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책은 고독 속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연결하고 대면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 때문이라 우선은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무엇이긴 하지만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파스칼의 말을 알게 되는 것. 그건 참 기분 좋은 양보다. -p, 81

 

 

 

 

 


 

 

 

 

 

그동안은 책을 읽는 장소가 정해져있지 않았다. 자기 전에 누워서 책을 읽기도 했고, 거실에서 티비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드라마를 보는 엄마 옆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고, 초로가 누워 있는 이불 옆에 누워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집에서 책을 읽기에 딱인 장소와 자세를 찾아냈다. (초로의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어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해야하지만)

 

얼마 전, 월드컵을 보면서 치킨을 먹으려고 티비 앞으로 식탁을 옮겼었다. 그런데 이게 티비를 보면서 뭘 먹을 때가 많은 우리 가족에겐 딱이었던거다. 그래서 나도 이 식탁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기가막히게 집중이 잘된다. (유레카!!)  내가 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건 중학생 때였는데 쉬는시간이나 짬이 날 때마다 나만의 공간인 내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때의 그 느낌이랄까.

 

얼마 전 읽었던 정은지 작가님의 《내 식탁 위의 책들》 이라는 책에서처럼 식탁 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책을 읽는 경우도 있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동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는 경우도 있고, 이번에 소개 할 책인 《침대와 책》 처럼 침대에서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마다 책을 읽는 장소나 자세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정은지, 《내 식탁 위의 책들》 리뷰는 여기 ☞ http://blog.naver.com/se_eun92/220034182876

 

 

 

 

 


 

 

 

 

 

서평블로그를 운영해오면서 서평을 다루는 즉, 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독서기나 서평집을 많이 읽고 있는 요즘인데, 정혜윤 작가님의 (본업은 라디오 PD님이시라 무어라 호칭을 해야 할지 계속 망설이게 된다) 《침대와 책》 이라는 이 독서기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독서기 중에서 제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글이 쓰여져 있다.

 

예전엔 선물이라면 책 선물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책 선물을 자주 했었는데 나에게는 좋은 이 책이 다른 사람에겐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나, 당시 근무하고 있던 사무실 선생님 두 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한 권씩 선물해드렸었다. 나름 취향에 맞춘다고 여행을 좋아하시던 선생님껜 이병률 시인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또 글을 읽는 걸 싫어한다는 선생님껜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글을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책 선물이 달갑지 않다는 걸 왜 그땐 몰랐었나 모르겠다.) 그때 선물을 받으시곤 표정이 썩 밝지 않았던 선생님의 모습과 그 이후로 쭉 책꽂이에 그냥 꽂혀있던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보면서 책 선물은 신중해야함을 깨달았다.

 

이러한 이유로 자칭 북소믈리에라 칭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한 책을 추천해주고 있을 뿐, 정작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책을 추천해주지 못하고 있다.

 

난 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는 편이지만 책을 필요에 의해 찾는 사람들에게는 찾는 이유가 재미든 교훈이든 위로이든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침대와 책》이야 말로 사람들이 책을 찾는 이유에 따라 적당한 책 추천을 해주고 있었다. 때로는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일 때' 읽었으면 하는 책, 때로는 '꿈은 있지만 꿈에 이르는 길을 몰라 불안할 때' 읽었으면 하는 책, 때로는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면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을 때'. 정말 내 롤모델로 삼고싶은 북소믈리에가 여기 있었다!

 

다양한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라디오 PD 가 아닐까. 이러한 위치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살이를 접하게 되는 (라디오 한 프로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사연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가!) 저자의 내공으로 상황에 맞게 추천해주는 책은 믿고 읽을만하다. 단순히 저자가 침대에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이 책을 얕봤던 초심이 부끄러워진다.

 

 

 

 

 


 

 

(+ 요런 재밌는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다)

 

 

 

 

 

<호텔방> 그림 속엔 홀로 있는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는 여행 중인 듯 침대 옆에는 여행 가방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녀는 여행 가방을 풀지도 않은 채 붉은 속옷만 입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걸터앉은 그녀가 하는 일은 두툼한 책 한 권을 읽는 것이었다. 책 읽기에 꽤 몰두한 그녀의 방은 어두웠고 가구는 무미건조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고개 숙인 목선만큼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오롯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그림에 몹시 마음이 끌렸다. 여행지의 낯선 호텔에서 샤워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은 현실 속의 나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피곤과 불안과 염려와 설렘과 기대와 내일의 일을 책으로 대치해버리는 것은 나의 가장 오래된 버릇이니까. -p, 6

 

 

맛집을 추천하는 책도 있고 술집을 추천하는 책, 와인과 커피와 옷과 자동차와 여행지와 박물관, 옷갖 것을 추천하는 책이 있고 나도 그 책들 덕에 인생의 풍요를 좀 맛봤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 오후에 불현듯 생긴 사소한 욕구에 답해주는 책에 대한 글로 보은하려 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걸려올 단 한 통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추천하며 심신을 안정하라 말해주겠다. 첫사랑 애인이 전화해서 만나자 했다고 난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마담 보바리》를 손에 쥐어줄 것이며,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쥐어줄 것이다. 맹추 같은 남자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눈먼 바보에게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줄 것이다.

 

나에게 모든 책은 이렇게 읽힌다.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전 세대, 전 지역의 현자가 수만 가지 스토리를 동원해 윙크를 하며 내게 인생의 힌트를 주는 것으로 말이다. 끝없이 응시하다 보면 무의식적 영감이 생기게 마련이라고들 말한다. 끊임없이 책을 읽다보면 나 역시 인생에 대해 영감을 얻을 것을 믿고 있다.

 

더구나 침대야말로 인생과 사람을 가장 궁금해하는 곳 아닌가? 거기서 겉옷쯤은 벗어 던지고 그다음 그다음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 나의 일상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나의 영혼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충만하다. '나와 같이 가자' 고 이끄는 억센 손을 잡고 봄밤에 담을 넘는 기분이다. -p, 8, 9

 

 

일상의 문제는 스타일이다. 일상의 문제는 깊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그러니 느리게 살자거나 빠르게 살자거나 하는 말은 내겐 의미가 없다. 느리거나 빠르거나가 아니라 뜨겁거나 차갑거나. -p, 36

 

 

나는 그 밤에 침대에 드러누워 《스페인사》라는 걸출한 스페인 역사책을 뒤적거렸다. 침대에 누워 다른 나라에 살았던 사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 나보다 먼저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나의 정신은 이미 침대에 속해 있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부유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최고의 여행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침대 속 상상 여행' 이야말로 니체에게 보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하고 싶은 모습이다. 일찍이 니체는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는,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칭송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까지 침대 속에서 백 번도 넘게 여행을 갔고 백 명도 넘는 사람을 만났고 백 번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왔으니 불쌍한 나를 사랑해주세요. 니체. -p, 55, 56

 

 

대체로 책을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는 일이 많다. 공원에서 한가로이 다리를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전망 좋은 방》의 제비꽃 가득한 키스신이라든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서 문화혁명 시기의 청년이 재봉사의 아름다운 딸에게 이야기해주려고 가죽점퍼 안쪽에 발자크의 소설을 베껴 써넣고 고소공포증에 떨면서 산을 기어 내려가는 장면이라든가,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가 점쟁이로 변신한 로체스터에게 꼬박꼬박 자신 있게 말하는 장면이라든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식당에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랑하는 여인을 비췄던 거울을 어떻게든 사버리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장면들은 인간이 서로 닮은 귀여운 존재란 걸 알게해줘서 기분이 좋다.

 

물론 살아오는 내내 내가 성실한 독자였단 뜻은 절대 아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영재여서 '너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란 말을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집엔 상대적으로 많은 책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린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책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순간 완전히 기분이 좋아졌던 적이 있고 그렇다보니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 말에는 항상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가 잘 모르는 책 이야기를 하면 무관심한 척 있다가 득달같이 서점에 달려가 일단 사놓고 보는 충동적인 쇼핑광이고 그 결과 가방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언제나 책이 한 권씩 들어 있게 되었다. 내 자동차 바닥엔 읽고 던져놓은 책이 하도 많아서 내 차를 타려는 사람은 모두 두 발을 들고 타야 하고, 결국은 사람들이 내 차에 동승하는 걸 거절하게 되었다. 운전하다가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그새를 못 참고' 책을 읽다가 뒤차의 우렁찬 클랙슨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고 (나에게만)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맥락 없이 말해서 분위기가 썰렁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늘 '그새를 못 참고' 망신당하는 사람들의 편이고 '분위기 파악 못해' 쩔쩔매는 사람들의 편이다.

 

책 때문에 '인기 폭발' 한 경험도 있다. 입사해서 가장 어리어리한 PD로 사람들이 '과연 저 신입사원이 제대로 된 PD가 될 수 있을까' 이구동성으로 의심할 때 신경숙의 《외딴 방》을 거의 통째로 재연하다시피 이야기해줘서 새롭게 각광을 받았고, 그 결과 국장님이 어딘가에 기고할 <나의 청춘>이란 글의 대피를 부탁하는 영광스러운 일까지 벌어져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참고로 1950년대의 시대상을 묘사한 후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좋아해 불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좋아하며 대학 생활을 마쳣으나 지금은 글과는 거리가 멀어진 중년이 되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남자의 자서전을 써보기도 했다. (물론 실리지는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평생 읽은 책으로 그의 자서전을 꾸며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요즘도 책을 통째로 이야기해주는 버릇은 남아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브로크백 마운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달의 궁전》의 앞부분은 얼마나 자주 이야기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요새 새로 추가한 책은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와 쑤퉁의 《이혼 지침서》에 나오는 <처첩성군>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 체중 구간의 뻥튀기 장사를 보면서 '나라면 교통 체증 구간에서 책 이야기해주기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참았던 일도 있다. -p, 70-73

 

 

"책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책은 고독 속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연결하고 대면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 때문이라 우선은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무엇이긴 하지만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파스칼의 말을 알게 되는 것. 그건 참 기분 좋은 양보다. -p, 81

 

 

사람은 누구를 왜 사랑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그 대답은 추리소설 한 권 분량이 될 것 같다. 그 추리소설의 첫 문장은 사랑을 선택했던 순간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금 내 옆의 사랑이 정말로 시시하다면,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을 선택한 순간의 내가 그 정도만을 허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끝낼까 말까 머리가 복잡할 땐, 역설적으로 사랑을 선택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는 견딜 수 있는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 시절로부터 도망치고 싶은가? 지금의 이 빛바랜 사랑은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었으므로, 그 시절에서 출발해 어느 해안으로 밀려왔는가를 따져봐야 할 뿐. -p, 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