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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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에 이들 모두가 한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목소리의 진동을 전송한다는 아이디어를 탐색했다는 것에는 별로 논란이 없었다. 하지만 벨과 토머스 왓슨이 분리된 두 개의 방에서 나누었던 첫 번째 전화 대화에는 이런 단어들이 쓰였다. "여기로 와. 보고 싶어."

그 이후 무수한 전화 통화에서 그 말이 쓰였다. "여기로 와. 보고 싶어." 안달하는 연인들. 멀리 떨어진 친구들. 손자들과 대화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전화 속의 목소리는 유혹이었다. 식욕을 돋우지만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는 빵 조각 같은. '여기로 와. 보고 싶어.' -p, 38, 39

 

 

 

 

 

 

 

 

 

 

 

 

이 책을 읽는 동안 엄마랑 크게 싸우고 화해를 했고, 내 동생은 여전히 엄마 속을 썩이는 중이다. 동생한테 "너 그러다 나중에 엄청 후회해. 지금 잘해드려." 라고 말을 하지만 나도 아직 엄마랑 투닥투닥하는 애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도피처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선택한, 혹은 어쩔 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 때문에 잃고 남겨진 사람의 아픔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더 잘해줄 수 있을을텐데..', '못 해준 말들이 아직 많은데..'

 

이 바람을 소설에서라도 이루어주고 싶었던걸까. 《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에서 등장하는 콜드워터라는 작은 마을에 죽은 언니로부터, 죽은 엄마로부터, 죽은 아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친구에게 '하도 천국 천국 예수님 하느님 거려서 짜증이 날 정도야.' 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이건 너무 종교적인 책인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이 책을 처음 접한 그 순간부터 거의 끝무렵까지 천국이라는 단어를 지겹게 볼 수 있었다. 외워버릴 정도로 등장하는 "얘야.. 천국은..." 이라는 문장들. 덕분에 중고등학생 필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거의 읽었을 법한 책인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을 썼던 작가 미치 앨봄이어서 그런지 그 기대가 너무 컸던건가, 실망이 크다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건가.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결말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종교에 너무 매달리는 걸 싫어하는 터라 그냥 가벼이 여기고 있는데,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옮긴이의 말>에서 '나도 처음에는 믿기 싫었지만 나중에는 믿고 싶어졌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주는 전화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정말 가슴이 따뜻해졌으니까.' 라고 쓰여있었던 것과 같았다. 천국에서 걸려 온 전화라니,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혀를 끌끌 찰 내용이었지만 (물론 나도 읽으면서 불만이 많았지만) 희망을 가진다는 건 나쁜 게 아니니까 그것만으로도 용서가 되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애틋해지고, 소중해지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

 

'아르테' 처음 본 출판사 이름이라 궁금해하실 분들도 계실 듯 한데, 북이십일 출판사의 새로운 문학 브랜드라고 한다. 요즘은 이렇게 한 출판사에서 장르에 다라 여러 브랜드를 내놓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남의 인사를 나눌 시간도, 작별의 인사를 나눌 시간도 있다. 그래서 물건들을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들을 다시 파내는 것은 그렇지 않다. -p, 216

라는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느느데, 혹시 읽으신 분들 중에서 저 문장을 설명해주실 분이 있다면.....................부탁드려요..

 

 

 

 

소식은 전화로 전해진다. 아기의 탄생, 커플의 약혼, 늦은 밤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좋든 나쁘든 인간의 여정에서 중요한 사건은 대부분 따르릉 소리로 전조를 드러낸다. -p, 22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인생은 보드게임이 아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결코 '다시 시작 할 수 없다'. 단지 그 사람 '없이 계속' 살아갈 뿐이다. -p, 27

 

 

19세기 중반에 이들 모두가 한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목소리의 진동을 전송한다는 아이디어를 탐색했다는 것에는 별로 논란이 없었다. 하지만 벨과 토머스 왓슨이 분리된 두 개의 방에서 나누었던 첫 번째 전화 대화에는 이런 단어들이 쓰였다. "여기로 와. 보고 싶어."

그 이후 무수한 전화 통화에서 그 말이 쓰였다. "여기로 와. 보고 싶어." 안달하는 연인들. 멀리 떨어진 친구들. 손자들과 대화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전화 속의 목소리는 유혹이었다. 식욕을 돋우지만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는 빵 조각 같은. '여기로 와. 보고 싶어.' -p, 38, 39

 

 

때로 삶이 둘을 갈라놓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랑이 둘을 하나로 묶어준다. -p, 184

 

 

모든 인생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당신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 -p, 203

 

 

만남의 인사를 나눌 시간도, 작별의 인사를 나눌 시간도 있다. 그래서 물건들을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들을 다시 파내는 것은 그렇지 않다. -p, 216

 

 

우리는 종종 우리와 가장 가까운 목소리를 밀어낸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면 우리는 그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p, 231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안겨주던 감정이 가장 그리워지는 법이다. -p, 269

 

 

욕망이 우리의 반경을 정하지만 현실이 우리의 항로를 이끌어간다. -p, 356

 

 

삶에서 사랑이 뚫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던 메이벌 허바드는 알렉산더 벨에게 결혼 선물로 피아노를 주고 매일 그녀를 위해 연주해달라고 했다. 마치 그의 음악이 그녀의 고요를 깨뜨려줄 것처럼. 수십 년 후에 벨의 임종 자리에서 그의 아내는 "나를 떠나지 말아요"라고 소리내서 말했고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던 벨은 수화로 "떠나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삶에서 사랑이 뚫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 -p,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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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개정판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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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즐라타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그녀를 모범 삼아 글짓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즐라타처럼 자신이 쓴 일기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는 즐라타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 중에 일기만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이었고, 일기 덕분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글쓰기가 끔찍한 환경과 개인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거라고 덧붙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락방에 숨어 지내거나 지하실에서 폭격을 피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거리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그에 못지않게 무섭고 고통스럽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우리 반이 유일한 안전지대다. 교실은 난무하는 폭력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다. 교실만 벗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많은 아이가 항상 불안에 떨고 계속 뒤를 돌아보며 생활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보통 숙제를 하느라 저녁 일곱 시에서 여덟 시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늦은 시간이면 꼭 퇴근하는 길에 아이들을 태워서 집에 보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때로는 나도 무서운 순간들을 겪는다. 아이들 앞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번은 마약장수가 내 차에 와서 마약을 팔려고 한 적도 있다. 독한 술을 마시거나 주사위 놀이를 하며 죽치고 있는 갱스터도 숱하게 보았다. 아이들은 최근에 사람이 죽은 자리임을 가리키는 임시 제단을 쉽게 찾아낸다. 보통 핏자국이 남은 콘크리트 위에 놓인 꽃과 양초가 그것이다.

 

(…)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책을 낼 때는 모두 익명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기들 중에는 살인이나 성폭행을 다룬 내용도 있다. 그래서 이름보다 번호로 정리하는 편이 아이들에게 부담없고 안전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내용을 미화하거나 꾸미지 않도록 미리 '진실 서약'에 사인을 하게 했다. -p, 269, 270 (그루웰 선생님의 여섯 번째 일기 中)

 

 

 

 

 

 

 

 

 

 

 

 

그러고보니 난 유치원생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고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쓰는 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호탕 유령)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자 가끔은 일주일에 세네번 혹은 한달에 한 번, 세네달에 한 번. 생각이 날 때마다 끄적인다. 내가 성장한 시간만큼 일기장도 몇 글자 적을 필요 없는 넓은 폭을 가진 일기장에서 채워야 할 글자가 많은 좁은 폭을 가진 일기장으로, 예쁜 수첩으로, 지금은 USB 한 켠에 있는 비밀번호가 걸린 한글 파일로, 많이도 변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일기장 검사는 매년 맡아왔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땐 내 생애 마지막으로 검사를 맡을 일기장이었는데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검사였다. 지금도 여전히 연락을 하는 선생님이셨는데 일기장을 제출하면 꼭 내 일기 아래 편지처럼 글을 남겨주셨다. 떠들어서 선생님한테 혼난 날이면 선생님의 위로를 듣고 싶어서 일기장에 '잘못했지만 발바닥을 맞은 건 너무나 아팠다.' 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써줄 칭찬의 말을 기대하며 과장해서 일기를 썼다. 어렸을 때 잔꾀가 많았던 나는 처음으로 동생 앞에서 욕을 해서 부모님한테 꾸중을 들었을 땐 일기장에 거짓말로 '욕을 하지 않았는데 동생이 거짓말을 해서 혼났다. 억울했다.' 라는 식으로 일기를 적어 엄마, 아빠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펼쳐두곤 했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나선 그 영향으로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보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 정말 나만 보는, 내 속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날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을 욕하기도 하고, 정말 나만 알고싶은 창피스런 일도 적어두었기 때문에 아무도 못보게 죽기 전에 다 없애고 죽을 생각이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그러려면 왜 일기를 쓰냐 할지도 모르겠는데 잊고있던 추억을 계속해서 들춰보는 건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내게 일기장, 선생님, 문학작품, 영화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 책이었다. 난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왔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일기도 써왔고,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질릴만큼 보고있지만 이 책에선 이러한 것들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말 그대로 인생 역전을 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갱들의 싸움으로 인해 학교에서 집을 오가는 길에 총탄을 맞을 위험에 노출되어있고 성폭행과 폭력, 마약에 익숙해져있는 이 아이들은 그들을 믿어주는 그루웰 선생님을 만난 후 바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아이들이 쓴 일기는 그들의 삶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잔인함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적나라한 표현들 덕에 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바로보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도움을 받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유의 작가들이 되어 자신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절망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되돌려준다.

 

그저 일기를 모아놓은 책에서 그쳤다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소개되거나 영화화 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친구는 지난밤에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신나게 놀며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잇었다. 그는 내가 잃은 최초의 친구도 아니었고, 최후의 친구도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 때문에 많은 친구를 잃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벌어졌지만 세상은 결코 알지 못했다. 이는 서로 다른 피부색 사이에 벌어지는 인종 전쟁이다. 이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은 전쟁에 희생된 아이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사회가 보기에는 그저 뒷골목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사망 사건일 뿐이다. 달라지는 건 통계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통계치에 포함된 모든 아이의 엄마들에게 사망 사건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 속에는 꺾인 꽃처럼 미처 다하지 못한 삶들이 담겼다. 마치 그들의 무덤 앞에 놓인 꽃처럼 말이다. -p, 48

 

 

인종이나 성별 혹은 가치관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p, 91

 

 

모든 것이 멋졌던 저녁이 지나고 집에 돌아오니 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멋진 샹들리에나 풀코스 요리처럼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빠와의 유대감이다. 나는 존 투 씨의 아이들이 부러웠다. 존 투 씨를 아빠로 부를 수만 있다면 돈은 그들이 다 가져도 좋다. 다만 존 투 씨의 아이들이 그들의 아빠에게서 아침저녁으로 듣는 인사나, 하루가 어땠는지 묻는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유리 구두가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완벽한 신데렐라 이야기일 것이다. -p, 100

 

 

어느 1학년 학생에게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다닐 생각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졸업요? 젠장, 열여섯 살 생일까지 안 죽고 살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들에겐 졸업장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현실인 것 같다. -p, 109 (그루웰 선생님의 세 번째 일기 中)

 

 

모두 나이가 들면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이 가지지 못한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아직 더 나은 쪽으로 변할 기회가 남아잇다. 나는 그런 기회를 준 천사를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사람들은 내가 마약중독자나 미혼모 혹은 퇴학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기회가 남아있다. -p, 133

 

 

인생을 바꾸는 일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내가 해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새 출발을 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p, 135

 

 

오늘 나는 그루웰 선생님에게서 진정 주체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운에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변명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역경은 탓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선생님 말대로 장애물은 자신이 굴복할 때만 장애가 된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결정되듯이, 진정으로 주체적인 사람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찾아 단련한다. 앞으로 나도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p, 233

 

 

나쁜 일은 사람들이 진실을 숨기기 때문에 일어난다. 여자는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누가 그랬는지 말하지 않아서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아이는 학대를 당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서 주위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한다.

 

독일인들 누구나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바람에 뒤늦게야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제때 말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은 엄청나게 많다. 이제부터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p, 275

 

 

우리 삶에는 알 수 없는 질문들과 잠깐 동안의 해결책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결정적인 해결책이라고 해도 여전히 질문들이 남게 마련이다. -p, 292, 293

 

 

어려운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오래 가는 것은 강한 사람이다. -p,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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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한설 지음 / 예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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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스물아홉은 힘든 나이다. 20대의 방황과 이별하고 30대의 안정을 맞이하고 싶지만 이뤄놓은 것은 없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지 의심이 드는 가운데, 새로운 뭔가를 해볼 엄두는 나지 않으며, 사랑을 하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인연을 좀처럼 찾을 수 없어 이러다 서른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p, 38

 

 

 

 

 

 

 

 

 

 

열아홉의 나는 스무살이 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수능이 끝난 기쁨과 자유를 누리다보니 자연스레 스무살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스물아홉의 나는 어떨까? 열아홉의 나처럼 두려움 없이 자연스레 서른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 23살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가 벌써 23살이래, 징그러워.' 라는 소리가 꼭 한 번씩 나오기 마련인데 서른을 앞둔 우리는 과연 어떤 말을 하게 될지 아직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눈에 선하다.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 이라는 이 책을 읽고 스물아홉과 서른을 검색해보니 수많은 글이 서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스물아홉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그저 지난 20여년동안 겪었던 것처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것 뿐인데 왜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걸까.

 

 

 

 

 

 

 

 

 ↑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된 책이라그런지 '빨간책방 카페'가 깨알같이 등장했다. )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에서는 29살인 네 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그 중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꿈을 꾸고있는 정인,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도 졸업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왔지만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여유를 부리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민재,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 취업 생각도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며 불안해하는 수정, 부잣집에 시집을 갔지만 친정문제로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는 효선이 있다. 이는 사실 작가가 서른 한 명의 여자들에게서 그녀들의 스물아홉 기억들을 인터뷰한 후 그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에세이이다.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서른이 되면 무언가가 되어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의 통념에따라 아직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시기에 (즉,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직을 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한다. 우리는 실패자가 되지 않으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자기를 돌아보아야 할 시기엔 토익, 어학연수, 인턴 등 오로지 취직을 위한 스펙을 쌓기에 바쁘다. 이렇게 정신없이 이십대를 보내고 이십대의 끝에 자신의 삼십대를 내다보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건가?"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은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오다 이십대의 끝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는 오늘날의 스물아홉에 대해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나도 내 삶에 대해 많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요즘 스펙을 쌓느라 바빠 일년에 책 한 두권 읽을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는 다른 이십대에 비해 책을 많이 읽고,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스물아홉은 서른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나에 대해 여유와 자신감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멋진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올 해에 서른이 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쌤! 서른이 되니까 어때요?"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똑같아. 나 봐봐. 여전하잖냐." 라고 말을 해주었다. 사실 서른이 되어도 크게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 상대적인 것 만큼 나이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를.

 

 

 

 

 

 

그중에서도 스물아홉은 힘든 나이다. 20대의 방황과 이별하고 30대의 안정을 맞이하고 싶지만 이뤄놓은 것은 없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지 의심이 드는 가운데, 새로운 뭔가를 해볼 엄두는 나지 않으며, 사랑을 하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인연을 좀처럼 찾을 수 없어 이러다 서른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p, 38

 

 

정말로, 죽을 것처럼 힘이 들 때, 가장 힘을 주는 말은 '힘 내'보다 '나도 그래'라는 공감이었다. -p, 39

 

 

누구나 그렇다. 보살핌의 의미를 모른 채 책임감 없는 어른이 일단은 되고 본다. 그런 다음, 독립해서 직접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 그게 얼마나 쓰고 신맛인지를 비로소 절감하게 된다. -p, 46

 

 

정인은 와인 잔을 들며 서른이 되어가는 자신 역시, 이 나간 자리가 하나둘 생기는 접시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가 나갔다고  함부로 버려지는 접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가 나가고 금이 갈수록 더욱 가치가 오르는 접시가 되고 싶다. -p, 109, 110

 

 

"1월 모임에선가? 정인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 '표절을 피해간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고. 알고 보니 남들이 웬만한 건 이미 다 차지하고 있었다고 그랬지? 맞는 표현이야. 내 일과 내 인생을 사람들 속에서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 역시 네 나이 즈음에 깨달았던 것 같아." -p, 163

 

 

사회적으로 뭔가를 이룬 것도 아니면서, 별로 잘하는 것도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중이다. 딱히 도전해 보고 싶은 일도 없다. 가끔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혼자서만 도태되는 느낌이 든다. 불안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소용이 없다. 이럴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느낌이다. -p, 172

 

 

모든 사람에겐 공평한 하루가 주어지지만 24시간 중에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건져 올리는 이는 소수다. 대다수는 순간순간을 무의미하게 날려버린다. 하지만 의미 있는 소중한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시간은 추억을 통해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p, 177

 

 

애초부터 말에는 부메랑 속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생각없이 던졌던 말이, 그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되돌아왔음을 느낄 때가 있다. 좋지 않은 말의 부메랑은, 곧바로 되돌아온 경우보다 몇 템포 늦게 되돌아왔을 때가 훨씬 아프다. -p, 230

 

 

내 선택인 줄로 굳게 믿었던 것이 알고 보면 착각이었던 경우가 있다. 남들, 혹은 세상에 맞추기 위해 그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TV 광고나 연예인의 사생활,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받아들여 공감하고 소비하며 나의 것이라고 착각한다. -p, 288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가족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불사른다. 혼자만 참으면 된다고 믿었다. 그게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라는 그저 인형, 수단에 그치고 말았다. 효선은 그런 희생적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사랑은 한쪽의 과중한 무게로 균형을 잡지 못해 무너지거나 부러지기 십상이다. 사랑이 비극으로 치닫고 나면 둘 중 하나다. 자책을 하거나 상대를 탓하거나. 그래서 사랑은 늘 공동책임이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것을 기꺼이 하며 상대에게도 정당한 사랑의 실천을 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남편이 와인을 마시며 했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엄마와의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선 틈을 더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때로는 그게 현명한 사랑일 수 있는 것이다. -p, 324,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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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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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책은 고독 속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연결하고 대면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 때문이라 우선은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무엇이긴 하지만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파스칼의 말을 알게 되는 것. 그건 참 기분 좋은 양보다. -p, 81

 

 

 

 

 


 

 

 

 

 

그동안은 책을 읽는 장소가 정해져있지 않았다. 자기 전에 누워서 책을 읽기도 했고, 거실에서 티비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드라마를 보는 엄마 옆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고, 초로가 누워 있는 이불 옆에 누워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집에서 책을 읽기에 딱인 장소와 자세를 찾아냈다. (초로의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어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해야하지만)

 

얼마 전, 월드컵을 보면서 치킨을 먹으려고 티비 앞으로 식탁을 옮겼었다. 그런데 이게 티비를 보면서 뭘 먹을 때가 많은 우리 가족에겐 딱이었던거다. 그래서 나도 이 식탁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기가막히게 집중이 잘된다. (유레카!!)  내가 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건 중학생 때였는데 쉬는시간이나 짬이 날 때마다 나만의 공간인 내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때의 그 느낌이랄까.

 

얼마 전 읽었던 정은지 작가님의 《내 식탁 위의 책들》 이라는 책에서처럼 식탁 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책을 읽는 경우도 있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동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는 경우도 있고, 이번에 소개 할 책인 《침대와 책》 처럼 침대에서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마다 책을 읽는 장소나 자세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정은지, 《내 식탁 위의 책들》 리뷰는 여기 ☞ http://blog.naver.com/se_eun92/220034182876

 

 

 

 

 


 

 

 

 

 

서평블로그를 운영해오면서 서평을 다루는 즉, 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독서기나 서평집을 많이 읽고 있는 요즘인데, 정혜윤 작가님의 (본업은 라디오 PD님이시라 무어라 호칭을 해야 할지 계속 망설이게 된다) 《침대와 책》 이라는 이 독서기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독서기 중에서 제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글이 쓰여져 있다.

 

예전엔 선물이라면 책 선물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책 선물을 자주 했었는데 나에게는 좋은 이 책이 다른 사람에겐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나, 당시 근무하고 있던 사무실 선생님 두 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한 권씩 선물해드렸었다. 나름 취향에 맞춘다고 여행을 좋아하시던 선생님껜 이병률 시인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또 글을 읽는 걸 싫어한다는 선생님껜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글을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책 선물이 달갑지 않다는 걸 왜 그땐 몰랐었나 모르겠다.) 그때 선물을 받으시곤 표정이 썩 밝지 않았던 선생님의 모습과 그 이후로 쭉 책꽂이에 그냥 꽂혀있던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보면서 책 선물은 신중해야함을 깨달았다.

 

이러한 이유로 자칭 북소믈리에라 칭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책을 추천해주고 있을 뿐, 정작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책을 추천해주지 못하고 있다.

 

난 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는 편이지만 책을 필요에 의해 찾는 사람들에게는 찾는 이유가 재미든 교훈이든 위로이든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침대와 책》이야 말로 사람들이 책을 찾는 이유에 따라 적당한 책 추천을 해주고 있었다. 때로는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일 때' 읽었으면 하는 책, 때로는 '꿈은 있지만 꿈에 이르는 길을 몰라 불안할 때' 읽었으면 하는 책, 때로는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면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을 때'. 정말 내 롤모델로 삼고싶은 북소믈리에가 여기 있었다!

 

다양한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라디오 PD 가 아닐까. 이러한 위치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살이를 접하게 되는 (라디오 한 프로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사연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가!) 저자의 내공으로 상황에 맞게 추천해주는 책은 믿고 읽을만하다. 단순히 저자가 침대에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이 책을 얕봤던 초심이 부끄러워진다.

 

 

 

 

 


 

 

(+ 요런 재밌는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다)

 

 

 

 

 

<호텔방> 그림 속엔 홀로 있는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는 여행 중인 듯 침대 옆에는 여행 가방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녀는 여행 가방을 풀지도 않은 채 붉은 속옷만 입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걸터앉은 그녀가 하는 일은 두툼한 책 한 권을 읽는 것이었다. 책 읽기에 꽤 몰두한 그녀의 방은 어두웠고 가구는 무미건조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고개 숙인 목선만큼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오롯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그림에 몹시 마음이 끌렸다. 여행지의 낯선 호텔에서 샤워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은 현실 속의 나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피곤과 불안과 염려와 설렘과 기대와 내일의 일을 책으로 대치해버리는 것은 나의 가장 오래된 버릇이니까. -p, 6

 

 

맛집을 추천하는 책도 있고 술집을 추천하는 책, 와인과 커피와 옷과 자동차와 여행지와 박물관, 옷갖 것을 추천하는 책이 있고 나도 그 책들 덕에 인생의 풍요를 좀 맛봤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 오후에 불현듯 생긴 사소한 욕구에 답해주는 책에 대한 글로 보은하려 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걸려올 단 한 통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추천하며 심신을 안정하라 말해주겠다. 첫사랑 애인이 전화해서 만나자 했다고 난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마담 보바리》를 손에 쥐어줄 것이며,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쥐어줄 것이다. 맹추 같은 남자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눈먼 바보에게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줄 것이다.

 

나에게 모든 책은 이렇게 읽힌다.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전 세대, 전 지역의 현자가 수만 가지 스토리를 동원해 윙크를 하며 내게 인생의 힌트를 주는 것으로 말이다. 끝없이 응시하다 보면 무의식적 영감이 생기게 마련이라고들 말한다. 끊임없이 책을 읽다보면 나 역시 인생에 대해 영감을 얻을 것을 믿고 있다.

 

더구나 침대야말로 인생과 사람을 가장 궁금해하는 곳 아닌가? 거기서 겉옷쯤은 벗어 던지고 그다음 그다음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 나의 일상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나의 영혼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충만하다. '나와 같이 가자' 고 이끄는 억센 손을 잡고 봄밤에 담을 넘는 기분이다. -p, 8, 9

 

 

일상의 문제는 스타일이다. 일상의 문제는 깊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그러니 느리게 살자거나 빠르게 살자거나 하는 말은 내겐 의미가 없다. 느리거나 빠르거나가 아니라 뜨겁거나 차갑거나. -p, 36

 

 

나는 그 밤에 침대에 드러누워 《스페인사》라는 걸출한 스페인 역사책을 뒤적거렸다. 침대에 누워 다른 나라에 살았던 사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 나보다 먼저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나의 정신은 이미 침대에 속해 있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부유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최고의 여행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침대 속 상상 여행' 이야말로 니체에게 보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하고 싶은 모습이다. 일찍이 니체는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는,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칭송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까지 침대 속에서 백 번도 넘게 여행을 갔고 백 명도 넘는 사람을 만났고 백 번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왔으니 불쌍한 나를 사랑해주세요. 니체. -p, 55, 56

 

 

대체로 책을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는 일이 많다. 공원에서 한가로이 다리를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전망 좋은 방》의 제비꽃 가득한 키스신이라든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서 문화혁명 시기의 청년이 재봉사의 아름다운 딸에게 이야기해주려고 가죽점퍼 안쪽에 발자크의 소설을 베껴 써넣고 고소공포증에 떨면서 산을 기어 내려가는 장면이라든가,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가 점쟁이로 변신한 로체스터에게 꼬박꼬박 자신 있게 말하는 장면이라든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식당에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랑하는 여인을 비췄던 거울을 어떻게든 사버리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장면들은 인간이 서로 닮은 귀여운 존재란 걸 알게해줘서 기분이 좋다.

 

물론 살아오는 내내 내가 성실한 독자였단 뜻은 절대 아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영재여서 '너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란 말을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집엔 상대적으로 많은 책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린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책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순간 완전히 기분이 좋아졌던 적이 있고 그렇다보니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 말에는 항상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가 잘 모르는 책 이야기를 하면 무관심한 척 있다가 득달같이 서점에 달려가 일단 사놓고 보는 충동적인 쇼핑광이고 그 결과 가방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언제나 책이 한 권씩 들어 있게 되었다. 내 자동차 바닥엔 읽고 던져놓은 책이 하도 많아서 내 차를 타려는 사람은 모두 두 발을 들고 타야 하고, 결국은 사람들이 내 차에 동승하는 걸 거절하게 되었다. 운전하다가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그새를 못 참고' 책을 읽다가 뒤차의 우렁찬 클랙슨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고 (나에게만)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맥락 없이 말해서 분위기가 썰렁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늘 '그새를 못 참고' 망신당하는 사람들의 편이고 '분위기 파악 못해' 쩔쩔매는 사람들의 편이다.

 

책 때문에 '인기 폭발' 한 경험도 있다. 입사해서 가장 어리어리한 PD로 사람들이 '과연 저 신입사원이 제대로 된 PD가 될 수 있을까' 이구동성으로 의심할 때 신경숙의 《외딴 방》을 거의 통째로 재연하다시피 이야기해줘서 새롭게 각광을 받았고, 그 결과 국장님이 어딘가에 기고할 <나의 청춘>이란 글의 대피를 부탁하는 영광스러운 일까지 벌어져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참고로 1950년대의 시대상을 묘사한 후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좋아해 불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좋아하며 대학 생활을 마쳣으나 지금은 글과는 거리가 멀어진 중년이 되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남자의 자서전을 써보기도 했다. (물론 실리지는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평생 읽은 책으로 그의 자서전을 꾸며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요즘도 책을 통째로 이야기해주는 버릇은 남아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브로크백 마운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달의 궁전》의 앞부분은 얼마나 자주 이야기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요새 새로 추가한 책은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와 쑤퉁의 《이혼 지침서》에 나오는 <처첩성군>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 체중 구간의 뻥튀기 장사를 보면서 '나라면 교통 체증 구간에서 책 이야기해주기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참았던 일도 있다. -p, 70-73

 

 

"책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책은 고독 속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연결하고 대면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 때문이라 우선은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무엇이긴 하지만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파스칼의 말을 알게 되는 것. 그건 참 기분 좋은 양보다. -p, 81

 

 

사람은 누구를 왜 사랑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그 대답은 추리소설 한 권 분량이 될 것 같다. 그 추리소설의 첫 문장은 사랑을 선택했던 순간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금 내 옆의 사랑이 정말로 시시하다면,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을 선택한 순간의 내가 그 정도만을 허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끝낼까 말까 머리가 복잡할 땐, 역설적으로 사랑을 선택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는 견딜 수 있는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 시절로부터 도망치고 싶은가? 지금의 이 빛바랜 사랑은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었으므로, 그 시절에서 출발해 어느 해안으로 밀려왔는가를 따져봐야 할 뿐.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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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섹스하라 - 성전문가 배정원의 All About Sex
배정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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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내가 있고 파트너도 있는 그런 사랑을 하자. 무엇보다 나를 업그레이드하고 나를 멋진 사람으로 돌보아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사랑을 오래 지키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파트너를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하고 파트너의 성장을 돕는 것,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트너에게 알리고, 파트너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도록 하면 더 행복하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가 원하는 사랑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으면 더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태어나면서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워가는 것이다. 사랑이 일방적이면 행복하기 어렵다. 그런 사랑은 오래가지도 않는다.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노래햇다.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 사람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 빵을 나누어주되 한 사람의 것만 먹지 말라."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사랑을 나누고 또 채워주되 한 사람의 것만을 취하지 말라. -p, 38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통해 중학생 때 처음으로 '어른 들의 멋진 연애'에 대한 로망을 쌓아왔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두말할 것 없이 섹스가 포함 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네 명의 여자들을 보며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멋진 여자가 되어야지 얼마나 꿈을 꾸어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역시 환상은 환상이었을 때가 아름다웠던걸까. 내가 20대가 되어 직접 겪게 된 연애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그려진 것처럼 마냥 멋진 것만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싸울때도 이별할 때도 마냥 멋져보였건만 현실은 멋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그런 현실일 뿐이었다.

 

서핑을 하다가 어떤 분이 '연애를 하면 조증에 우울증에 조울증에 과대망상증까지. 세상에 있는 정신병은 다 걸리는 것 같다. 그래도 좋다고 또 하고 있으니 그것도 병.' 이라고 써놓은 글을 보았다.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그걸 캡쳐하고 있는 내 모습이란..

 

이처럼 연애를 하면서 마냥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뻔하디 뻔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이유인 '여자와 남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연애'에 대해 처음 접하는 경로만 해도 다르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자들은 보통 나처럼 <섹스 앤 더 시티>와 같은 로맨틱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성적인 면을 접한다면 남자들은 보통 야동을 보고 성적인 면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본능적인 섹스라는 행위 자체에서도 여자와 남자가 생각하는 게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성적인 면에서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니 난 개방적인 척 하면서 보수적이고, 보수적인 척 하면서 개방적인 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도 나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개방적인 척 하며 보수적이고 보수적인 척 하면서 개방적'이다. 방송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를 두려워하며 '부부관계' 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돌려 말하고 있는 반면 아이돌들을 보면 10대의 나이임에도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려 노출은 더 과감해진다.

 

<똑똑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섹스하라>에서 배정원도 이같은 점을 꼬집는다. 이 책에 언급된 내용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성은 빨간색과 검정색이라며, 너무 엄격하고 점잖아야 하거나 아니면 너무 야하고 선정적인 두 모습' 이라고 나와있다.

 

개인적으로 곽정은처럼 성에 관해 개방적이고 똑똑한 섹스 칼럼니스트가, 또한 마녀사냥처럼 성에 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요즘 많이 등장해서 정말정말 좋다.

 

 

 



 

 

 

 

 

 

 

 

물론 섹스와 사랑은 글로만 배울 수 없다. 이건 분명 경험이 뒤따라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경험이 앞설수도 있다. 만약 섹스와 사랑을 글로 다 깨우칠 수 있다고한다면 난 이미 박사학위를 땄을거다. 그럼에도 계속 이러한 책을 읽어내는 이유는 난 사랑이나 섹스에 있어서 다양한 상황, 다양한 경험을 전부 다 해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나.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배려하고 배려하고 또 배려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생각하는 게 충분히 다르다는 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사실이니 이제 우린 그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해내고 실전에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 책 <똑똑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섹스하라>는 섹스와 사랑을 통해 여자와 남자가 소통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뭐....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체위나 그런.. 기술적인 면이 궁금하시다면 실망 할 수 밖에.

 

하지만 어떻게하면 상대가 오르가즘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지스팟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섹스를 통한 소통의 스킬은 다 배워갈 수 있다. 얼마나 체득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알아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글로는 뭐든 쉽지만...)

 

 

 

 

 

한 정신과 의사는 "뷔페나 식당가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막 먹어치우는 여자는 대개 성욕저하이거나 성적 불만족이 심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필리핀에서는 많은 여자를 꼬여낸 희대의 바람둥이를 잡았는데, 그 바람둥이가 하는 말인즉슨, 호텔 뷔페나 백화점 식당가에서 많은 음식을 허기진 듯 먹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유혹해 거의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는 것이다. 성욕과 식욕은 같이 간다. 그래서 식욕을 제한하는 다이어트 약을 먹으면 성욕도 함께 떨어지기도 한다.

 

또 충분히 사랑받으면 늘 배가 부르다. 그런 면에서 사랑에 빠진 그녀가 연인 앞에서 이슬만 먹고 사는 요정처럼 아주 조금 식사를 한다고 해서 전적으로 내숭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는 것과 사랑의 결핍, 혹은 그 사랑의 지극한 표현인 섹스의 결핍은 사람을 허기지게 하고, 먹는 것과 사랑, 섹스의 만족은 그 사람을 빛나게 한다. -p, 16, 17

 

 

명상에서는 우리가 사랑을 나누면 그(그녀)의 성 에너지가 내 몸 안에 7년을 머문다고 한다. 이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7년 동안 내 몸속에 파트너의 성 에너지가 머물고, 나의 성 에너지가 파트너의 몸속에 같은 기간 머문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같이 있든 헤어졌든 서로의 영향권 아래 두 사람이 머문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곁에 있지 않아도 그 사람이 느끼는 위험이나 행복의 기운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의 상태인지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몸은 마음과 영혼이 담긴 그릇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하나다. 그 둘은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몸이 열리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몸이 열린다. 때로는 내 의도와 상관없을지라도 말이다. -p, 32

 

 

누군가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지만 이것은 역설일 뿐이고, 그래도 우리 보통사람들은 가까이에서 만지고 쓰다듬고 안을 수 있는,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보이는 사랑을 해야 불행하지 않다. 아무리 불행한 경험을 극복하는 것이 그 사람의 영혼을 성숙하게 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면 '파트너만 있고 나는 없는' 피그말리온식 사랑에 목을 매고 불행해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내 애인은 파란색을 좋아해, 그래서 나는 파란색 옷만 입어.", "우리 남편은 고기 요리는 먹지 않아요, 생선요리만 좋아하지요. 그래서 저는 주로 생선요리만 합니다. 저요? 저야 고기요리를 좋아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닌가요?"

 

하지만 이렇게 내가 없는 사랑을 하다 보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없어지는 아픈 경험을 하기 일쑤다. "내가 널 어떻게 대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나보다 그를 더 사랑했는데 그는 나를 떠나버렸어요. 나는 더 살 희망이 없어요", "나는 그 사람을 나보다 귀하게 생각하고 대했는데, 그에겐 내가 너무나 가벼운 존재였어." 이렇게 불행한 푸념을 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그런데 잔인한 말이지만 그런 불행한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다. 나를 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대접하지 않는 사람을 누구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처음에는 그를 고맙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만, 그의 끝없는 친절에 익숙해질수록 그의 존재가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다. 그런 내가 하는 사랑이기에 더 소중하고 현명해야 하며 그에게 내가 존중되어야 한다. -p, 36, 37

 

 

분명히 내가 있고 파트너도 있는 그런 사랑을 하자. 무엇보다 나를 업그레이드하고 나를 멋진 사람으로 돌보아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사랑을 오래 지키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파트너를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하고 파트너의 성장을 돕는 것,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트너에게 알리고, 파트너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도록 하면 더 행복하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가 원하는 사랑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으면 더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태어나면서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워가는 것이다. 사랑이 일방적이면 행복하기 어렵다. 그런 사랑은 오래가지도 않는다.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노래햇다.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 사람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 빵을 나누어주되 한 사람의 것만 먹지 말라."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사랑을 나누고 또 채워주되 한 사람의 것만을 취하지 말라. -p, 38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면 파트너에 집중하기 위해 동공이 커진다. 보통 2밀리미터였던 동공이 사랑에 빠지면 8밀리미터가 된다고 하고, 파트너를 더 보려고 잘 깜빡이지 않다 보니 건조함을 막기위해 눈물주머니에서 눈물을 자주 뿌려주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랑에 빠지면 눈이 촉촉해지고 더욱 또랑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동공이 커지게 하려면, 내가 먼저 그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예쁘게 보려고 하고 그에게 어떻게 하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일까를 연구해야 할 일이다. -p, 121

 

 

그러므로 나의 성건강을 안전하게 지키며(파트너의 성건강까지도 포함해서) 섹스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르는 사람과 절대 섹스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섹스하는 사람과도 섹스하지 않는다'는 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사랑과 섹스는 아름답고 멋진, 그리고 소중한 경험이나 그것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사랑을 더욱 사랑답게, 섹스를 더욱 섹스답게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자신과 파트너를 그야말로 귀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파트너를 보살피고 돌보는 절제에서 시작되고 완결되는 것이다. -p, 127

 

 

이러한 성생리의 다름은 성심리에서도 여자가 남자와의 관계, 친밀함에 대해 민감하게 만들었다. 또한 성심리적으로도 여자는 남자와 첫 섹스를 할 때 '이 사람이 섹스를 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이 사람과 섹스를 할 만큼 사랑하는가?', '임신이 되면 어떡하지?'를 고민하는 데 반해 남자는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그녀를 만족시킬까?'와 같은 섹스 내용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외도에서도 그렇다. 남자의 경우 젊었을 때의 외도는 대개 '저 사람이랑 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 등 사랑과 관련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여자의 경우는 대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다. 여자의 외도는 남편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여자가 바람이 나면,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사회적으로 다른 여러 요인도 있지만) 이혼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이 든 남자의 외도는 다르다. 그때는 남자도 호르몬 레벨이 달라져서 이야기가 통하는 파트너, 나의 영혼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게 된다고 한다. 감각은 끊기 쉽지만 관계는 끊기 어렵다. 그래서 늦바람이 무섭다는 것이다. -p, 133

 

 

우리나라에서 섹스의 문제는 남녀에게 모두 있다. 우선 남자는 여자를 배려해야 한다. 파트너의 느린 성반응에 맞춰 자신의 성반응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파트너의 기분에 상관없이 서둘러 삽입하고 사정해버리는 일방적인 섹스는 남자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멋진 섹스는 함께 성취해야 할 공동의 목표다. 여자도 남자를 더 배려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구나 반응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남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오르가즘을 가장하지 말 일이며, 또 오르가즘을 느낄 때는 신음 소리도 내고 그 행복한 느낌을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섹스는 그저 사랑을 확인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사 이전에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흔히 남자는 섹스에 있어 '일품요리'를 원하고, 여자는 '풀코스'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상담이나 강의의 경험을 통해 보면 남자도 여자도 풀코스 정찬을 원한다. -p, 140, 141

 

 

그렇다. 우리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배워야 할 것은 교과서의 지식이나 정보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고 만지는 방법 또한 그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어른들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접촉에 인색한 사람들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문화사적 논의는 각설하고, 적어도 남자가 여자를 만질 때의 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softly, tenderly, gently, lightly' 즉 '달콤하게, 부드럽게, 친절하게, 가볍게.' -p, 149

 

 

슬레이드 중령이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와(아마도 섹스였겠지만) 눈가에 눈물마저 희미하게 번지며 "정말 멋진 여자였다"고 말하는 장면에선느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멋진 여자로 만들어줄 줄 아는 남자'로서의 포용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이것은 비단 남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인데, 파트너를 멋진 이성으로 대접하면 멋진 파트너가 되는 법이다. 왕으로 대접하면 왕으로 고귀하고 당당해지는 것처럼.

 

여자가 멋진 옷차림으로 데이트에 나왔을 때 찬사와 감사를 전할 줄 아는 남자,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배려로 받아들일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멋진 신사다.

 

둘 다 같은 바람둥이기는 하지만 카사노바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들이 그를 '영원히 못 잊을 내 사랑'이라고 기억한 반면, 돈 주앙을 파트너로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를 원망하고 저주했다고 한다. 여자들은 속아서 사랑을 나누었을지언정 나를 최고라고 이야기해주고 그렇게 대접하는 바람둥이를 잊지 못한다. 성숙한 남자일수록 '모든 여자가 아름답다'는 데 동감한다. 그녀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랑을 할 자격이 있다. -p, 153, 154

 

 

데이비드 슈나츠 박사는 결혼을 '십자가 길'에 비유해 설명했다. 어차피 누구의 결혼이든 열정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일상이 되면 잘 운영하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이란 자기가 선택한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고 그 십자가에 박혀 죽는 고난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십자가가 혹시 더 가벼울까 기웃거리지 말고, 자신의 십자가에 감사하고 더 익숙해지도록 애쓰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내가 진 십자가 말고 다른 십자가가 가벼워 보여 내 것을 버리고 새것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 십자가 역시 만만하지 않고, 심지어 더 무거울 수도 있다는 농담을 섞어가며 말이다. -p, 189, 190

 

 

부부간의, 사랑하는 연인 간의 섹스는 부끄러움 없이 모두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서로에게 더 몰입할 수 있다. 이미 섹스를 하기로 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벗고 서로를 누리고 나누도록 허락하고 동의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만져지기를 원하는 곳을 가르쳐주고, 파트너의 그런 곳을 알려 하고 만족시켜주며, 또 자신의 흥분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꾸밈없이 보여줄 때 사랑의 표현은 더 친밀해지고 섹스는 업그레이드된다. -p, 204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오르가즘에 이르는 방법은 충분한 애무를 통해 여자가 충분히 애무받고 흥분해 오르가즘을 느낀 후에 남자가 삽입하고 함께 다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오르가즘을 연속해 느낄 수 있다. 이름하여 멀티플 오르가즘이다. 다중오르가즘이라고 번역하면 꽤 어색하지만, 여자는 한번 오르가즘을 느끼면 다시 오르가즘에 이를 때까지 꽤 긴(여자에 비해) 불응기가 있는 남자와 달리 불응기가 아주 짧아 한번 오르가즘을 느낀 뒤에도 잠시 쉬었다가 자극을 주면 다시 오르가즘에 이를 수 있다. -p, 241

 

 

파트너에게 멋진 그리고 섹시한 사람이 되라. 밖에 나간 남편은 혹은 아내는 '어떻게 하면 오늘 가장 돋보일까'를 생각하고 옷을 차려입은 이성들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p, 266

 

 

흔히 성학에서는 자신이 조루임을 알고 있는 남편의 아내는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빨리 사정하는 것을 아는 남편은 삽입 이전에 애무를 통해 아내를 충분히 만족시킨 후 삽입하고 사정에 이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개 여자는 섹스시간이 긴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것은 삽입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애무나 키스, 속삭임을 통해 충분히 주고받는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면 남자들은 아내를 만족시키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이다.

 

또 남자들로서도 충분하게 파트너를 흥분시킨 가운데 멋지게 오래 애무할수록 정액량이 많아진다. 남자라면 다 알겠지만 한 번에 사정되는 정액량이 많을수록, 그것이 힘차게 될수록 자신의 오르가즘 느낌은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황홀한 애무의 시간을 길게 가지는 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 될 것이다. -p, 289

 

 

이렇게 내가 여왕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그를 왕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현명한 여자가 그를 행복하게 한다. 장난으로라도 남편의 성기 크기를 가지고 농담하지 않는 아내가 남자를 행복하게 한다. 또 매번 침대에서 하는 똑같은 체위가 아니라 아이들 없을 때는 소파에서도, 목욕탕 샤워 부스 밑에서도 섹스를 할 수 있는 아내가 남자를 자신 있게 한다. 그리고 혹시 남편이 발기가 잘 안 되거나 생각보다 금방 사정을 한 경우에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격려할 줄 아는 아내가 남편을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무조건 남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자극과 체위, 횟수에 대해서 말해주는 아내가 남자를 행복하게 한다. 사랑도 섹스도 누가 누구를 위하는 일방적인 서비스가 아니다. -p, 307

 

 

대화에 두려움이 끼어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지시다. 대화라는 것은 그야말로 수평적인, 어떤 말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사랑하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고 확인하는 부부간의 대화라는 점에서 그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어떤 강압적인 힘도 작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편들뿐 아니라 힘 있는 아내들 역시. -p, 352,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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