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개정판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방금 즐라타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그녀를 모범 삼아 글짓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즐라타처럼 자신이 쓴 일기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는 즐라타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 중에 일기만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이었고, 일기 덕분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글쓰기가 끔찍한 환경과 개인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거라고 덧붙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락방에 숨어 지내거나 지하실에서 폭격을 피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거리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그에 못지않게 무섭고 고통스럽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우리 반이 유일한 안전지대다. 교실은 난무하는 폭력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다. 교실만 벗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많은 아이가 항상 불안에 떨고 계속 뒤를 돌아보며 생활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보통 숙제를 하느라 저녁 일곱 시에서 여덟 시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늦은 시간이면 꼭 퇴근하는 길에 아이들을 태워서 집에 보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때로는 나도 무서운 순간들을 겪는다. 아이들 앞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번은 마약장수가 내 차에 와서 마약을 팔려고 한 적도 있다. 독한 술을 마시거나 주사위 놀이를 하며 죽치고 있는 갱스터도 숱하게 보았다. 아이들은 최근에 사람이 죽은 자리임을 가리키는 임시 제단을 쉽게 찾아낸다. 보통 핏자국이 남은 콘크리트 위에 놓인 꽃과 양초가 그것이다.
(…)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책을 낼 때는 모두 익명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기들 중에는 살인이나 성폭행을 다룬 내용도 있다. 그래서 이름보다 번호로 정리하는 편이 아이들에게 부담없고 안전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내용을 미화하거나 꾸미지 않도록 미리 '진실 서약'에 사인을 하게 했다. -p, 269, 270 (그루웰 선생님의 여섯 번째 일기 中)

그러고보니 난 유치원생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고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쓰는 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자 가끔은 일주일에 세네번 혹은 한달에 한 번, 세네달에 한 번. 생각이 날 때마다 끄적인다. 내가 성장한 시간만큼 일기장도 몇 글자 적을 필요 없는 넓은 폭을 가진 일기장에서 채워야 할 글자가 많은 좁은 폭을 가진 일기장으로, 예쁜 수첩으로, 지금은 USB 한 켠에 있는 비밀번호가 걸린 한글 파일로, 많이도 변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일기장 검사는 매년 맡아왔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땐 내 생애 마지막으로 검사를 맡을 일기장이었는데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검사였다. 지금도 여전히 연락을 하는 선생님이셨는데 일기장을 제출하면 꼭 내 일기 아래 편지처럼 글을 남겨주셨다. 떠들어서 선생님한테 혼난 날이면 선생님의 위로를 듣고 싶어서 일기장에 '잘못했지만 발바닥을 맞은 건 너무나 아팠다.' 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써줄 칭찬의 말을 기대하며 과장해서 일기를 썼다. 어렸을 때 잔꾀가 많았던 나는 처음으로 동생 앞에서 욕을 해서 부모님한테 꾸중을 들었을 땐 일기장에 거짓말로 '욕을 하지 않았는데 동생이 거짓말을 해서 혼났다. 억울했다.' 라는 식으로 일기를 적어 엄마, 아빠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펼쳐두곤 했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나선 그 영향으로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보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 정말 나만 보는, 내 속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날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을 욕하기도 하고, 정말 나만 알고싶은 창피스런 일도 적어두었기 때문에 아무도 못보게 죽기 전에 다 없애고 죽을 생각이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그러려면 왜 일기를 쓰냐 할지도 모르겠는데 잊고있던 추억을 계속해서 들춰보는 건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내게 일기장, 선생님, 문학작품, 영화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 책이었다. 난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왔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일기도 써왔고,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질릴만큼 보고있지만 이 책에선 이러한 것들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말 그대로 인생 역전을 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갱들의 싸움으로 인해 학교에서 집을 오가는 길에 총탄을 맞을 위험에 노출되어있고 성폭행과 폭력, 마약에 익숙해져있는 이 아이들은 그들을 믿어주는 그루웰 선생님을 만난 후 바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아이들이 쓴 일기는 그들의 삶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잔인함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적나라한 표현들 덕에 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바로보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도움을 받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유의 작가들이 되어 자신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절망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되돌려준다.
그저 일기를 모아놓은 책에서 그쳤다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소개되거나 영화화 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친구는 지난밤에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신나게 놀며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잇었다. 그는 내가 잃은 최초의 친구도 아니었고, 최후의 친구도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 때문에 많은 친구를 잃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벌어졌지만 세상은 결코 알지 못했다. 이는 서로 다른 피부색 사이에 벌어지는 인종 전쟁이다. 이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은 전쟁에 희생된 아이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사회가 보기에는 그저 뒷골목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사망 사건일 뿐이다. 달라지는 건 통계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통계치에 포함된 모든 아이의 엄마들에게 사망 사건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 속에는 꺾인 꽃처럼 미처 다하지 못한 삶들이 담겼다. 마치 그들의 무덤 앞에 놓인 꽃처럼 말이다. -p, 48
인종이나 성별 혹은 가치관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p, 91
모든 것이 멋졌던 저녁이 지나고 집에 돌아오니 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멋진 샹들리에나 풀코스 요리처럼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빠와의 유대감이다. 나는 존 투 씨의 아이들이 부러웠다. 존 투 씨를 아빠로 부를 수만 있다면 돈은 그들이 다 가져도 좋다. 다만 존 투 씨의 아이들이 그들의 아빠에게서 아침저녁으로 듣는 인사나, 하루가 어땠는지 묻는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유리 구두가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완벽한 신데렐라 이야기일 것이다. -p, 100
어느 1학년 학생에게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다닐 생각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졸업요? 젠장, 열여섯 살 생일까지 안 죽고 살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들에겐 졸업장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현실인 것 같다. -p, 109 (그루웰 선생님의 세 번째 일기 中)
모두 나이가 들면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이 가지지 못한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아직 더 나은 쪽으로 변할 기회가 남아잇다. 나는 그런 기회를 준 천사를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사람들은 내가 마약중독자나 미혼모 혹은 퇴학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기회가 남아있다. -p, 133
인생을 바꾸는 일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내가 해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새 출발을 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p, 135
오늘 나는 그루웰 선생님에게서 진정 주체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운에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변명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역경은 탓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선생님 말대로 장애물은 자신이 굴복할 때만 장애가 된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결정되듯이, 진정으로 주체적인 사람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찾아 단련한다. 앞으로 나도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p, 233
나쁜 일은 사람들이 진실을 숨기기 때문에 일어난다. 여자는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누가 그랬는지 말하지 않아서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아이는 학대를 당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서 주위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한다.
독일인들 누구나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바람에 뒤늦게야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제때 말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은 엄청나게 많다. 이제부터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p, 275
우리 삶에는 알 수 없는 질문들과 잠깐 동안의 해결책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결정적인 해결책이라고 해도 여전히 질문들이 남게 마련이다. -p, 292, 293
어려운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오래 가는 것은 강한 사람이다. -p, 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