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 남자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당신에게, 개정판
남인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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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남자가 백마 탄 기사처럼 다가오지 못했다 해도 일단 당신에게 마음을 표했다면, 그는 아마도 그 가난한 마음 속에서 용을 백 마리쯤 물리치고 입을 연 것일 테다. 그를 받아들일 마음이라면 우선 그의 용기를 인정해 주기를. 물론 다음 단계는 그에게 벅차지만 노려볼 만한 아슬아슬한 마음의 가격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p, 49, 50

 

 

 

 

 

 



 

 

 

 

 

 

 

데이트 도중 남자친구에게 순간적으로 서운함을 느끼고,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데이트를 전체를 망쳐버린다. 그렇게 급격히 다운된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와서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울며 친한 친구한테 "나 지금 짜증나ㅠㅠ" 라고 카톡을 보내면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봐 호들갑을 떨면서 "무슨일이야!!!!" 라고 바로 답장이 온다. 그때부터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으면서 "내가 이러려고 연애를 한게 아닌데 엉엉, 남자들은 왜 이러는거야 엉엉" 하다보면 어느샌가 서운함이 싹 가셔있다. 그렇게 마음을 좀 다잡고 화가 나서 무시했었던 남자친구의 카톡에 대답을 해주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알콩달콩 연락을 하는 것의 반복.

 

 

남이 보면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한바탕 전쟁과도 같은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연애에 대해 또 남자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연애는 힘들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게 연애인 듯 싶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들어올 때마다 내 눈에 밟혔던 이 책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저 책 언젠간 꼭 읽어야지.' 생각을 해두곤 막상 필요할 땐 내 감정을 추스르느라 읽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요물이다.

 

물론 모든 남자들을 한 가지 기준으로 파악할 순 없겠지만 읽고나니 도통 모르겠던 내 남자의 행동들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달까.

 

 

 

 




 

 

 

 

 

 

그냥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지침서였다면 실망했을테지만 가상의 인물 '금련'을 주인공으로 해서 금련이 한 남자와 헤어지고 (심지어 문자로 이별통보를 받았다), '무대'라는 새로운 남자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결혼생활을 하는 모습까지. 남자와 함께라면 겪게 될 이런 상황들을 통해 남자의 행동을 하나하나 파악해하고, 그에 대해 '금련' 즉 여자인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로맨스 소설 속에서 접해오던 멋진 남자들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그런 일반적인 남자들의 표본인 '무대'와 역시 일반적인 여자들의 표본인 '금련'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여자와 남자가 공존해갈 수 있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자들이 알면 불편해하지만 여자들은 꼭 알아야 할 것들' 이라는 책 소개에 있는 글처럼 이 책엔 대체적으로 남자들을 '남자다워보이기 위한 남자병'에 걸려있고, '아이'라고 바꿔불러도 될만큼 어리다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말 남자들이 읽기엔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자들이 남자들과 잘 지내기 위해 이렇게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해를 해준다면 남자들이 읽어도 괜찮을 책이 아닐까.

 

 

 

 


 


 

↑ 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 'Fiction or Nonfiction' 中 & 덧글

남자들은 진부한 영화 대사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을 남자라고 느끼게 해주는 여자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호감을 유지할 수 있다. 당신이 그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방식이 남자의 '승리자로서의 우월한 면모'를 북돋워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여자인 당신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생일날 선물도 안 사 주고, 좋은 곳에 놀러 한 번 안 가는 데다 여자라고 무시하면서 섹스만 요구하는 남자와 오래 사귈 수 있겠는가. 그와의 만남에서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아마 상대의 사랑한다는 말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남자들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그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 주지 않는 여자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새로 만남을 갖고 싶든, 사랑을 지키고 싶든, 상대방 마음 속의 남자를 짓밟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당신 앞에서 쿨한 남자로서 웃고 넘길 뿐 절대로 경고를 보내지 않는다. 자신의 '무시당한 남자'를 상대가 알아채는 것은 두 번 패하는 일이며, 쓸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라서 그렇다. -p, 39, 40

 

 

오래 전 어느 모임에선가 뛰어나게 잘생긴 남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호감이 가는 외모의 남자를 보면 일단은 가슴 두근거려 하며 그가 애인이 있는지 성격은 어떤지 탐색하곤 했었는데, 그날 그를 보고서는 전혀 특이할 만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내 마음에 일방적인 욕망마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건 웬만한 오피스텔 전세금을 뛰어넘는 가격의 명품 가방을 구경하며 '와―' 하는 감탄이 스칠 뿐인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내 피를 끓게 하고 갖고 싶다는 욕망에 열병을 앓게 하는 것은 내 주머니 사정에 맞춘 듯 아슬아슬한 가격표를 단 가방이다.

 

남자들이 느끼는 욕망도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들은 적당한 가격표를 내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에게 욕망을 느낀다. 어떤 여자가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다는 것은 그녀가 달고 있는 가격표를 수용할 수 있는 남자의 폭이 넓다는 의미다. -p, 48, 49

 

 

여자들은 저돌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남자들을 싫어한다. 그런 이들은 계산적이고 속이 좁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성큼 다가와 세련되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거절해도 아무 상관없을 만큼 당신을 가볍게 생각하는 남자들뿐이다.

 

한 남자가 백마 탄 기사처럼 다가오지 못했다 해도 일단 당신에게 마음을 표했다면, 그는 아마도 그 가난한 마음 속에서 용을 백 마리쯤 물리치고 입을 연 것일 테다. 그를 받아들일 마음이라면 우선 그의 용기를 인정해 주기를. 물론 다음 단계는 그에게 벅차지만 노려볼 만한 아슬아슬한 마음의 가격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p, 49, 50

 

 

남자들은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 왔고 지금도 그 권력은 유효하지만 정복자로서의 품성을 갖추기 위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부를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남자들이 버린 인간의 부분은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모습으로 여자들 안에 그대로 살아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오로지 여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무 여자에게나 그럴 수는 없고, '내 여자'에게서만 가능하다.

 

남자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들은 저마다 여자 파트너에게 자기 감정을 담고 있는 외장 하드를 맡겨 두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없이는 세상이 주는 감정적 파고와 스트레스를 해석하고 수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자기 여자에게만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게 남자가 결혼만 하면 어린애가 되는 이유이며 오래된 남자친구에게 실망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p, 104

 

 

없앤 점의 숫자를 말하는 것도 금기일진대 과거 남자친구의 숫자나 육체관계 등은 어떻겠는가. 아무리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고 해도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싶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친구와의 육체관계에 대해 수다를 떨 때가 많지만, 남자들은 절대로 자기 여자와의 섹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친구가 자기 여자의 몸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묻지 않는다면 굳이 말하지 말라. 묻는다면 최대한 추상적으로 말하라. 그러나 거짓말은 금물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순결하다고 믿고 싶은 남자의 판타지보다 더 중요한 게 신뢰이기 때문이다. -p, 110, 111

 

 

남자와 여자는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런 점을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남녀 파트너는 더 자주 충돌할 수도, 더 무난하게 어울릴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여자는 칸트주의자, 남자는 벤담주의자에 가깝다. 철학자 칸트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한 동기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도둑질을 하러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본의 아니게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면 그건 선행이 아닌 것이다. 공리주의를 주장한 벤담은 어떤 것이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선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개 칸트처럼 동기와 감정을 더 중요시 여긴다. 반대로 결과를 중시하는 남자들은 과정이야 어쨌건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서 감정 상했던 일들은 쉽게 잊고 용서하는 경우가 많다. 공리주의자인 벤담과 비슷한 입장이다. -p, 148

 

 

남자들에게는 자기가 남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대책 없이 무책임하게 행동하려는 심리가 있다. '능력 없는 남자' 보다는 '무책임한 남자'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의 무책임한 남자를 만드는 원인조차 책임감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여자는 툭하면 남편에게 '힘들면 사표를 내라. 당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내 월급으로 우리 식구쯤 먹여살릴 수 있다' 라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그 남편은 결혼한 지 십 수 년이 다 되도록 한 번도 사표를 내지 않았고, 여느 한국 남자보다 집안일도 잘 돌본다. 나는 그것이 남편에게서 '책임감'을 나누는 그녀의 삶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남자를 대할 때, 책임감을 덜어 주면 그가 그 책임감을 핑계로 회피하고 있는 수많은 의무들을 어느 정도 그와 나눌 수 있다. 서구의 여자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도 그녀들이 남자들의 책임을 상당 부분 나눠 가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자들의 권리를 상당 부분 빼앗고 원하는 수만큼의 아내를 둘 수 있는 아랍 남자들은 자신의 모든 아내들에게 똑같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엄청난 책임을 진다. -p, 189

 

 

남자들이 '버럭'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밖으로 배출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남자들은 슬픔, 외로움, 두려움 등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쉽사리 표현할 수 없다. 남자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그나마 분노가 유일하다. 화를 낸다는 것, 헐크처럼 감정을 폭발시킨다는 것, 활화산처럼 감정을 일순간에 뿜어낸다는 것……. 말만 들어도 어딘가 남성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엉뚱하게 분노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슬퍼도 화를 내고, 무서워도 화를 내고, 절망해도 화를 내며, 외로워도 화를 낸다는 뜻이다.

(· · ·) 

여기서 여자들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멀쩡하던 남자가 근래에 부쩍 화를 더 낸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적신호다. 남자들의 우울증이 화내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한 사실이다.

 

화를 내며 쏟아 내는 독설들은 실은 나약하지만 나약하다 말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눈물이기도 하고 도와 달라는 애원의 말이기도 한 것이다. -p, 228~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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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깨물기
이노우에 아레노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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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시나는 불안했다. 이 순간이 과거가 되는 것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도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자신을 버려두고 휙휙 가버리는 것 같았다. -p, 39 <에쿠니 가오리, 《늦여름 해 질 녘》 中>

 

 

 

 

 


 

 

 

 

 

얼마 전 오빠랑 이야기를 하다 오빠가 "난 달달한 걸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른같다고 생각을 했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이 아니었기에 그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했던 게 생각이 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몸에 좋은 건강식보단 과자, 초콜릿, 빵을 더 좋아하는 '애기 입맛'을 소유하고 있다.

 

뜨겁고 칼칼한 국물을 마신 후에 "아~ 시원하다!" 라는 말을 하면 "너도 이제 어른 다 됐네." 라는 말을 자연스레 듣게 되고, 달달한 음료 대신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면 "뭔가 어른 같아." 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애기 입맛'과 '어른 입맛'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부터가 자연스럽게 '애기 입맛'과 '어른 입맛'을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입맛이 변해도 우리가 먹은 음식이나 그 음식에서 느낀 맛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데 《기억 깨물기》라는 이 책은 '초콜릿'에 얽힌 사랑의 기억에 대한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소설집이다. 총 6편의 글이 있고 일본 대표 여류 작가들의 글이라고 소개가 되어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난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라딘 신간알리미 서비스를 통해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이 출간되면 문자로 신간 소식을 받아보고 있는데 《기억 깨물기》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받아보고 처음엔 에쿠니 가오리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있는 단편집이라고해서 얼마나 서운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오히려 에쿠니 가오리의 글보다 다른 작가들의 글 덕에 이 책이 더 빛을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솔직히 좀 난해해서 두 번이나 읽어야 했다.)

 

 

 

 

 


 

 

 

 

 

지금은 글쓰기가 익숙하고, 글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글쓰기를 못 견뎌했다. 왜 그런가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지금에야 이유를 찾았다. 난 내가 직접 경험한 일상을 녹여낸 글을 쓰는 건 자신이 있었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글을 쓰는 건 참 힘들어했던거다. 예를 들면, 이 소설처럼 학교에서 '초콜릿'에 대한 글을 자유롭게 써오세요. 라고 한다면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글을 써낼 수 있을 테지만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글을 써오세요. 라던가 '임진왜란'에 대한 글을 써오세요. 라고 한다면 무엇을 써야할지 처음부터 막막함을 느끼는 것이다.

 

'초콜릿'에 대한 내 기억을 적자면 아무래도 지금 남자친구와 썸(?) 탈 때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데, 우리 오빤 사귀기 전부터 내가 초콜릿에 약하다는 걸 알았던 건지 뜬금없이 '초콜릿'이나 과자 선물을 그렇게 해줬더랬다. 시험을 망치고 우울해하고 있을때 갑자기 손에 종이가방을 쥐어주었는데 (사귀기 전이었음에도) 그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 가득 들어있었다. 킨더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그걸 찾으러 돌아다니기까지 했다는 말에 감동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인지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초콜릿이 떨어지지 않게 마트에 데려가서 일명 '초콜릿 쇼핑'을 하곤 한다. "세니 초콜릿 떨어졌겠다." 라는 말이 정말 달콤하게 들린다. 이런 속물적인 여자....

 

이야기꾼인 그녀들이 그려낸 '초콜릿'에 얽힌 달콤하고도 씁쓸한 사랑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고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곱씹게 됐다. 특히 각 소설이 시작할 때마다 보이는 일러스트들이 참 예쁘다.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일러스트에서 초콜릿을 찾아보는 재미도 이 책의 매력에 한 몫 한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앞으로도 '초콜릿'에 대한 나의 기억이 지금처럼 여전히 달콤하게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 이노우에 아레노, 《전화벨이 울리면》 中 >

 

물은 교코 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모래보다 물 쪽이 더 비슷하다. 물은 나를 감싼다. 물은 나를 뒤덮는다. 나는 흠씬 젖어 지쳐버리고 물에는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다. -p, 28

 

 

< 에쿠니 가오리, 《늦여름 해 질 녘》 中 >

 

처마 밑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시나는 불안했다. 이 순간이 과거가 되는 것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도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자신을 버려두고 휙휙 가버리는 것 같았다. -p, 39

 

 

"이타루 씨를 먹고 싶어."

말 그대로의 뜻으로 대답했다. 남자는 어라,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당황해서 시나는 설명했다.

"침대로 청하는 것도 아니고 키스해달라는 것도 아냐. 실제로 당신을 먹어서 소화시키고 싶단 얘기."

스스로 한 말에 흠칫 놀랐다. 무서운 소리를 덜컥 내뱉었다는 마음과 그것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당신을 먹으면 당신은 내 일부가 되잖아? 그러면 항상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세상 무서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남자는 놀라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매웠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시나를 보고 있었다.

"응."

응, 그런 얘기구나, 라는 듯 간단히 대답하고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호주머니에서 빨갛고 작은 것을 꺼냈다. 그것이 무엇인지 시나는 알고 있었다. 접이식 포켓나이프. 노점에서 산 복숭아를 깎아준 적도 있고 급한 대로 사서 입은 카디건의 태그를 잘라준 적도 있었다. 코르크 따개도 달려 있어서 참 편리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처마 밑에 선 채 방금 전에 담뱃불을 붙이던 것과 똑같은 무심한 동작으로 남자는 자신의 왼손 피부를 얇게 얇게 벗겨냈다. 엄지손가락 옆에서 손목 방향으로.

그러지 말라고 시나는 말하지 않았다. 주인이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개처럼 숨을 죽이고 지그시 기다렸다. 공작 놀이에 빠진 소년처럼 자신의 손가락 끝에 집중하는 남자를 응시하면서.

한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 시간을 들여 남자는 천천히 그것을 벗겨냈다. 반투명한 얇은 피부. 방금 전까지 남자 몸의 일부였던 것.

"와아."

절로 탄성이 터졌다. 시나 스스로도 놀랐을 만큼 그 목소리는 통통 튀듯 신이 나 있었다. 좋은 것, 재미있는 것, 맛있는 것을 보았을 때 어린아이가 문득 표정이 환해지면서 내는 듯한 소리.

허공에 대롱거리는 모양새로 남자는 그것을 내밀었다. 자신에게 내밀어진 그대로 시나는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예상 밖으로 메마른 감촉이었다. 그리 큰 것도 아니었는데 깨물어도 녹지 않고 씹어보니 약간 짭조름한 맛이 났다. 바다의 풍미.

시나는 삼키기 아깝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했지만, 삼켰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p, 39~41

 

 

어떤 종류의 먹을 것은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p, 42

 

 

< 고데마리 루이, 《호수의 성인》 中 >

 

다만 나 자신에게 항상 다짐해온 것이 있었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직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서 충동적으로 '이 사람이다'라고 정해버려도 괜찮지만, 이별에는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p, 108

 

 

고토코, 부디 그 사람과의 이별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만일 아직도 그 사람이 마음속에 있다면 그 마음을 억지로 닫아걸거나 잘라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해.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은 결혼이니 이혼이니 하는 제도로 그리 쉽게 맺어지거나 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람의 인연이란 어떤 형태나 제약에 끼워 맞춰지는 것도 아니고 속박당하는 것도 아닌, 바람 같고 물 같고 빛 같은 감정이자 마음이고, 서로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아마도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닐까. 건방진 소리 같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p, 110, 111

 

 

< 노나카 히라기, 《블루문》 中 >

 

타인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은,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진짜 연애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그 끝에 소중한 누군가와 헤어져버린 일이 있다면― 겁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쉽사리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사랑의 달콤함 속에는 실은 지독히 복잡하고 번거로운 배합의 향신료가 뒤섞여 있다. 그 하나하나를 맛보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p, 130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어?"

시시한 질문이다. 하지만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입 밖으로 나왔다.

"어른이 되면?"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뺨을 괸 채 노에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뭐가 되고 싶지……?"

노래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뒤에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유코 이모는?"

"응? 나?"

아이, 난 이미 어른인데, 뭘.

그렇게 말하려다가 어른이라고 할 만큼 어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려고 했다. 서른두 해와 네 달, 거기에 며칠 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흘려보낸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노에의 여섯 배가 넘는 세월을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아직 나이 어린 소녀 특유의 시선으로, 채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의 미숙함을 간파한 것일까.

식어가는 홍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노에가 다시 물었다.

"이모는 뭐가 되고 싶었어? 어렸을 때."

아, 그렇구나. 나만의 착각임을 깨닫고 피식 웃음이 터질뻔했다. 실제로 킥킥 웃었더니 노에도 덩달아 이유 없이 웃는다.

어린아이였던 시절에 내가 되고 싶었던 것.

뭐였을까. 뭐였더라.

노에도 나도 서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과자를 다시 입에 넣었다. 새콤한 무화가 설탕 절임, 우유가 듬뿍 들어간 커스터드 크림, 버터 맛이 풍성하고 식감 좋은 타르트 받침이 함께 어우러진 소박한 맛이다. -p, 137, 138

 

 

지금 다시,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한 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누군가를 믿어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용기를 다해서 누군가를 믿어보는 것, 어쩌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기도 했다.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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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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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랑을?"

"그게 아냐.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를 바라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 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 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 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거야."

"그건 사랑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 난 좀 어이가 없었다.

"있다니까. 네가 잘 모를 뿐이야. 여자한테는 그런 게 무지무지 소중할 때가 있거든."

"딸기 쇼트케이크를 창밖으로 집어 던지는 게?"

"그렇다니까. 난 남자애가 이렇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기 싫어졌다는 거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난 정말 당나귀 똥만큼 멍청하고 센스가 없어. 사과하는 의미에서 다른 걸 하나 사다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난, 그만큼 더 상대를 사랑해 주는 거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얘기인 것 같은데."

"하지만 내게는 그게 사랑이야.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겠지만." -p, 137, 138

 

 

 

 

 

 

 

 

 

 

 

 

 

 

 

분명 그 작가의 책은 읽지 않았는데 하도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작가가 있다. 나에겐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러한 작가였다. 너무나 익숙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다 읽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한 권도 읽지 않았을 때의 허무함이란. (예전에 《상실의 시대》를 앞부분만 읽다가 포기하고 그대로 꽂아두었었는데, 《상실의 시대》가 민음사에서 새로운 번역과 함께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제목으로 옷을 바꿔입고 나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보면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오빠의 말에 의하면 하루키의 글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서, 군대에 있을 때 읽으면 전역하기 싫어질(?) 정도라고 하는데. 얼마나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길래 책을 읽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까싶어 사실은 읽기 좀 두려웠더랬다.

 

《노르웨이의 숲》은 서른일곱 살의 주인공 와타나베가 우연히 떠오른 십대의 끝자락의 기억에 대해 적은 글이라고 정리하면 될까?

 

그날 겪은 일에 대해 일기를 쓰다가도 일기를 적는 순간 하루동안의 기억이 온전히 남아있을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남아있는 기억만이라도 붙잡으려고 하루를 꼭 기록하려고 하는 나이지만 (매일 밤 11시만 돼면 '일기쓰기' 라는 알람이 뜬다.) 요즘엔 그날 있었던 일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있어서 큰일이다. 하루동안 있던 일도 온전히 기억해내기 어려운데 20년 가까이 지난 기억을 기록하다니.

 

 

 

 

 

 

 

 

 

 

 

한창 젊은 시절인 십대의 끝무렵과 이십대의 초반에 대한 기록이지만, 기록하는 그 순간의 그는 삼십대의 끝자락에 있는, 어느 정도 세상을 알아가고 연륜이 쌓인 상태여서인지 글이 차분하면서 모든 걸 통달한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 사람을 알게되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동안에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너를 잊지 않을게.' 또는 '이 순간을 잊지 않을게.' 라고 버릇처럼 내뱉지만 지금 뒤를 돌아보면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순간 순간들이 참 많다. 지나간 기억을 떠올려보는 경우는 대체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이별이든, 죽음이든 끝났을 때가 많은데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잊지 않겠다' 던 그 사람과 관계가 끊어진 후 잊고 살았음에 미안한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기억이란 어김없이 멀어져가고, 우리는 현재를 또 기억에 남겨가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다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미안해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기록' 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지 않은가.

 

'죽음'이 많이 등장하는 이 소설 때문인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떠나간 후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너무나도 큰 외로움을 느껴버렸고 그 때문인지 하루를 꼴딱 샜다. 그럼에도 시간은 잘 갔고 언제 외로움을 느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사실 지금 조금 외로운데, 얼른 글을 쓰고 잠들어야지. 오늘은 기필코 잠들어야지!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p, 96

 

 

"저기, 나가사와 선배, 그런데 선배 인생에서 행동 규범이란 건 도대체 어떤 겁니까?"

"너, 들으면 웃을걸."

"안 웃어요."

"신사로 사는 것."

나는 웃지는 않았지만 자칫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신사라면, 그 신사 말입니까?"

"그럼, 그 신사."

"신사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혹시 정의 내릴 수 있으면 가르쳐 주시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선배는 내가 여태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입니다."

"너는 내가 여태까지 만난 인간 가운데서 가장 제대로 된 인간이야." 그리고 그가 술값을 냈다. -p, 102

 

 

"흐응, 나, 와타나베는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냥 보기에."

"고생한 적은 없어, 별로. 돈이 많지 않다는 것뿐이고, 세상 사람 대부분이 그런 거야."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대부분이 부자였어." 그녀는 무릎 위에서 두 손바닥을 위로 보이며 말했다. "그게 문제였어."

"앞으로는 그게 아닌 세계를 지겹도록 보게 될 거야."

"있지, 부자의 가장 큰 이점이 뭐라고 생각해?"

"몰라."

"돈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이를테면 내가 우리 반 친구들에게 뭘 좀 하자고 하면 '난 지금 돈 없어서 안 돼.' 라고 해. 반대 입장일 때, 난 도저히 그런 말은 못 할 거야.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그건 정말로 돈이 없는 거야. 너무 처량해. 예쁜 여자애가 '나 오늘 얼굴이 너무 안 좋아서 외출 못해.' 라고 말하는 거하고 똑같아. 못생긴 애가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봐, 다들 웃을 거야. 그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였어. 작년까지 육 년간."

"곧 잊게 될 거야."

"정말 빨리 잊고 싶어. 난 대학에 들어와서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몰라. 정말 보통 사람들이 가득해서." -p, 112, 113

 

 

"아빠를 좋아해?"

미도리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좋아하지는 않아."

"그럼 왜 우루과이까지 가려고 해?"

"믿음이 가니까."

"믿음이 가?"

"그래.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믿음은 가, 아빠에게.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집도 자식도 일도 모두 내팽개치고 우루과이로 가 버린 사람을, 난 믿어. 뭔지 알겠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미도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웃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괜찮아, 어차피 아무래도 좋은 거니까." -p, 130

 

 

"완벽한 사랑을?"

"그게 아냐.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를 바라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 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 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 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거야."

"그건 사랑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 난 좀 어이가 없었다.

"있다니까. 네가 잘 모를 뿐이야. 여자한테는 그런 게 무지무지 소중할 때가 있거든."

"딸기 쇼트케이크를 창밖으로 집어 던지는 게?"

"그렇다니까. 난 남자애가 이렇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기 싫어졌다는 거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난 정말 당나귀 똥만큼 멍청하고 센스가 없어. 사과하는 의미에서 다른 걸 하나 사다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난, 그만큼 더 상대를 사랑해 주는 거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얘기인 것 같은데."

"하지만 내게는 그게 사랑이야.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겠지만." -p, 137, 138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그게 보통이야. 나도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 그게 바로 평범한 사람이야." -p, 194

 

 

"난 아침이 제일 좋아. 모든 게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점심시간이 오면 슬퍼져. 저녁이 가장 싫어. 하루하루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

"그런 생각 하면서 너희들도 나처럼 나이를 먹는 거야. 아침이 오고 밤이 오고,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다 보면 말이야."

레이코 씨는 즐거운 듯 재잘거렸다. "금방이라고, 그거." -p, 233, 234

 

 

"괜찮아. 아마도 여러 가지 감정을 좀 더 바깥으로 표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너도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터뜨리고 싶으면 나에게 하면 돼. 그러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나를 이해해서 어쩌려고?"

"넌 정말 모르는구나." 내가 말했다. "뭘 어쩌겠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이건. 세상에는 시간표를 조사하는 게 좋아서 하루 종일 열차 시간표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잇어. 또는 성냥개비를 연결해서 길이 1미터나 되는 배를 만들려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 너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하나 정도 있어도 괜찮잖아?"

"취미 같은 건가?" 나오코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햇다.

"취미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야. 보통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걸 호의 또는 애정이라 하겠지만, 네가 취미라고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불러도 돼." -p, 243, 244

 

 

가끔 견디기 힘든 외로움에 젖을 때도 있지만, 난 대체로 건강하게 잘 지내. 네가 매일 아침 새를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 나의 태엽을 감아. 침대에서 나와 이를 닦고 수염을 깎고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 현관을 나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난 대체로 서른여섯 번 정도 끼륵, 끼륵 태엽을 감아. 자, 오늘도 하루를 잘 살아 보자고 하면서. 스스로는 못 느끼는데 요즘 들어 내가 혼잣말을 자주 한다고들 해. 아마도 태엽을 감으면서 뭐라고 혼자 중얼대는 말일 테지.

 

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괴롭지만, 만일 네가 없었더라면 나의 도쿄 생활은 정말 엉망이 되어 버렸을 거야.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 너를 생각하기에, 자, 이제 태엽을 감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거지. 네가 거기서 열심히 살듯이 나도 여기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p, 335

 

 

"선배는 인생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본 적 없어요?"

"거참, 나도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물론 인생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어. 그거야 당연하잖아. 단지 난 그런 것을 전제 조건으로 인정하지 않아. 자신의 힘을 100퍼센트 발휘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원하는 게 있으면 손에 넣고, 원하지 않으면 붙잡지 않아.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그러다 망치면 망친 상태에서 다시 생각하는 거지. 불공평한 사회, 그거 반대로 생각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해."

"자기 멋대로 같은데요."

"그래도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너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할거야."

"그렇겠죠." 나는 인정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가끔 세상을 둘러보다가 넌덜머리가 나. 왜 이 인간들은 노력이란 걸 하지 않는 거야, 노력도 않고 불평만 늘어놓을까 하고."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나가사와를 쳐다보았다.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내가 뭘 잘 못 본 겁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나가사와는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건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거야."

"이를테면 취직이 결정되어 다들 마음을 푹 놓을 때 스페인어를 시작하는 그런 거 말이죠?"

"바로 그런 거지. 나는 봄까지 스페인어를 완전히 마스터할거야. 영어와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벌써 했고, 이탈리아어도 대충은 돼. 이런 게 노력 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p, 342, 343

 

 

"더 멋진 말 해 봐."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얼마나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곰?" 미도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뭔데, 봄날의 곰이?"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정말로 멋져."

"그 정도로 네가 좋아." -p, 388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그것도 소중한 상대의 마음에 모르는 새 상처를 주었다니,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p, 406

 

 

"인생이란 비스킷 깡통이라 생각하면 돼."

나는 몇 번 고개를 젓고 미도리 얼굴을 보았다. "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일 테지만, 때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어."

"비스킷 깡통에는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결 해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 -p, 419

 

 

"내 남자 친구, 그러니까 전 남자 친구는 싫어하는 게 많았어. 내가 너무 짧은 스커트를 입는 거라든지, 담배 피우는 것, 금방 취해 버리는 것, 야한 말 하는 것, 자기 친구 욕하는 것……. 그러니까 만일 그런 점에서 싫은 게 있다면 거침없이 다 말해 줘. 고칠 점이 있으면 바로 고칠 테니까."

"그다지 없는데." 나는 잠시 생각한 다음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어."

"정말?"

"네가 입는 거라면 뭐든 좋고, 네가 말하는 거, 걸음걸이, 취한 모습, 뭐든 다 좋아."

"정말 이대로 좋아?"

"어떻게 바꾸는 게 좋은지 모르니까 그대로 좋아."

"나를 얼마나 좋아해?"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릴만큼 좋아." -p, 440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고, 그 애정이 성실하다면 누구도 미궁 속에 버려지지 않아요. 자신감을 가져요.

 

내 충고는 아주 간단해요. 먼저, 당신이 미도리라는 사람에게 강하게 이끌린다면,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거예요. 그 사랑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질지 아니면 잘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사랑이란 원래가 그런 거니까.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것도 성실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해요. -p, 446, 447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체념하듯 몸에 익혔다. 또는 체념했다고 믿었다. 그건 바로 이런 것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엇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p, 453, 454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가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다. -p,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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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
교황 프란치스코 지음, 성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설교하는 복음이 자기네 일상생활에 도달할 적에, 아론의 기름처럼 현실의 가장자리까지 흘러내릴 때에, 한계 상황, '변두리'를 비추어줄 경우에 우리 신자들은 복음을 반깁니다. 그런 한계 상황과 변두리에서는 신자들이 자기네 신앙을 약탈하려는 자들의 침공에 유난히 더 노출됩니다. -p, 216 (2013. 3. 28. 성유축성미사 강론 中)

 

 

 

 

 

 

 

 

 

 

 

 

 

여차저차해서 '엘리사벳' 이라는 세례명까지 가지고 있는 신자이지만 중학생 때 세례를 받은 날 이후론 성당에 발을 거의 들이지 않았다.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들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는다는 게 벅차다는 이유였다.

 

또 불과 일년도 채 안 된 최근에, 소위 '신천지' 라고 의심이 되는 곳에서 신앙을 강요받은 적이 있는데 '하느님이 있다는 사실을 믿느냐' 라는 질문에 '아직까지는 믿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공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건 왜 있다고 믿는거냐.' 등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질문 공격에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일들 때문인지 오히려 있었던 믿음조차 사라지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런 내가 잘못된건가 싶어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민의 결과로는 신앙은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절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심지어 이슬람교든 자기 자신에게 진정으로 와닿는 종교를 따르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따르는 종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해 믿음보다 의심이 더 많은 이런 내가 이 책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을 읽고 주로 기억해두고 싶은 곳에 붙이는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는 신앙을 강요하기 보다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꼬집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란치스코의 현명한 한 마디 한 마디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느님을 믿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데 처음부터 거리낌이 없겠지만, 나처럼 하느님을 아직 멀게 생각하는 독자라 하더라도 종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교황 프란치스코 개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즉, 한 사람의 어록을 읽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간다면 배워갈 점이 많은 책이었다.

 

 

 

 

 

 

 

제각기 평행으로 나란히 걸어가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입니다. -p, 27 (2013. 5. 19. 성령강림 대축일 강론 中)

 

 

우리 모두 선사하는 마음, 거저 베푸는 마음, 연대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야만적인 자본주의는 갖은 수를 써서 이윤을 내는 논리를 가르쳐놓았습니다. 받기 위해서 주는 논리,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수탈하는 논리를 가르쳤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목격하는 중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 속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집은 사랑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애덕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만나러 가라고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사람을 만나러 가라고 가르칩니다. -p, 28 (2013. 5. 21. 초대의 집 '마리아의 선물' 에서 행한 연설)

 

 

젊은이 여러분에게 각별히 건네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일상의 본분에, 공부에, 일에, 친구 관계에,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는 생애의 이 소중한 한 해,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아는 데 달렸습니다. 투신을 무서워하지 말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희망을 생생하게 간직하십시오! 지평선에는 늘 빛이 있습니다. -p, 60 (2013. 5. 1. 일반 알현)

 

 

지키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선행하는 차원이 있고 단순히 인류라는 이유 때문에 해당하는 차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합니다. 창조계 전체를 지키고 창조계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입니다. 창세기 책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대로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대로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게 존중을 표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에 존경을 표했습니다. 사랑을 갖고 사람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돌보는 일입니다. 특히 어린이들, 늙은이들, 제일 나약한 사람들을 먼저 돌봐야 합니다. 그들은 보통 우리 마음에서도 저 변두리로 밀려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서로서로 보살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간에 지켜주도록 합니다. 다음에는 부모로서 자녀들을 보살핍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녀들도 부모를 보살피는 지킴이가 됩니다. 그리고 성실을 다하여 우애를 나누게 됩니다. 우애란 신뢰하면서 상호 간에 지켜주는 일입니다. 존중과 선으로 지켜줍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인간의 보호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책임입니다. 하느님의 선물들을 지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p, 94, 95 (2013. 3. 19. 교황 직무 개시 미사 강론)

 

 

오늘날 명령을 내리는 자는 인간이 아닙니다. 돈입니다. 돈이, 금전이 세상을 좌지우지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땅을 지키는 임무를 주셨는데, 그 임무는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임무는 우리가 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라는 인간들이 이윤과 소비라는 우상에 제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폐기품의 문화'입니다. -p, 97 (2013. 6. 5. 일반 알현)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뭔가 좋은 것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서도 내게 말해줄 만한 좋은 것, 내 관점, 내 견해, 내 착안에 자리를 넓혀줄 만한 무엇을 갖고 있으리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려면 방어벽을 낮추고 문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p, 101 (2013. 6. 14 『치빌타 카톨리카』 저술가 단체에 행한 연설)

 

 

엄마는 자녀가 인생의 문제들을 현실성 있게 바라보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문제들에 말려들어 헤매지 않고 용감하게 대면하도록 돕습니다. 나약해지지 않고 그 문제들을 극복하는 법을 알아내도록 돕습니다. 안전한 환경과 위기의 지점 사이에서 엄마로서 건전한 균형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그런 균형을 유지하면서 극복하는 법을 알아내도록 돕습니다.

 

엄마라면 이런 일을 해낼 줄 압니다. 아들을 반드시 안전한 길로만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아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모험의 길에만 놓아두지도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라면 균형을 취할 줄 압니다. 도전이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년이든 소녀든 그런 것을 감당하고 마주할 줄 모른다면 뼈대가 없는 소년, 소녀입니다. -p, 110, 111 (2013. 5. 4. 산타 마리아 대성당에서 행한 연설)

 

 

여러분의 이상을 땅속에 묻어두지 마십시오! 위대한 이상에 투기하십시오! 마음을 넓게 열어주는 이상, 봉사의 이념에 투기하십시오! 그런 이념들은 여러분이 타고난 탤런트의 풍부한 결실을 만듭니다. 삶이란 우리 자신을 위해 욕심스럽게 간수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사하라고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통 큰 마음을 지니십시오! 겁내지 말고 위대한 것들을 꿈꾸십시오! -p, 116 (2013. 4. 24. 일반 알현)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우리로서는 '노예 노동'이라고 정의할 만한 그런 노동입니다.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노동입니다.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형태의 노예살이에 희생물이 되고 있는지요! 사람들이 품위를 갖추도록 노동이 사람들에게 봉사를 바쳐야 하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노동을 섬깁니다.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들에게 호소합니다. 선의를 가진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인신매매에 항의하여 결단하는 선택을 내리자고 요청하는 바입니다. 인신매매 속에 노예 노동이라는 형태가 있습니다. -p, 121, 122 (2013. 5. 1. 일반 알현 中)

 

 

좋은 엄마는 성장 과정에서 자녀들을 동반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삶의 문제들과 도전들을 피하지 않습니다. 좋은 엄마라면 자녀들이 자유를 갖고 결정적 결단을 내리게 돕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엄마는 그 일을 해낼 줄 압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분별없이 이 경험, 저 경험 다 해본다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의 유행을 쫓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모조리 창밖으로 내다버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란 삶에서 선한 선택을 내릴 줄 알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좋은 엄마는 결정적 선택을 할 능력을 교육해냅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완전한 자유만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p, 123, 124 (2013. 5. 4. 산타 마리아 대성당 연설)

 

 

몇몇 도시에서 주식이 10포인트 하락하는 일은 비극으로 여겨집니다. 사람 하나가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주식이 10포인트 하락하는 일은 비극이 됩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쓰레기인 양 폐기되고 잇습니다.

 

이러한 '폐기품의 문화'가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되어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더 이상 인간 생명, 인격체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첫 번째 가치로 통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가난하고 불구라면, 장차 태어날 아기처럼 아직은 쓸모가 없다면, 늙은이처럼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면 더 그렇습니다. 이 폐기품의 문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낭비와 음식물 폐기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세계 도처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가정들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는 터에 이런 행위들은 더욱 통탄할 일입니다. -p, 153, 154 (2013. 6. 5. 일반 알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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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임승수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우선 글치 공학도였던 내가 <경향신문>이 선정한 '뉴 파워라이터 20인'에 들 수 있게 된 실전 글쓰기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담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법, 책 한 권이라는 긴 글을 쓰는 방법, 남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 있는 글을 쓰는 방법, 문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출판사에 투고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 출판계약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내 삶의 어떤 것이 책의 소재가 될 수 있는지, 목차는 어떻게 짜야 하는 지, 책 제목은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실제 책이 나온 이후 저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책 쓰기에 대해서 내가 아는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다뤘다. -p, 8

 

 

 

 

 

 

 

 

 

 

 

 

막연하게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에, 교수님과 진로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졸업하고 무엇을 할거니?" 라는 질문에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했다가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듯한 질문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편집자도 있고 기획자도 있고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거야?"

"저는 그냥 출판사................." 라고 얼버무리다가 "책 읽고 글 쓰는걸 좋아해서 그래요!" 라고 말을 했더니 "그건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보단 비평 쪽이 아닐까..?" 라는 기습공격과도 같은 질문.

 

이렇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눈 이 날 이후로 내 진로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시작하게 된 블로그에, 여러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을 하고 있고, RHK 출판사를 통해서 출판사 마케팅팀에서 하는 일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정작 나는 책 한 권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출판이 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부끄러웠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이 책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를 만나게 되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의 저자인 임승수는 공학도였다. A4용지 한 장 채우기도 버거운 글쓰기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인문 사회 분야의 저자가 되어있다. 글 쓰는 것은 물론 출판업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유명한 저자가 되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알게 된 '출판'에 대한 모든 사실을 이 책 한 권에 다 담아냈다.

 

책 한 권을 쓰는 과정에서부터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과정, 출판 후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 (책 한 권이 출판되어서 처음 인쇄 된 1쇄=약 1,700권을 다 판매했을 때 저자에게 돌아오는 돈은 255만 원 정도였다.), 책 출판 그 이후의 일, 또한 글쓰기에 취약한 자신이 터득한 글쓰기의 방법까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는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배우면서 저자로 사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책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책을 쓰는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다면 곧장 그 길로 가라는 임승수. 나는 이 책을 읽고 겁을 잔뜩 먹었지만 출판업계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오히려 더 용기를 내게 되는 사람들도 있게 될 것 같다.

 

'열정적인 삶'과 '안정된 삶'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요즘. 내가 결국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는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하겠지. 하지만 한 권의 책이 되는 삶이라는 건 다른 사람이 살아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진 채 용기를 내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간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두어야겠다.

 

 

 

 

 

  

흘러가는 시간 중에서 '살아지는' 삶이 점점 줄어들고 '살아내는' 삶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쓸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갈수록 '살아내는' 삶이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다람쥐 쳇바퀴 돌듯 회사를 왕복하는 '살아지는' 삶은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2006년에 회사를 그만뒀다. 같은 해 12월에 첫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가 출간됐다. 당시 은행잔고는 600만 원이었다. -p, 49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행복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 역사에서 부와 권력,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틀어쥔 사람을 꼽으라면 분명 진시황도 들어갈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위세 당당했던 진시황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불로초다.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지나가는 '시간'을 부여잡으려고 발버둥 친 것 아니겠는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게 됐을 때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p, 52

 

 

도미네 리브로 Domine Libra! (오, 책이여!) -p, 74

 

 

일기라는 나만의 기록조차 십 년 후의 나라는 '다른 사람'이 보라고 쓰는 것이다. 그런데도 글을 쓴다는 것을 그저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글을 쓰면서 똥을 싼다. 심지어는 그 냄새나는 똥을 남한테 들이밀며 읽어보라고 강요한다. 냄새 좋다면서. 글을 써야지 왜 배설을 하는가. -p, 77, 78

 

 

내가 진정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돈에 시간을 팔지 않으면서부터다. 한창 회사를 다니던 시절, 그야말로 시간을 다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행복한 시간을 살고자 태어난 건데, 다르게 살았다면 행복할 수도 있는 현재의 시간을 팔아 돈이라는 종이 쪼가리를 모으고 있으니. 게다가 회사 일이 재미가 없어서 더욱 그랬다.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배짱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진정 원하는 시간을 살면서,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으며 냄새는 어떻고 맛은 어떤 음식과 비슷한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책 읽기는 그야말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장사하는 것을 뛰어넘는 최고의 남는 장사다. -p, 82, 83

 

 

예를 들어 주말에 하루 만에 내 책 읽은 학생, 제일 짜증 난다. 네가 뭔데, 내 인생 10년의 농축 엑기스를 주말 하루 만에 빨아먹는가? 한 달 만에 읽은 친구도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다. 내 인생 10년의 농축 엑기스를 한 달 만에 빨아 드시니 기분 좋은가? 도대체 내가 맨땅에 헤딩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10년은 뭐란 말인가!

 

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독자는 임승수라는 사람의 10년 개고생을 주말 하루 만에 홀랑 빨아먹을 수 있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며칠 투자해 10년을 벌다니. 나라는 보잘것없는 사람의 책도 그렇게 남는 장사인데, 역사라고 하는 촘촘한 체를 통과한 고전 걸작들은 한 권당 백 년의 가치가 넘는 책들이다.

 

이렇게 백 년의 가치를 지닌 고전을 백 권 읽으면, 도대체 시간으로 환산하면 몇 년인가? 자그마치 만 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절대로 만 년 못 산다. 인간은 백 년을 살아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았다는 말을 듣는데, 책을 읽으면 인생이 만 년으로 늘어난다. 심지어는 정말 작정하고 열심히 읽으면 10만 년, 100만 년까지도 연장 가능하다. 이렇게 남는 장사 본 적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물론 간혹 일주일 들여 읽었는데 두 시간도 안 되는 가치밖에 없는 책도 잇다. 그럴 때는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까먹는 셈이 된다. 어쩌겠는가.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은 아니니. -p, 86

 

 

책은 읽는 이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최고의 남는 장사다. 하지만 책을 통해 엄청난 시간을 벌었다고 해서, 타인의 시간을 무시하면 안 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존중과 겸손'이다. 독자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바로 그래야 한다. -p, 91,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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