모양의 묵직한 닻들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 무수한 물음표 중 일부는 덧셈이 되어 무언가를 데려오고 어떤 것은 뺄셈이 되어 뭔가를 덜어간다. 돌아오지 않는 물음표도 많다. -p, 256

 

 

<길 위에서 키득거리다 中>

 

그렇다. 여행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자유다. 그 커다란 과실을 가능한 한 제대로 음미하기 위한 3가지 선결 조건을 들어본다. 우선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하며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면 더 좋다. 다음으로는 할 일이 없어야 한다. 업무관련 전화나 써야 할 원고를 떠안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꼭 일이 아니어도 여행 중 꼭 하고 싶은 것 따위가 있는 것도 좋지 않다.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 정도는 보고 가겠노라는 쓰잘 데 없는 의무감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규장각 도서 반환만큼이나 한불관계 정상화에 있어 시급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최소한의 금전적인 여유다. 적어도 배낭을 넣어둘 락커 이용료 때문에 고민할 정도는 넘어서야 한다. -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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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을 보여 주세요! - 동화로 읽는 어린이 인권
서지원 지음, 윤세정 그림, 국제앰네스티 감수 / 소담주니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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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쇼파에 다시 누워 티비를 보는게 일상이 됐다.
 
이 날도 여전히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좋은 아침' 이었던가, 한 아침프로에서 아프리카에 故 박용하가 지은 '요나 스쿨'에 대해 방송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차드 공화국이라는 곳. 어찌나 빈곤한지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 故 박용하가 건립한 희망 스쿨이 바로 '요나 스쿨'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2010년 개교를 했다고 하고 올해에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우리는 당연히 태어나서 좀 자라면 유치원에 가고 8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가고 14살에 중학교, 17살에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난 이것마저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꾀병을 부렸던 생각이 난다) 아프리카에서는 펜 한자루 잡아보는 게 소원인 아이들이 있다.
 
순간 쇼파에 편히 드러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지더라.
 
 
 



 
 
 
많은 가난한 나라들은 인구의 절반이 18세 미만의 아이들이지요.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힘든 일을 시킵니다. 세계에서 심각한 차별과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1억 7천1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세계 어린이들은 20억 명이 넘습니다. 이 중에서 절반인 10억 명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6억 명은 집과 화장실이 없이 생활하고, 4억 명은 깨끗한 물을 마시질 못하며, 2억 명은 아파도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1억 명은 영양실조에 걸렸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디에서는 10초에 1명꼴로 굶주림과 질병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진짜 모습이랍니다. 
 
- 작가의 말 中
 
 
우리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을 바라고 또 바라고 있는 아이들이 이 지구에 얼마나 많은지, 이런 어린이 인권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도록 동화책으로 나와 있는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기 때문에 가감된 내용이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실상을 잘 알 수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동화책으로라도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전 세계의 많은 아이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이 아이들은 큰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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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소울 - 꽃의 사진과 여자에 관한 매혹적인 기록
김중만 사진, 서영아 글 / 김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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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점점 궤도에서 벗어나는가, 궤도 속으로 들어서는가

나는 점점 행복해지는가, 행복한 척하는가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연민하는가

나는 점점 늙어가는가, 충만해지는가 -p, 102

 

 

 

 



 

 

 

 

 

처음으로 이별을 겪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깊은 속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었지만 내 연애를 옆에서 지켜봐왔던 친구가 '세은이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가지고왔어. 내가 읽어보고 괜찮아서 절판된거 어렵게 구한거야!' 라면서 이 책 <네이키드 소울>을 빌려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을 하겠지만, 자신이 아끼던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 마음을 알고 책을 받았음에도 당시에는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1년 가까운 시간동안 내 책장에 조용히 꽂혀있던 이 책. 친구는 당시 내가 이별 때문에 굉장히 힘들것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빌려주었던것이온데 나는 당시 조금씩 혼자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져있던 터라 괜시리 나를 차분하게 돌아봐야 하는 이 책은 많이 읽어봐야 3장을 넘기지 못했었다.

 

 

 

 




 
 
 
 
요즘은 내 삶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는 터라 <네이키드 소울> 이 다시 눈에 들어왔나보다. 꽃 사진 하나에 글 하나, 많으면 두개. 베개 옆에 두고 잠이 오지 않을때마다 누워서 조금씩 읽다보니 어느새 이 책엔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있었다.
 
 
 









 
 
 
여러 서평단 활동을 하다보니 내가 꼭 필요해서 읽는 책보다 읽어야하는 책이어서 억지로 읽는 책들이 많아졌더랬다. 책상 위, 쇼파 위, 베개 옆, 가방 속, 식탁 위, 책장 심지어 아직 풀지 않은 택배상자 안에 있는 책들을 쭉 돌아보면서 문득 내가 서점에 가서 나한테 필요한 책을 골라보던 때가 언제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을 책장에 다 꽂아두고 훑어보았더니 내가 내 손으로 고른 책은 몇 없더라.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여기저기 티내며 다녔더니 '나 요새 책 읽고싶은데 책 좀 추천해줘.', '나 요즘 힘든데 책 좀 추천해줘.', '요즘 내가 읽었으면 하는 책 좀 추천해줘.' 라는 요구를 수없이 듣게 된다. 그 사람의 취향, 성격, 환경, 기분에 따라 책을 골라주는 '북 소믈리에'로 살면 참 좋겠다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런 요구들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정작 나에겐 필요한 책을 골라주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슬퍼졌다. 이 책이 나에게 처음 왔을 땐 무용지물이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지 생각하면 책이란 건 정말 내 상황에 맞게 필요한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도 또 느낀다.
 
 
 










 

 

 

 

<네이키드 소울>에 대한 평을 보면 어떤 이들은 그림이 좋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글이 좋았다고 한다. 아무렴 어떤가, 책이란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부분이 각기 다 다른 것을.

(개인적으로 나는 글이 참 좋았지만, 어떤 이는 이 책의 글쓴이를 잘못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도 보았다.)

 

나일수도 있고, 당신일수도 있고, 당신의 여자 형제, 여자친구, 아내, 엄마일 수도 있는 '여자'들에 대한. 여자를 위한 책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여자들에게 조심스레 이 책을 건네보자.

 

 

 

 

 



 

 

 

 

그리고 요즘, 여러 곳에서 받은 책들을 책꽂이에 무작위로 꽂아놓고 내가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서점에서 책을 고르듯이 골라읽고 있다. 역시 책은 읽는 순간도 좋지만 읽기 전, 책을 고르는 그 순간도 정말 좋다!!

 

 

 

 

 

보이는 것,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 보이는 것 저편을 바라본다. 꽃의 저편. 지금의 저편. 거기에 냄새가 있고, 감촉이 있고, 맛이 있다. 불현듯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쿵― 내려앉는 소리가 있다. 가슴속의 북소리처럼. 누구나 '먼 것'이 있어야 살아간다. 먼 것. 지향하는 것. 물질이 아닌 개념. 현실이 아닌 이상. 의무가 아닌 즐거움.

보이는 것으로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예감처럼 그 희망과 만나게 된다. -p, 14

 

 

세상의 벽에 부딪힌다. 맹렬히 비난한다. 작은 일에 분노한다. 작은 자존심의 상처에도 영혼이 떨린다. 되레 큰일에는 수줍어할 뿐이다. 때로는 귀찮아하며 자신을 유기한다. 무책임하게 예민하고 지나치게 낙천적인 이 두 가지 인생관. 나는 이제 나를 알아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객간화시킬 수 있다는 것. 나는 오늘, 내 아픈 단점을 기록해둔다. 종이에 적힌 순간,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절반의 성공. -p, 22

 

 

봄이 오면 꽃이 예뻐서 쓸쓸하다던 그녀의 말……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다. 바다를 보면 여전히 설레고 들꽃이 피면 눈을 떼지 못하던 당신. 아직도 설레는 가슴을 꼭꼭 숨겨둔 채 살았던, 어머니는 여자였다. 사랑이 많은 여자. 돌보지 않아도 될 구석구석까지 닦아내고 어루만지는 사람. 가끔 혼자 외로웠던 사람. 자유롭고 싶었지만, 자유라는 말조차 낯설어하는 사람. 어쩌면 고맙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을 한번쯤 듣고 싶었던 사람. 어여쁜 당신, 어머니는…… 여자였다. -p, 34

 

 

딸에게 미리 쓰는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

 

아무것도 아니란다, 얘야. 그냥 사랑이란다. 사랑은 원래 달고 쓰라리고 떨리고 화끈거리는 봄밤의 꿈 같은 것. 그냥, 인정해버려라. 그 사랑이 피었다가 지금, 지고 있다고…… 그 사람의 눈빛,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작은 몸짓…… 거기에 삶의 찬란한 의미를 걸어두었던 너의 붉고 상기된 얼굴. 이제 문득 그 손을 놓아야 할 때, 너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 봄밤의 꽃잎이 흩날리듯 사랑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데, 니 마음은 길을 잃겠지.

그냥, 떨어지는 꽃잎을 맞고 서있거라. 별수 없단다. 소나기처럼 꽃잎이 다 떨어지고나면, 삼 일쯤 밥을 삼킬 수도 없겠지, 웃어도 눈물이 배어 나오겠지. 세상의 모든 거리, 세상의 모든 음식, 세상의 모든 단어가 그 사람과 이어지겠지. 하지만 얘야, 심한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야 비로소 풍경이 된단다. 그곳에서 니가 걸어나올 수 있단다. 시간의 힘을 빌리고 나면 사랑한 날의, 이별한 날의 풍경만 떠오르겠지. 사람은 그립지 않고 그날의 하늘과 그날의 공기, 그날의 꽃향기만 니 가슴에 남을 거야.

그러니 사랑한 만큼 남김없이 아파해라. 그게 사랑에 대한 예의란다. 비겁하게 피하지마라. 사랑했음에 변명을 만들지 마라. 그냥, 한 시절이 가고 너는 또 한 시절을 맞을 뿐.

사랑함에 순수했으니 너는 아름답고 너는 자랑스럽다. -p, 37

 

 

사랑의 가장 찬란한 순간  쉽게 잊혀질 것이다. 때로는 미워지고 더러는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가장 아름다운 날의 어느 한 순간이 저장되어 있다. 사랑이 흔들릴 때마다 꺼내서 볼 것이다. 당신과 내가 이토록 아름다웠던 날의 바닷가. 매일 웃음이 나오던 들뜬 마음. 그 절정의 순간.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그 순간, 당신의 마음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당신 앞에 오게 한 운명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그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의 오랜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p, 39

 

 

머리 속에 희망의 시나리오는 넘쳐난다. 가까운 미래에 조금 더 그 시나리오에 다가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가슴에 간직한 것을 자주 일깨워주지 않으면 꿈은 그저 꿈일 뿐. 구체적일수록, 행동할수록 꿈은 현실에 가까워진다. 희망 시나리오의 법칙.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라. 끊임없이 나를 확장시켜라. 그리고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p, 48

 

 

행복의 다짐

 

조금 느리게 사는 나

그래도 다급해하지 않을 용기를 가진 나

다정하고 겸손한 사람들의 친구인 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나

친구의 비밀을 가슴에 묻을 수 있는 나

화려한 겉모습보다 따뜻한 내면의 자부심을 가진 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소박한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나

걱정 없이 쉽게 잠들 수 있는 나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일 수 있는 나

예민해지는 순간 한발 물러설 줄 아는 나

자유롭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할 줄 아는 나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나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나

그런 나…… 그런 당신 -p, 50

 

 

깊이를 획득한 단순함은 아름답다. -p, 52

 

 

나는 점점 궤도에서 벗어나는가, 궤도 속으로 들어서는가

나는 점점 행복해지는가, 행복한 척하는가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연민하는가

나는 점점 늙어가는가, 충만해지는가 -p, 102

 

 

사랑이란 감정에 전부를 걸지 마라. 내 속에 그 사람이 그득히 들어차서 나는 점점 몸을 웅크려야 한다. 나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작아지면 나의 자존도 스스로 몸을 낮춘다. 나의 우주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랑만이 전부여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나는 미치도록 행복하지만, 사랑만이 전부여서 깃털처럼 연약한 나는 미치도록 불안할 것이다. 하루는 행복하고 또 하루는 불행할 것이다. 하루는 삶의 전부를 얻은 듯 의기양양하다가 또 하루는 삶의 남루한 끝을 본 듯 쓸쓸할 것이다. 그리움에 목이 마르고 의심하고 증오하고 화해하고 안도하면서…… 그를 제외한 다른 어떤 것에도 눈과 귀를 막을지도 모른다. 그의 전화나 그의 웃음이나 그의 말을 되새김 하는 데 하루를 보내고 그의 눈빛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이별이 왔을 때 견딜 수 없는 공허가 찾아든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하는 동안 내 속에 나를 밀어내고 그를 가득 채워왔기 때문이다. 내가 밟고 있던 땅과 풍경이, 하늘과 사람이 모두 그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이유가 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또다시 사랑이 온다면 나는 또 침몰할 것이다. 내 속에 그 사람이 그득히 들어차 내 작은 배가 기우뚱할 것이다. 그의 바다에 기꺼이 잠길 것이다.

사랑이란 어떠한 충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운명이므로. -p, 126

 

 

이제 너를 봐도 가슴이 설레지 않지. 이제 너 때문에 목놓아 울지 않지. 이제 밤새 너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지. 이제 너에 관한 기록을 멈추었지. 이제 가끔, 거짓말도 하지. 이제…… 내가 변했지. 참, 쓸쓸한 발견. -p, 139

 

 

당신이 나를 사랑하던 날의 편지를 읽는다. 내가 아직 당신의 마음속에 있던 날의 일기를 읽는다. 늘 웃던 사람과 조금은 들뜨던 나는 기억 속에 잘 있는가. 우리가 걸었던 길도 아직 그대로인가. 한 치 앞도 모르고 행복했던 그날의 약속도 무사한가. 기억 속에…… 우리가 버린 그 기억 속에 그들은 여전히 행복한가. 변치 않았는가. -p, 162

 

 

 

슬픔도 사치더라. 하루하루 지구별에 발자국을 꼭꼭 찍어 흔적을 남겨야 하기에, 하늘 끝에서 새벽빛이 번지면 집집마다 불 켜는 소리. 옷 입는 소리.

누군가는 밥을 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누군가는 지하철을 타고, 컴퓨터를 켜고, 또 누군가는 계단을 오른다.

우리는 누구나 작은 상점을 하나씩 내고 있다. 그 작은 상점에서 주부로 살거나, 학생으로 살거나, 미스 박으로 살거나, 이과장으로 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이름을 알리거나 들꽃처럼 묻혀 살거나…… 세상을 향해 작은 창을 내고 매일 그곳에서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낸다.

그 작은 상점에서는 사람마다 만들어내는 삶의 향기가 난다. 핸드메이드 쿠키 같은 쵸콜릿향도, 따끈한 우동 냄새도, 달콤짭짜름한 팝콘 냄새도 난다. 사람마다, 상점마다 사연도 추억도 특색이 있다.

그들 모두 비슷하게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사랑한다. 때로는 지나가는 바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지나가는 세월에 인생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며 세월에 묻혀 흐른다.

오늘 나의 상점은 고요하다. 평화로운 시간, 커피를 끓이고 책을 읽는다. 풍경처럼 지나는 세월, 천천히 구경한다. 날마다 이것이 삶. 조금 나른하고 심심한 일상. 그러나 누군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간밤에 산더미 같던 영혼의 무게, 서랍 속에 넣어두고 세상으로 나있는 유리창을 닦고 부지런히 미소를 짓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오늘 친구가 된다. 지나가는 달빛이 나의 작은 상점을 아름답게 비춘다. 운이 좋다면, 더 아름다운 운명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

바쁜 사람들에게 슬픔은 이내 지나쳐버린다. 아침이 투명해지면 상점의 문을 열고, 노을이 지면 상점의 문을 닫는다. 이것이 삶이다. 늘 비슷하지만 조금씩 내 꿈이 저축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p, 174

 

 

시작은 언제나 나로부터 출발한다. -p,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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