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한설 지음 / 예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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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스물아홉은 힘든 나이다. 20대의 방황과 이별하고 30대의 안정을 맞이하고 싶지만 이뤄놓은 것은 없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지 의심이 드는 가운데, 새로운 뭔가를 해볼 엄두는 나지 않으며, 사랑을 하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인연을 좀처럼 찾을 수 없어 이러다 서른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p, 38

 

 

 

 

 

 

 

 

 

 

열아홉의 나는 스무살이 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수능이 끝난 기쁨과 자유를 누리다보니 자연스레 스무살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스물아홉의 나는 어떨까? 열아홉의 나처럼 두려움 없이 자연스레 서른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 23살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가 벌써 23살이래, 징그러워.' 라는 소리가 꼭 한 번씩 나오기 마련인데 서른을 앞둔 우리는 과연 어떤 말을 하게 될지 아직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눈에 선하다.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 이라는 이 책을 읽고 스물아홉과 서른을 검색해보니 수많은 글이 서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스물아홉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그저 지난 20여년동안 겪었던 것처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것 뿐인데 왜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걸까.

 

 

 

 

 

 

 

 

 ↑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된 책이라그런지 '빨간책방 카페'가 깨알같이 등장했다. )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에서는 29살인 네 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그 중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꿈을 꾸고있는 정인,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도 졸업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왔지만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여유를 부리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민재,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 취업 생각도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며 불안해하는 수정, 부잣집에 시집을 갔지만 친정문제로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는 효선이 있다. 이는 사실 작가가 서른 한 명의 여자들에게서 그녀들의 스물아홉 기억들을 인터뷰한 후 그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에세이이다.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서른이 되면 무언가가 되어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의 통념에따라 아직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시기에 (즉,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직을 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한다. 우리는 실패자가 되지 않으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자기를 돌아보아야 할 시기엔 토익, 어학연수, 인턴 등 오로지 취직을 위한 스펙을 쌓기에 바쁘다. 이렇게 정신없이 이십대를 보내고 이십대의 끝에 자신의 삼십대를 내다보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건가?"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은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오다 이십대의 끝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는 오늘날의 스물아홉에 대해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나도 내 삶에 대해 많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요즘 스펙을 쌓느라 바빠 일년에 책 한 두권 읽을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는 다른 이십대에 비해 책을 많이 읽고,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스물아홉은 서른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나에 대해 여유와 자신감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멋진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올 해에 서른이 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쌤! 서른이 되니까 어때요?"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똑같아. 나 봐봐. 여전하잖냐." 라고 말을 해주었다. 사실 서른이 되어도 크게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 상대적인 것 만큼 나이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를.

 

 

 

 

 

 

그중에서도 스물아홉은 힘든 나이다. 20대의 방황과 이별하고 30대의 안정을 맞이하고 싶지만 이뤄놓은 것은 없고,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지 의심이 드는 가운데, 새로운 뭔가를 해볼 엄두는 나지 않으며, 사랑을 하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인연을 좀처럼 찾을 수 없어 이러다 서른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p, 38

 

 

정말로, 죽을 것처럼 힘이 들 때, 가장 힘을 주는 말은 '힘 내'보다 '나도 그래'라는 공감이었다. -p, 39

 

 

누구나 그렇다. 보살핌의 의미를 모른 채 책임감 없는 어른이 일단은 되고 본다. 그런 다음, 독립해서 직접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 그게 얼마나 쓰고 신맛인지를 비로소 절감하게 된다. -p, 46

 

 

정인은 와인 잔을 들며 서른이 되어가는 자신 역시, 이 나간 자리가 하나둘 생기는 접시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가 나갔다고  함부로 버려지는 접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가 나가고 금이 갈수록 더욱 가치가 오르는 접시가 되고 싶다. -p, 109, 110

 

 

"1월 모임에선가? 정인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 '표절을 피해간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고. 알고 보니 남들이 웬만한 건 이미 다 차지하고 있었다고 그랬지? 맞는 표현이야. 내 일과 내 인생을 사람들 속에서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 역시 네 나이 즈음에 깨달았던 것 같아." -p, 163

 

 

사회적으로 뭔가를 이룬 것도 아니면서, 별로 잘하는 것도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중이다. 딱히 도전해 보고 싶은 일도 없다. 가끔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혼자서만 도태되는 느낌이 든다. 불안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소용이 없다. 이럴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느낌이다. -p, 172

 

 

모든 사람에겐 공평한 하루가 주어지지만 24시간 중에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건져 올리는 이는 소수다. 대다수는 순간순간을 무의미하게 날려버린다. 하지만 의미 있는 소중한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시간은 추억을 통해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p, 177

 

 

애초부터 말에는 부메랑 속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생각없이 던졌던 말이, 그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되돌아왔음을 느낄 때가 있다. 좋지 않은 말의 부메랑은, 곧바로 되돌아온 경우보다 몇 템포 늦게 되돌아왔을 때가 훨씬 아프다. -p, 230

 

 

내 선택인 줄로 굳게 믿었던 것이 알고 보면 착각이었던 경우가 있다. 남들, 혹은 세상에 맞추기 위해 그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TV 광고나 연예인의 사생활,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받아들여 공감하고 소비하며 나의 것이라고 착각한다. -p, 288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가족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불사른다. 혼자만 참으면 된다고 믿었다. 그게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라는 그저 인형, 수단에 그치고 말았다. 효선은 그런 희생적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사랑은 한쪽의 과중한 무게로 균형을 잡지 못해 무너지거나 부러지기 십상이다. 사랑이 비극으로 치닫고 나면 둘 중 하나다. 자책을 하거나 상대를 탓하거나. 그래서 사랑은 늘 공동책임이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것을 기꺼이 하며 상대에게도 정당한 사랑의 실천을 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남편이 와인을 마시며 했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엄마와의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선 틈을 더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때로는 그게 현명한 사랑일 수 있는 것이다. -p, 324,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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