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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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일하지만, 결국 손발처럼 사용하는 책은 내 주위 반경 1미터에 갖다 둔 분량 정도다. 이 책들은 책장에서 꺼내 책상 위에 쌓아두고, 발밑이나 바닥에도 책의 탑이 몇 개쯤 쌓여 있다. 전체 장서량에 비하면 소비세에도 못 미칠 만큼 미미한 분량이지만, 이 책들이야말로 일하는 데 쓸모가 있다. 문제는 책상 주변에 쌓아올린 책과 격납고라 할 만한 책장 사이에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앞에 닥친 일을 끝내고 필요 없어진 책을 원래 책장에 다시 꽂는다면 새로 필요해진 책을 내 주위로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책을 꽂아둘 책장은 이미 가득 차 있고, 책장 앞도 바닥부터 쌓아올린 책의 벽이 켜켜이 쌓여 있기에 일을 마치고도 책은 돌아갈 곳이 없다. 책장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며, 책상 주변에 뽑아둔 책 수백 권만이 진정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료다. 그렇다면 나의 다다미 스물한 장 규모의 지하실에 헌책방 한 채를 옮겨온 듯한 서고를 대체 뭐란 말인가. -p, 61

  

 






 








 

오늘도 어김없이 책이 든 택배를 잔뜩 받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책을 집안으로 들이는 나를 보면서 가족들은 '저걸 또 어디에 쌓아둘까' 염려하는 모습이다. 다른덴 크게 물욕이 없어 옷도, 악세사리도, 화장품도 많이 사들이지않는데 (아니 거의 없을 정도인데) 책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다. 지금도 더이상 책장엔 책을 꽂아둘 공간이 없어 책장 주위에 위태롭게 쌓아둔 책들과 잠들기 전, 눈 뜨고 일어나 잠깐씩 보는 책이 베개 위에 한 권, 그렇게 읽어낸 책들이 베개 옆에 쌓여있고, 컴퓨터 책상 위에도, 식탁 위에도, 방에 있는 책상 위에도 쌓여있다. 모른척 지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둘러보니 어우, 지저분하다.


이렇게 수많은 책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아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읽어본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


이 책을 읽으며 책을 좀 정리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되려 이 책에 등장한 엄청난 장서가들을 보고,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케일에 '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네? 더 사모아도 되겠는데?' 하고 생각해버렸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목조로 지어진 집이 많아 장서가들에겐 불리하다. 책이 쌓이면 책의 무게에 의해 집이 휘거나, 바닥이 뚫려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인데 책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임에도, 그래도 책에 깔려죽을 수 있어 좋다! 생각하며 웃어넘기는 그들을 보면서 황당해서 헛웃음이 자꾸만 나왔더랬다.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몰라 같은 책을 세네권씩 사들이는 그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엔 미련하고, 답답하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일지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책에 깔려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 나도 요즘은, 다신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려하고, 소설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생길때마다 그 작가에 대한 책을 전부 다 소장해야 하는 버릇은 고치지 못하겠다. 도저히. 


그런 의미에서 절판된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황무지에서 사랑하다》를 소장하지 못해... 헛, 방금 검색해보니 중고로 판매하는 분을 찾아냈다. 


얼른 주문하러 가야지.

           








구사모리의 집에서 유일하게 책이 없는 공간은 욕조였다. 욕실 안 탈의실에도 책이 있었다. 어느 날, 목욕을 하려다가 욕실 문 앞에 쌓아둔 책더미가 무너지며 그대로 욕실에 갇힌 웃지 못할 이야기가 《책이 무너진다》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장서가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침대에 누웠을 뿐인데 책이 안면을 치질 않나, 목욕을 하려 했을 뿐인데 욕실에 갇히질 않나(밀실 살인이 되었을지도). 3·11 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사모리'다. 설사 지진으로 책에 깔려 압사 당할지라도 오히려 평생의 숙원이라며 기뻐했을지 모른다. -p, 64



현재는 고향인 지방도시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은 요코하마 쓰루미대학을 다녔고 "학생 시절에 식비를 아껴 책을 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 외의 취미는 없으나 후회는 전혀 없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여기도 있구나 싶어 빙긋이 웃음이 났다. 다만 그는 치과의사로 일하며 수집을 해왔고 많은 글을 읽고 쓰기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점이 나와 다르다. 책을 좋아하던 나가야마 소년은 중학 시절 여름방학 때, 삼일밤낮을 독서에 빠져 있다가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때는 '이대로 실명해 평생 책을 못 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렸다. 다행히 얼마 후 눈이 떠져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때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몸을 아껴가며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흥미로운 일화다. -p, 172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1979년에 오자와쇼텐이 출간한 요시다 겐이치의 번역 시집 《포도주의 색》을 예로 들어보자. 대리석 무늬의 마블지로 만든 책갑에서 꺼낸 책은 기름종이에 싸인 새하얀 프랑스장정이다. 손에 들고 팔랑팔랑 넘기면 세이코샤의 옛날 한자와 옛날 가나 활자가 날아든다. 책갑에서 책을 꺼내, 읽기 전에 만지고, 책장을 펼치는 동작에 '독서'의 자세가 있다. 그에 수반하는 소유의 고통이 싫지 않기에 '장서의 괴로움'은 '장서의 즐거움'이다. 제 생각이 고리타분한가요? 정말 그런가요? 전 이것이 결정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데. -p,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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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여행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정희.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는 무의식적으로 입으로는 그녀의 말을 따라 했지만, 몸은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녀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모습을 애틋한 눈길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었다.

강철과 유리가 진동하는 프랑크푸르트 역의 수많은 선로가 두 사람 위에서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에서 철커덕거리고,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담배연기 자욱한 역사의 소음을 가르며 울려댔고,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스무 개의 표지판에는 가차 없이 시각과 분이 게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번잡과 소란 속에 오직 그녀만이 존재한다는 듯이 시간도 공간도 잊은 채 미친듯한 열정에 사로잡혀 야릇한 최면상태에 빠져 있었다. 결국, 그녀가 그에게 일러줄 수 밖에 없었다.

「루트비히, 지금 표를 사야 해요. 우리는 아직 기차표를 사지 않았어요.

그제야 그는 뭔가에 홀린 듯한 시선을 거두고, 경외심으로 가득 찬 다정한 동작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p, 10 (이별여행 中)

 

 






 










내가 좋아하는 문체로, 내가 좋아하는 느낌으로 글을 쓰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저 자신을 '책 읽는 사람'이라 칭하는 그 분은 내가 그 분의 글을 몰래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계시겠지.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에쿠니 가오리 라는 이름만 믿고 좋아하듯 그 분에게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런 존재라 적어놓은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동경하는 사람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마음 한 켠에 '슈테판 츠바이크'를 새겨두었더랬다. 시간이 흘렀고 그 이름이 잊혀졌다 생각되었을 즈음, 아무 생각없이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이별여행》이라는 신선한 제목에 흑백의 예쁜 표지를 가진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서 꺼내 들여다보니 크게 새겨져있는 이름,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첫번째 이야기인 《이별여행》도, 두번째 이야기인 《당연한 의심》도.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시작될까? 그것은 사랑이 태아처럼 어두운 몸 안에서 고통스럽게 꿈틀대기를 멈추고, 숨결과 입술을 통해 감히 밖으로 나와 스스로 사랑이라고 이름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고치 속 번데기처럼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완강하게 숨어 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은 어느 순간 불현듯 껍질을 뚫고 까마득히 올라갔다가 다시 무서운 힘으로 철렁! 하고 가슴 밑바닥으로 떨어져 그를 놀라게 하곤 했다. -p, 25 (이별여행 中)




이 눈부신 빛 속에서 결국 그는 자기 내면의 신경 하나하나, 조직 하나하나가 모두 그녀에 대한 사랑에서 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사랑'이라는 그 마법 같은 말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수많은 연상과 기억이 빛을 발하며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감히 인정하거나 해명하지 못했던 모든 사실이 그의 감정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지난 몇 달 전부터 깊이 사랑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p, 30 (이별여행 中)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이 지나도 항상 한결같이 처음처럼, 이렇게 뜨겁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작은 주체할 수 없을만큼 뜨거웠을지언정 끝은 뜨뜻미지근하거나 차갑기마련.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두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정말 재치있게 표현해주었다.


《이별여행》에서 청년 루트비히와 그가 모시는 사장의 젊은 부인의 뜨거웠던 사랑이, 어쩔 수 없는 일로 멀리 떨어져지낸 9년이라는 시간으로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여전히 사랑인지, 과거에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당연한 의심》에서 자신에게 한결같을 것만 같던 사랑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게 되어 자신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 단순한 서운함을 넘어 분노가 되어버린 모습. 이 이야기에서 '그'가 누구인지 안다면 다들 깜짝 놀라게 될 거라 확신한다.


여기서 명심해야할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결같지 않다고해서, 끝이 꼭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뜨뜻미지근함도 사랑일 수 있고,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차갑다면 다시 따뜻한 사랑을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이 두 이야기 뒤엔, 이 이야기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에 대해 나와있다. 앞의 두 이야기를 잠시 잊을 정도로 그의 생애가 너무나도 다이나믹하고 서글퍼 원래 이렇게 뒷부분에 나와있는 작가의 생애엔 큰 관심을 갖지 못함에도 애초에 소설이 아닌 그의 전기를 빌려왔던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를 세세하게 읽어내려갔다. 


태어나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유했음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그, 그가 썼던 수많은 작품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늘 절망에 빠져있던 그가 결국 스스로 선택한 삶의 마지막을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와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떻게하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게되어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절망적인 삶을 살다 갔을지언정 우리가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도,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질 수 있도록 멋진 작품을 써준 그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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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밤의 코코아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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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번주 일요일에는 드물게 둘의 휴일이 겹쳐서 일찌감치 약속을 잡아놨다. 나는 부모님과 사니까 사실은 외박을 하면 큰일이지만,

"어쩌면 미오코네 집에서 자고 올지도 몰라" 하고 친구 이름을 말해뒀다. 지금까지 서너 번 그랬는데 그때마다 열한시쯤에는 귀가했기 때문에 엄마의 신용은 있었다. 나는 그날도 미오코의 이름을 꺼내뒀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준비 만전이었다.

그가 다섯시쯤 온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점심때가 지나 머리를 세팅할 생각이었다. 머리가 엉망이었다. 화장은 네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입을 옷을 고르고 다리미질을 했다.

가방 안에는 세면도구까지 넣었다. 어쩌면 샤워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슴 두근거리는 스릴이 있었다. 여자들의 소지품은 가짓수가 많기도 하다. 나는 생각을 바꿔먹고 큰 가방을 가져가기로 했다. 앙증맞은 팬티까지 챙겼다. 일이 잘 풀리면 좋겠는데.

마치 여행 준비를 하는 것처럼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정신없이 챙기고 있는데,

"좀 이르긴 하지만"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그가 왔다.

"이따 밤에 일을 하게 돼서 그러는데 지금 놀러가면 어때? 좀 쌀쌀해도 날은 화창해. 왜건이지만 회사 차도 가져왔으니까 조금 멀리까지 다녀오자."

나는 머리도 화장도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맨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정해놓은 시간에 정해놓은 방법으로 와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왜 이렇게 느닷없는 짓을 하는 거예요!"

나는 말했다.

"왜 이렇게 멋대로 구느냐구요, 내게도 사정이란 게 있단 말이죠……"

"……"

그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일찍 와서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충직한 나는 내 계획을 충직하게 실행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p, 24~25 (충직한 연인 中)​

 

 

 

 

 


 

 

 

 

 

 

 

 

서른 넘어 함박눈》이라는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 다나베 세이코.

이 책을 보자마자 작가도 마음에 들었고, 《고독한 밤의 코코아》라는 책 이름도 예뻐 찜목록에 넣어두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찜목록에서만 잠자고 있던 이 책을 이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 보게되어,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인 4권을 손에 들고도 못내 아쉬워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오빠가 빌려주었던 책입니다.

저번에 읽었던 책도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었는데 이 책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네요. 《서른 넘어 함박눈》이 서른 즈음의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 읽은 《고독한 밤의 코코아》는 코코아처럼 달콤하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한, 그러한 사랑을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달까요.

 

인터넷 서점에 적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니

서른 넘어 내리는 눈은 차분하고,

스물 넘은 나의 밤은 언니의 밤보다 고독하다.  

라고 적혀있네요. 그만큼 사랑을 하는 20대 여자의 감정을 잘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었어요.

김칫국을 들이마셔보기도 하고, 상처를 받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에 설레보기도 하고, 너무나 평범함에 실망해보기도 하고, 이런 감정들을 이제 느끼기 시작할 갓 20대가 된 스무살 여자들부터 이런 감정들엔 익숙하다못해 뻔히 다 꿰뚫고 있다 생각하는 30대가 되기 직전의 여자들까지. 두루두루 읽어도 좋겠어요. ​

보통 단편소설집의 전체 제목을 정할 때, 그 소설집에 속한 단편들 중 가장 임팩트 있는 소설의 이름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다나베 세이코의 책은 항상 이렇게, 단편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아요. 어느 것 하나에 애정을 치우치지 않고 고루고루 정을 주는 느낌이 들어, 이러한 세심함 마저 좋아요.

포스팅의 맨 위에 적어두었던 '충직한 연인'이라는 단편의 내용이 저에겐 가장 공감이 되어 저렇게 적어보았는데, (저도 가끔 저렇게 제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되려 투정을 부리곤 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글을 읽고계신 다른 분들은 어떤 사랑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지 궁금하네요. 요즘은 이렇게 저 혼자만이 아닌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제가 되도록이면 포스팅에 줄거리를 적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기다릴게요. 많은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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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언브로큰 - 전2권 - 모든 기적은 삶에 있다
로라 힐렌브랜드 지음, 신승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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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신나 하는 루이스는 길들일 수 없는 아이였다. 루이스는 자랄수록 아주 영리해졌으며 그럴수록 대담한 모험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토런스에서 한 소년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p, 30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을 한 영화' 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언브로큰'이 사실은 실존 인물 '루이스 잠페르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의 원작 실화인 로라 힐렌브랜드의《언브로큰》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루이스 잠페르니와 함께 장난스런 악동짓도 하고, 달리기 연습도 하고, 승리를 맛보고 웃기도 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폭격기에 올라타고, 일본군에 붙잡혀 전쟁포로가 되어 힘겹게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다시 자유를 맛 본 파란만장한 2주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언브로큰》의 작가 로라 힐렌브랜드는 7년동안 루이스 잠페르니와 그의 가족, 측근들을 인터뷰하고 세세하게 자료조사를 해왔다고 한다. 루이스 잠페르니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쓰여있는가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붙잡혀 전쟁포로로 850일간 생활을 해왔던 부분을 읽다보면 내가 실제로 겪고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와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많이 알려져있는 일본군이 전쟁 포로들을 대하는 방식들을, 직접 겪은 당사자의 시각으로 다시 보니 이는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전쟁 포로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위해 일본 병사들에게 웃기는 별명을 지어주고, 몰래 물건을 훔치고, 그들을 놀려주는 모습에선 나도 같이 뿌듯했더랬다.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이기도 했던 그가 다양한 위기에서(47일간 상어가 가득한 태평양을 표류하고, 전쟁포로로 붙잡혀 목숨과 자존감을 위협당하고, 전쟁 후유증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그 고통을 참고, 때로는 기적적으로 살아내는 모습을 보다보면 내가 그동안 겪어왔던 시련들은 정말 감사할 정도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렇게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다 겪어낸, 그리고 이겨낸 루이스 잠페르니의 일생을 그와 함께 찬찬히, 난 아무 고통도 없이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건 정말 영화를 안 볼 수가 없겠다.      







한순간 그는 몇 년 전 침대에 앉아 피트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평생의 영광이 온다는 말이었다. 루이스는 생각했다. 가자!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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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두번 울지 않는다
시드니 셀던 지음 / 북앳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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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에게 "우린 정 때문에 만나는 것 같아. 그러니까 헤어지는게 맞아." 라고 말했고, 

여자는 남자에게 "우린 정 때문에라도 계속 만나는게 맞아." 라고 말했다.


그렇게 여자가 붙잡기를 여러번, 결국 그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이미 둘 다 많이 지쳐있었고, 여자는 이 헤어짐에 제 3자가 개입한게 아니라 그 둘의 문제라 생각하며 애써 마지막까지 좋은 말을 건네며 헤어졌다.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 항상 응원할게." 와 같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둘의 헤어짐에 이미 제 3자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그렇게 정신을 놓아버렸다.

더이상 먹을 수 없었고, 태연할 수 없었고, 눈물이 흘렀고, 잠이 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한테 남자에 대한 욕도 해보고, 남자한테 어떻게 니가 그럴 수 있냐며 욕도 해보고, 매일 술도 마셔보았다. 

그렇게 여자한테 남게된 건 바짝 말라버린 몸과 새롭게 다가오는 남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사람들에게 느끼는 거리감 이었다. 







 


 







그렇다. 저 부끄러운 이야기는 내가 겪었던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다.


지금은 애써 생각해내려고 하지 않으면 생각조차 나지 않는 일이지만 당시엔 많이 힘들었고, 주위에 동생, 친구, 언니들한테선 제발 밥 좀 먹고다니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했을 정도였다. 난 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 사람에게 최고의 복수인 줄로만 알았다. 미련하게도.  


도서관에서 시드니 셀던의 《여자는 두 번 울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던 건 내가 미련하게 대처했던 일을 이 여자가 얼마나 멋지게 해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레슬리 스튜어트와 올리버 러셀은 행복했고, 그 누구도 끼어들 공간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권력에 욕심이 많은 올리버 러셀은 자신에게 권력을 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결혼식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예비신부 레슬리를 버리고 그 여자와 결혼을 했다. 


레슬리가 복수를 꿈꾸며 한 단계, 한 단계 실행해나가는 것 까진 좋았다. 스릴있었고,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올리버 러셀을 어떻게 무너뜨리게 될까 손에 땀을 쥐게했다. 그 와중에 의문의 살인사건까지 계속해서 등장해주니, 이건 내 개인적인 만족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추리소설로도 완벽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쯤, 실망감이 온 몸을 덮쳐왔고, 작가가 미웠다. 사랑에 상처를 받았으면 마지막엔 웃게 해줘야하는거잖아. 왜 이 여자를 다시 우습게 만드는거야?


시드니 셀던이 헤어진 남자에 대해 복수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 된 일이다. 아예 잊고 시작했으면 두 번 울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라는 걸 말하려는거였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쾌한 복수를 바라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던 나는 그저 서운하고 또 서운했을 뿐이었다. 


그래, 뭐 시간이 지나고보니 복수가 필요 없는 건 사실이더라. 시간이 약이고, 새로운 사랑이 약이니까. (그래도 이 여자를 우습게 만들 필요는 없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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